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톤 자펠리, 도쿄 2020의 영광을 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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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격의 정밀함에 빠졌고, 그 부분을 가장 좋아합니다. 정신력의 싸움이에요. 과정에 통달하게 되면 모든 것은 마음에 달리게 됩니다. 골프도 똑같아요.’

십대 시절의 안톤 자펠리는 떠오르는 골퍼였습니다. 하지만 호주 서부 지역에서 그레이엄 마쉬 주니어 골프 재단 대회들에 참가할 당시만 해도, 골프에서의 성공에 필요한 집중력이 자신을 패럴림픽 무대로 이끌어 주고, 세계 최고의 장애인 소총 사격 선수 중 한명으로 만들어 줄 것이란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했습니다.

골프처럼 사격도 외부 요인을 완전히 차단하는 것뿐만 아니라 자신의 생각까지 조절하는 고도의 집중력이 요구되는 스포츠입니다. 골프에서도 집중력이 한 순간만 흐트러지면 단순한 파 상황이 보기나 더 악화된 상황으로 흘러갈 수 있습니다.

자펠리: “비슷한 요소가 아주 많습니다. 저는 사격의 정밀함에 바로 빠져들었고, 그 부분이 가장 좋아요. 정신력의 싸움입니다. 과정을 통달하게 되면 모든 것은 마음에 달리게 됩니다. 골프도 똑같아요.”

“공을 1마일 넘게 칠 수 있어도 부담감을 이겨내고 마음을 다스려야 하는 순간에 그렇게 할 수 없다면 아예 안치는 게 낫습니다.”

“사격도 아주 비슷합니다. 장비와 기술에서 거의 차이가 없는 탑 레벨에 올라간 다음부터는 99퍼센트 정신력 싸움입니다. 모든 것은 머릿속에서 결정되죠.”

내년 도쿄에서 자신의 두 번째 패럴림픽 출전을 이루기까지 걸어온 자펠리의 여정은 호주와 세계 곳곳을 누빈 길고도 다채로운 모험이었습니다.

스포츠와 회복

자펠리의 인생은 17살 때인 1989년에 자동차 사고로 척추를 다치며 영원히 바뀌게 됩니다. 호주 중서부의 칼굴리에서 서북쪽으로 75km 지점에서 무면허이던 당시 여자친구가 몰던 차가 울퉁불퉁한 도로에서 균형을 잃고 1m 높이의 제방을 들이받아 뒤집어졌던 것입니다.

“흔히 안전벨트 골절이라고 알려진 부상이었습니다. 안전벨트가 차 밖으로 튕겨나가는 것을 막아줬지만, 그와 동시에 척추를 부러뜨렸어요.”

퍼스에서 진행된 장기간의 재활 기간은 정말 고통스러웠고, 그때까지 가져왔던 꿈과 희망을 모두 잃었다는 사실은 받아들이기 힘들었습니다.

“사고 전까지 제 인생은 궤도에 올라 있었습니다. 어렸기 때문에 수많은 목표들을 세우고 그 목표를 향해 노력해 가고 있었어요. 멋진 인생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습니다. 내가 어디를 향해 가는지도 정확히 알고 있었어요. 하지만 한순간에 모든 것이 사라졌습니다.”

자펠리는 칼굴리로 돌아오지만 휠체어 사용자로 살아가기에는 제한이 있었기 때문에 곧 다시 퍼스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퍼스에서 패럴림픽 휠체어 레이서, 루이스 수바주를 만나게 된 것이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스포츠는 회복의 큰 부분을 차지했습니다. 저를 정신차리게 해 준 것이 스포츠였다고 생각합니다.

“테니스가 정말 치고 싶었고, 휠체어 스포츠를 찾다가 루이스와 만나게 되었습니다. 루이스는 ‘아니, 아니, 테니스 치고 싶은 게 아냐. 트랙용 휠체어가 있으니 우리하고 훈련을 한 번 해보자’ 라고 말했고, 거기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몇 주 만에 저는 주당 4-5회의 훈련을 진행했고, 바로 도로 경주에 뛰어들게 되었습니다.”

곧 자펠리는 호주 휠체어 레이싱 팀과 함께 미국과 캐나다를 돌며 대회에 출전했고, 1993년에는 애틀랜타에서 열린 유명한 피치트리 로드 레이스에도 참가합니다. 그 경주에서 호주 대표팀은 대단한 활약을 펼쳤고, 소바주와 폴 위긴스가 남녀 휠체어 우승을 모두 차지합니다.

“폴은 10km 20분 벽을 최초로 깨뜨렸습니다. 저는 22위로 들어왔어요.”

