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나시 조쉬: 패럴림픽을 통한 의식의 변화를 목표로

Manasi Joshi: A world champion that knows no bounds

패럴림픽을 통해 장애에 대한 인도 내부의 편견을 바꾸려 하는 파라 배드민턴 스타.

파라 배드민턴 선수, 마나시 조쉬는 배드민턴이 첫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는 내년 패럴림픽까지 성공의 기세를 이어가려 합니다.

2019 파라 배드민턴 세계선수권 단식 SL3 부문 금메달을 차지한 마나시는 이제 도쿄 2020 진출을 위한 라케쉬 판데이와의 혼합복식에 모든 에너지를 집중시키고 있습니다.

두 사람의 패럴림픽 희망은 작년에 거의 사라질 뻔 했습니다. 중국에서 열린 대회에 참가하던 중 판데이의 부상과 마나시의 의족이 망가지는 사고가 일어났기 때문이었죠. 그러나, 패럴림픽이 연기된 현재 마나시는 정상 궤도로 돌아오고 어서 빨리 패럴림픽 출전 포인트가 걸린 대회들에서 승리를 쌓아가고 싶어 합니다.

"훈련하고 더 나아질 수 있는 1년이 더 생겨서 행복합니다."

"세계 배드민턴 연맹이 도쿄 2020 예선을 위한 새 토너먼트들을 지정해 주길 바라고 있어요."

“패럴림픽까지는 아직 1년이 남아 있습니다. 같은 선수들이 내년에도 상위권을 유지할 것이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죠. 많은 선수들이 실력을 더 기르고 최고의 자리에 올라설 수 있습니다. 이 점이 모두에게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인도 정부가 국가 봉쇄령을 내린 가운데, 마나시는 훈련에만 집중하려 합니다.

“아카데미는 문을 닫았고, 저는 지금 부모님의 집에서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트레이너, 영양사, 마인드 코치들이 현재 상황을 고려한 훈련 루틴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제 사기도 북돋아 주고 있어요. 원래 하던 훈련과 체육관 루틴을 집에서 똑같이 할 수는 없지만, 저는 이 시간을 제 자신을 더 이해하는데 활용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을 다시 배우고 장애를 극복하다

2011년, 당시 22세였던 마나시는 인도에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교통사고로 인해 무릎 위까지 다리를 절단해야 했고, 왼팔 요골과 척골에는 복합 골절상을 입었습니다.

그 누구라도 절망에 빠질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마나시는 아니었습니다. 마나시는 이제 이 경험을 다른 관점으로 보고 있습니다.

“45일간의 입원 생활을 했지만 결국 저는 싸움에서 졌고, 그 결과로 다리를 잃었습니다. 이런 상황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정신적으로, 그리고 감정적으로 아주 안정적이었어요. 저는 긍정적이고 낙관적이었으며 매일을 희망 속에 살아갔습니다."

수 개월의 재활과 가족의 도움, 친구들의 응원으로 마나시는 걷는 법을 다시 배울 수 있었고, 새로운 생활에 적응해 나갔습니다.

“재활을 시작한지 두 달 반이 지나서야 모든 상처가 완전히 나았습니다. 즉, 보철기구 착용이 가능하게 되었죠. 다시 두 다리로 선다는 것은 정말 엄청났습니다. 제가 다시 걷는 모습을 본 순간의 부모님 얼굴은 절대 잊지 못할 거예요.”

“목발 없이 바르게 걷기 위해 수 개월의 노력과 인내, 참을성이 필요했습니다. 목발은 사고 이후부터 제 정체성의 일부가 되어 있었으니까요.”

“이 모든 여정은 내면의 나에 대한 배움에 더해 사람의 몸이 다른 상황들에 어떻게 적응할 수 있느냐, 그리고 우리가 더 나은 자신과 사회를 만들기 위해 어떻게 스스로를 독려할 수 있느냐에 대해 알아가는 시간이 되어오고 있습니다.”

다시 두 다리로 선다는 것은 정말 엄청났습니다

제가 다시 걷는 모습을 본 순간의 부모님 얼굴은 절대 잊지 못할 거예요

가족과 친구의 응원

사고 이후 마나시는 움직임을 되찾는데 도움이 될 재활 활동을 찾기 시작했고, 어렸을 적 열정을 쏟았었던 배드민턴으로 눈을 돌리게 되었습니다.

“6-7살 때부터 아버지에게 배드민턴을 배웠습니다. 처음에는 눈-손의 협응력을 높이고 공을 제대로 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제쪽으로 그냥 셔틀콕을 던져 주는 정도였어요.”

마나시가 배드민턴을 다시 익힐 수 있도록 도움을 준 것은 열성적인 배드민턴 선수인 동생, 쿤잔이었습니다. 하지만 장애를 가지고 배드민턴을 하는 것 자체가 힘든 도전이었죠. 마나시는 원래 배드민턴에 타고난 재능을 보였었고 학생때부터 배드민턴을 해온 경험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십대 선수로 대학을 대표하기도 했고, 다양한 실업 대회들에도 나갔었죠. 그러나, 지금은 배드민턴을 어떻게 치는지부터 배워야 하는 입장이 되었습니다. 신체적으로 힘든 스포츠를 보철기구까지 찬 상태로요.

