장애인 트라이애슬론 선수로 패럴림픽에 복귀하는 수영 선수 왕 지아차오

캐나다 퀘벡주 몬트리올 쟝드하뽀 공원에서 열린 IPC 수영 세계 선수권에 참가한 중국의 왕지아차오 (오른쪽)
캐나다 퀘벡주 몬트리올 쟝드하뽀 공원에서 열린 IPC 수영 세계 선수권에 참가한 중국의 왕지아차오 (오른쪽)

왕지아차오는 일본의 유명 만화 아톰을 기리기 위해 철완 아톰이라는 소셜 미디어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왕지아차오는 도쿄2020 과의 인터뷰에서 "원자(아톰)은 강력한 힘을 가진 가장 작은 구성 요소입니다. 저는 마찬가지로 작고 강합니다."라고 밝혔습니다.

왕은 2004년인 13살 때 시드니에서 패럴림픽 무대에 데뷔했고, 2008 베이징과 2012 런던 패럴림픽에도 참가했습니다. 세 번의 대회에서 왕은 하나의 금메달, 네 개의 은메달, 하나의 동메달을 수확했습니다. 수 많은 승리를 뒤로하고 왕은 2015년 공식 은퇴를 선언했습니다. 운남 보통 대학에서 체육교육학 석사 학위 취득에 집중하기 위한 목적이었습니다.

하지만 한 번 선수는 영원한 선수입니다. 왕의 은퇴 기간은 짧았습니다 - 2016 리우 패럴림픽에 장애인 트라이애슬론이 첫 선을 보인다는 소식을 듣고는 곧 훈련에 돌입했습니다.

"저의 최종 목표는 장애인 패럴림픽 선수로 다시 한 번 패럴림픽 무대를 밟는 것입니다."

28살이 된 운남 토박이 왕은 중국 대표팀의 유일한 장애인 트라이애슬론 선수이고 현재 국제 트라이애슬론 정애인 부문 PTS4 클래스 랭킹 3위에 올라 있습니다.

마을 강가에서 수영 선수가 되기까지

다섯 살 무렵 왕은 변압기 위에 올라가는 바람에 전기에 감전됐고 왼쪽 팔을 잃게 되었습니다.

왕의 부모님은 그에게 항상 너는 남들과 다르지 않다는 점을 알려주었지만, 장애를 안고 자라는 것은 어린 왕에게 늘 힘든 일이었습니다.

"나무 오르기나 잔디 깎기, 쟁기질 같은 것들을 할 수 없었습니다. 학교에서도 괴롭힘을 당했습니다. 친구들은 저를 외팔이라고 놀리곤 했죠." 끊임없이 장애에 대한 지적을 받은 왕은 "나도 할 수 있다"는 마음을 먹게 됩니다.

10살이 되었을 때 왕은 지역 수영팀에 선발되었습니다. 동네 근처 강가에서 수영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수영은 독학으로 익혔습니다. 가라앉지 않기 위해 개헤엄을 치곤 했습니다." 왕은 당시를 회상하며 웃었습니다.

처음 두 달 동안의 힘든 훈련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어머니의 응원과 본인의 결심 덕분입니다.

13살이 되었을 때 왕은 2004 아테네 패럴림픽에 출전했습니다 - 당시 대회에 참가한 가장 어린 선수 중에 한 명이었습니다. "당시 제 키는 1m 30cm 정도였습니다. 다른 선수들 옆에 서 있으면 그들을 보기 위해 머리를 들어올려야 했습니다. 어른들과 경쟁하는 아이가 된 것 같았습니다." 왕은 아테네 패럴림픽의 경험을 이와 같이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왕은 패럴림픽의 위상 같은 것은 전혀 몰랐습니다. 코치는 그에게 이 대회가 가장 큰 대회이고 해외에서 열리다는 것을 알려주었습니다. 당시 왕은 남자 100m 접영 S8 종목에 출전했습니다 "제 코치는 저에게 평소처럼 수영하라고 일러주었습니다. 다른 선수들의 키는 상관하지 말고요. 제가 4위에 오를 것이라고는 전혀 알 수 없었습니다."

아테네행은 즐거운 기억입니다. 그 경험은 그에게 자부심으로 남아있습니다.

