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딸이 아닌, ‘여서정’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 대한민국의 여서정, 8월 22일: 2018 자카르타 팔렘방 아시안게임 기계체조 여자 도마 경기에서.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 대한민국의 여서정, 8월 22일: 2018 자카르타 팔렘방 아시안게임 기계체조 여자 도마 경기에서.

여서정은 ‘체조 DNA’를 타고난 선수입니다. 애틀랜타 1996에서 한국 올림픽 체조 역사상 최초로 은메달을 차지한 여홍철과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안게임 여자 체조 단체전 동메달리스트 김채은(김윤지)의 딸이라는 점만으로도 여서정이 체조계의 주목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여서정을 단순히 누군가의 딸이라고만 규정한다면 큰 실수입니다. 한국 여자 체조의 현재이자 미래, 여서정의 다음 목표는 올림픽 메달입니다.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여서정이 여자 기계체조 도마 부문에서 1위에 오르며 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로 등극했습니다. 한국 여자 체조계에서 32년 만에 나온 아시안게임 금메달일 뿐만 아니라, 여자 도마 부문에서는 최초로 금메달을 차지하며 새로운 역사를 쓴 것이었습니다. 여서정은 최종 성적을 확인한 뒤 울음을 터뜨렸고, 당시 한국 방송사를 통해 딸의 경기를 중계하던 여홍철도 기쁨과 대견함에 눈물을 보였습니다.

여홍철도 1994년 히로시마, 1998년 방콕 아시안게임에서 남자 기계체조 도마 부문 금메달을 차지하며 아시안게임 2연패의 기록을 남긴 전직 체조 선수입니다. 게다가 여홍철이 애틀랜타 1996에서 목에 걸었던 남자 도마 은메달은 한국 체조계 최초의 올림픽 메달로, 여홍철을 빼고는 한국 체조의 역사를 온전히 설명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 여홍철과 또 한 명의 아시안게임 메달리스트 김채은(개명 전 김윤지)이 만나 결혼을 하고 딸을 낳았으니, 여서정에게 ‘누구의 딸’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니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여서정 스스로도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는 “되게 싫었다”며 편견을 겪었던 경험을 털어놓기도 했습니다. “솔직히 저 열심히 했고, 못하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어릴 때 엄마가 체조 심판이었으니까 ‘엄마 때문에 됐네’ 하는 소리가 막 들리는 거예요. 결국 엄마가 심판을 안 봤어요.”

하지만 여서정은 끊임없는 노력과 훌륭한 성적을 토대로 한국 여자 체조의 미래로서 진가를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아시안게임 데뷔 무대였던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여자 도마 금메달에 이어 2019년 FIG 종목별 월드컵에서도 여자 도마 금메달을 거머쥐며 실력을 증명해 보인 것입니다.

또한 2019년에는 코리아컵 제주 국제체조대회에서 자신의 이름을 딴 기술 ‘여서정’을 성공시키며 FIG의 공식 승인을 받기도 했습니다. 이로써 여서정은 여자 선수로서는 한국 최초로, 남자 선수들까지 포함하더라도 4번째로 FIG의 기술 승인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최근 국제 대회에서 좋은 모습을 보이며 도쿄 2020까지 순항하는 듯했지만 전세계를 덮친 COVID-19로 인해 올림픽이 1년 연기되고 말았습니다. 진천선수촌 역시 폐쇄됨에 따라 여서정은 집에 머무르면서 개인 훈련을 이어가는 한편 온라인으로 학교 수업도 따라가고 있습니다. 코치진의 지도를 받으며 훈련하는 것과는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진천선수촌이 다시 열리기를 기다렸지만, 벌써 5달이나 대표팀 재소집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데다가 8월에는 COVID-19의 확산 속도가 다시 빨라지면서 선수촌 개방 계획도 다시 불투명해졌습니다.

여서정도 한국 언론사와의 인터뷰를 통해 복잡한 심경을 드러냈습니다.

“모든 스포츠가 그렇겠지만 특히 기계체조는 전신운동이라서 몸 관리를 잘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 살 더 나이를 먹는 만큼 그에 따라 몸의 컨디션을 올리기 위한 노력이 많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오히려 기술 ‘여서정’을 더 완벽히 구사할 수 있는 시간을 벌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난도 6.2의 어려운 기술인 만큼 아직까지는 착지가 불안정하다는 평가를 받지만, 내년 대회까지 남은 1년 동안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는 시간으로 삼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아시안게임, FIG 종목별 월드컵 금메달에 이어 한국 여자 체조 역사상 최초의 메달까지 노리고 있는 여서정. 아버지 여홍철이 끝내 이루지 못한 올림픽 금메달의 목표를 달성함으로써 ‘누구의 딸’이 아닌 ‘여서정’ 그 자체로 더욱 우뚝 설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