“배드민턴에 대한 제 사랑에 불을 붙이고, 다시 시작하도록 의욕을 심어 준 것이 쿤잔이었습니다. 회사에서 완전히 지쳐서 집에 와도 같이 가서 배드민턴을 쳐야만 했어요. ‘안돼’는 절대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동생 말고도 스포츠 메니지먼트 일을 하던 여동생 누푸르가 첫 매니저가 되었고 스폰서 계약 체결에도 도움을 줬습니다.

“제가 다친 이후로 우리 가족의 결속력이 더 강해졌습니다. 가족이 있었기 때문에 장애인 운동 선수로서의 역할을 다할 수 있었고, 장벽들을 깨뜨려갈 수 있었어요.”

“제 친구와 동료들도 병원에서 제 곁을 떠난 적이 없었습니다. 동료들은 회사 안팎에서 모두 저에게 정말 힘이 되어 줍니다. 사무실에서 케이크를 놓고 제 사고일을 기억하기도 하죠.”

BWF / Alan Spink

세계 챔피언이 되다

사고 이후 단 3년만에 마나시는 파라 배드민턴 선수로 큰 성장을 이뤄냈습니다. 하지만 첫 몇 년 동안은 훈련과 보철 비용을 대기 위해 직장 생활까지 병행해야만 했죠.

그리고 이 모든 희생들은 결과를 만들어 냈습니다.

2015년, 마나시는 세계선수권 혼합복식에 출전했고 은메달을 따냈습니다. 그리고 2019년 6월에는 SL3 부문에서 세계 2위까지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그 상승세로 2019 세계선수권에서 세계 랭킹 1위, 파룰 파마를 꺾고 금메달을 차지할 수 있었습니다.

“최고로 행복했습니다. 정말 열심히 노력해왔으니까요. 이것을 위해 정말 많은 것들을 포기했습니다. 집을 떠나 다른 도시로 이사까지 갔고, 회사는 무급으로 안식 기간을 가지는 상태였으며 주 6일, 하루 3번의 훈련을 했습니다. 어떤 날은 훈련 후 보철사를 만나기 위해 1.5시간을 이동해야 했고, 보철기구에 몇 가지 변화를 준 뒤에 아카데미로 돌아와 다음 훈련 세션을 마무리지었습니다.”

"따라서, 금메달을 가지고 돌아왔다는 것은 당연히 저에겐 큰 성취감을 주는 일이었습니다. 제 팀에게도 마찬가지였고요.

BWF / Alan Spink

장애에 대한 의식을 높이다

세계 챔피언이 된 마나시는 스타로서의 위치를 활용해 인도내에서 장애인 선수들과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겪는 고난에 대해 이야기해오고 있습니다.

“장애인 선수로서 제 목소리와 생각들이 더 증폭될 수 있고, 평등을 원하는 제 시각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될 수 있다고 느낍니다.”

“인도에서 장애는 여전히 차별받고 포용의 기회나 공간은 없습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발전과 의사 결정에서 동등한 파트너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포용성의 목표를 깨닫고, 관점의 변화를 가져오는 것이 우선적으로 필요합니다.”

마나시의 위시리스트 중 1번은 인도에서 보철기구 구하기가 좀 더 쉬워지는 것입니다.

“다리를 절단한 사람의 입장에서 보철기구의 높은 가격과 여기에 추가로 붙는 세금은 가장 큰 걱정 중 하나입니다. 보철기구는 인도 사람들이 평생 모아야 할 정도의 금액으로 팔리고 있어요.”

마나시는 보철기구 연구를 위한 모금 활동도 벌이고 있습니다. 지금의 보철 기술은 육상처럼 앞으로 움직이는 동작에 맞게 설계되어 있지만, 배드민턴은 이와는 다른 움직임들을 필요로 하는 스포츠니까요.

인도를 위한 메달

패럴림픽에 출전하겠다는 개인적인 꿈 외에도 마니시가 메달을 원하는 이유는 인도에서 포용성을 높이기 위해서입니다.

“2019 BWF 파라 배드민턴 세계선수권에서의 우승은 많은 인도 언론들이 다뤘습니다. 이것으로 저는 파라 배드민턴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과 호기심이 존재한다고 믿게 되었죠. 만약 제가 패럴림픽에 출전하고 메달을 따낸다면, 장애인 스포츠가 더 많은 관심을 받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도 패럴림픽 출전은 꿈이 이뤄지는 것과도 같을 것입니다. 2015년부터 한 발씩 다가서온 그 꿈이요.”

“만약 메달을 따낸다면 포용성과 교통 안전에 대한 새로운 이야기들이 시작될 것입니다. 그리고 인도 내에서 장애에 관한 인식도 많이 변하게 되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