1996 애틀랜타 패럴림픽이 다가오는 시점에서, 자펠리는 대표팀 승선이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자펠리는 떠오르는 가수, 도나 심슨을 만나게 됩니다. 심슨과 그녀의 여동생 비키, 조시 커닝햄은 포크록 밴드, 더 와이프스를 결성했죠.

애틀랜타 패럴림픽을 몇 개월 앞둔 시점에서 자펠리는 목욕 중 다리에 화상을 입었고 트랙용 휠체어에 오르지 못하게 됩니다.

북쪽으로 투어를 떠나는 와이프스는 회복중인 자펠리를 초대했고, 자펠리는 부상에서 회복하는 3-4주간을 밴드와 함께 보내기로 합니다.

밴드의 공연 매니저이자 장비 관리자가 된 자펠리는 그 때를 이렇게 기억합니다. “브룸으로 떠나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4년동안 겨울을 보지 못했어요.”

“그 당시 스포츠계에 있던 많은 사람들을 실망시켰습니다. 하지만 정말 멋진 시간을 보냈어요. 휠체어를 타고 호주에서 4-5년 동안 멋진 친구들과 함께 여행을 하며 지냈습니다. 후회하지 않아요.”

밴드는 멜버른으로 이주한 뒤 잠시 흩어졌고, 자펠리와 심슨은 퍼스로 돌아왔습니다. 이후 밴드가 다시 뭉쳤지만 자펠리는 퍼스에 남는 것을 선택했고, 2009년에 자펠리의 친구들은 쿼드바이크로 호주를 횡단하는 모험에 대한 말을 꺼냈습니다.

“저도 초대를 받았습니다. 몇 번의 회의를 거치자 계획은 벤 허 보다 더 커졌어요. 여행하는 동안 사고가 났던 장소도 방문해서 다큐멘터리를 만들기로 결정했습니다.”

“다큐멘터리는 기본적으로 마음을 먹고 행동에 옮긴다면 뭐든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내용이었습니다.”

사고 지점을 방문하는 것은 자펠리에겐 힘든 일이었습니다.

“저에겐 좋은 장소가 아니었습니다.”

놀랍게도 사고 후 21년이 지났지만 그때 탔던 전 여자친구 부모님 차의 번호판이 그대로 사고 현장에 남아 있었습니다. 이 모험 이후 도로 경주 커리어를 끝낸 자펠리는 새로운 도전을 찾았고, 2011년에 사격장으로 초대받게 됩니다.

Ⓒ Paralympics Australia
Ⓒ Paralympics Australia

사격에 빠지다

칼굴리에서 자라난 자펠리는 지역 PCYC 클럽에서 공기소총을 쏜 경험이 있었고, 곧바로 스포츠 사격에 끌렸습니다.

“항상 골프와 비슷한 스포츠를 찾고 있었습니다. 개인이 하는 스포츠요.”

2014년, 자펠리는 잉글랜드와 독일에서 각각 열린 월드컵과 세계 선수권에 참가하는 것으로 사격 국제 대회를 처음 경험합니다. 그리고 1년 후, 크로아티아에서 자신의 첫 번째 국제 대회 메달인 은메달을 차지했고, 이와 함께 2016 리우 패럴림픽 출전 자격도 획득합니다.

리우 패럴림픽은 자펠리에게 힘든 경험이었습니다. 브라질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부터 몸이 좋지 않았고, 대회 내내 소총 장비 문제와 씨름하는 것으로 결국 혼성 10m 공기소총 복사 SH1에서 18위, 혼성 50m 공기소총 복사 SH1에서 36위에 머무릅니다.

그러나, 다음 해에 자펠리는 되살아났고 UAE와 크로아티아에서 열린 2017 세계 사격 파라스포츠( WSPS)에서 동메달들을 따낸 것에 더해 크리스 피트와 함께 호주 사격 협회 올해의 장애인 사격 선수상을 공동 수상합니다.

자펠리의 상승세는 작년까지 이어졌고, 하노버에서 열린 WSPS 대회에서 은메달, 그리고 시드니에서 열린 WSPS 세계 선수권에서 금메달과 0.3포인트 차로 은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이런 활약으로 2019 올해의 장애인 사격 선수 선정과 함께 애슐리 아담스 퍼페츄얼 올해의 선수로도 선정됩니다.

그리고 현재, 서호주 스포츠 대학(WAIS)의 지원 하에 자펠리는 국경이 다시 열리고 2020 도쿄 패럴림픽 준비를 시작할 수 있게 될 때를 고대하고 있습니다.

제공: 국제패럴림픽위원회(IPC)/호주 패럴림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