"올림픽 선수촌에서 저는 처음으로 많은 외국인들을 만났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헬로우'라고 인사는 했지만 그 다음 대화를 이어가는 방법을 몰랐습니다. 그래서 바로 '굿바이'라고 대화를 끝내곤 했습니다. 기분은 좋았죠."

언어 장벽에도 불구하고 그는 대회에서 만난 선수들과 함께 선수촌에서 함께 생일을 축하하기도 했습니다.

수영에서 장애인 트라이애슬론으로

수영에서 은퇴를 선언한 그 해, 2016 리우 올림픽에 장애인 트라이애슬론이 정식 종목으로 포함된다는 소식이 들렸습니다.

"저는 매우 흥분했습니다. 장애인 트라이애슬론을 통해서 패럴림픽 무대에 복귀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죠. 최근에 대회에 대한 제 생각은 변했고 확장되었습니다. 아직 새로운 가능성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변화는 쉽게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당시 중국에는 장애인 트라이애슬론 팀이 없었기 때문에 왕은 스스로의 힘으로 모든 것을 해결해야 했습니다. 훈련 비용이나 대회 참가 비용도 시간제 수영 강사 일을 하며 자비로 충당했습니다.

"선수 등록이나 훈련 방법도 몰랐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시작한 것이죠."

"지원 부족으로 열악한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점이 제 의지를 더욱 강하게 만들었죠.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대회에 참가할 수만 있다면 헤쳐나갈 수 있었습니다."

새 종목에 대한 그의 열정은 결국 피터 볼코비츠를 포함해 많은 사람들에게서 관심과 지원을 이끌어내었습니다. 볼코비츠는 상하이에 살고 있는 트라이애슬론 코치로 무상으로 왕을 코치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왕의 이야기를 들은 볼코비츠는 훈련을 돕겠다는 제안을 건넸고 왕을 위한 스폰서도 마련했습니다. 2018년 왕은 마침내 패럴림픽 사이클 국가대표팀에 합류했습니다.

2018 마데이라 장애인 트라이애슬론 월드컵이 포르투갈 풍샬에서 개최되었습니다. 왕은 대회 1시간 전에야 플랫 타이어 하나를 입수했습니다. 예비 타이어가 없었기 때문에 한 일본 선수가 여분을 빌려주었고 그 덕분에 왕은 시상대에 설 수 있었습니다.

"중요한 순간 저를 도와준 사람들이 저에게 소중한 존재입니다. 인류애에 대한 제 믿음을 확인해주고 제 인내를 인정해주는 것이기 때문이죠."

인간관계를 중시하는 왕은 대회에서 만든 인연과 우정은 국경을 초월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스포츠는 건강한 신체와 정신을 만드는 수단일 뿐 아니라, 사회적인 관용과 포용을 증진하는 가장 소중한 수단이기도 합니다."

왕은 장래에 10대들을 도울 수 있게 자신만의 체육 교육 센터를 설립할 계획도 갖고 있습니다.

"제 경험과 미소를 통해 이런 긍정적인 경험을 사람들에게 전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전 세계적인 전염병에 대처하는 긍정적인 마음가짐

2016 리우 대회에는 왕이 참가하는 PT3 클래스가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에 2020 도쿄 대회가 왕이 실제 자기 종목으로 처음 참가하는 패럴림픽입니다.

왕은 아테네 때처럼 희망에 찬 듯 합니다. "다시 한 번 시상대에 서고 싶습니다. 운이 좋다면 금메달도 얻을 수 있겠요. 대회 준비에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기 때문에 기대하니 못한 보상이 있을 겁니다."

3월 초 미국에서의 훈련을 끝내고 운남으로 돌아온 왕은 현재 자가 격리 중입니다.

세계적인 위기 때문에 이런 일에는 적응을 해야 합니다. 정신적으로든 육체적으로든 훈련이 되기도 합니다.

"세계가 위기에 빠져있기 때문에 모두에게 안전이 가장 중요한 때입니다. 모두가 안전해야 우리도 우리의 꿈을 쫓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도 대회 연기가 합당한 결정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 기간 저는 최대한 긍정적이 마음을 가지려고 합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든 긍정적인 자세를 유지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