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역사상 가장 치열했던 도로 사이클 피니시

1964 도쿄 올림픽 도로 사이클 남자 개인 도로 경주에서 출발하는 선수들. (Photo by Keystone/Hulton Archive/Getty Images)
1964 도쿄 올림픽 도로 사이클 남자 개인 도로 경주에서 출발하는 선수들. (Photo by Keystone/Hulton Archive/Getty Images)

1964년 10월에 열렸던 도쿄에서의 첫 올림픽을 기념하기 위해 도쿄 2020은 56년 전 도쿄 올림픽에서 나왔던 역사적인 순간들을 되돌아보는 시리즈를 준비했습니다. 오늘 이야기는 0.2초 사이에 금메달부터 99위까지가 결정된 혼돈의 도로 사이클 피니시입니다.

배경

사이클은 근대 올림픽이 시작된 1896년, 제1회 아테네 대회부터 올림픽 정식 종목이었습니다.

사이클에서는 아주 미세한 차이로 영광과 좌절이 나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그 부분을 감안하더라도 1964 도쿄 올림픽에서 나온 레이스는 정말 엄청났습니다.

남자 개인 도로 경주에 참가한 37개국, 139명의 선수들은 194.832km를 달려야 했고, 경주는 거의 폭우 속에서 진행되었습니다.

10월 22일로 예정된 도로 독주 6일 전에 열렸던 도로 사이클의 첫 번째 종목, 단체 타임 트라이얼에서는 네덜란드가 금메달, 이탈리아가 은메달, 스웨덴이 동메달을 따냈습니다. 따라서 이 세 나라의 선수들이 개인 도로 경주에서도 강세를 보일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죠. 하지만, 아마추어 선수만이 참가하는 무대에서 누가 우승할지를 예상하기는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경주에 나선 선수들 사이에는 이탈리아의 펠리스 ‘더 피닉스’ 그리몬디와 벨기에의 발터 ‘더 불독 오브 플랜더스’ 고드프루트, 에디 ‘더 카니발’ 메르크스 같은 떠오르는 스타들도 몇몇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1964 도쿄 올림픽 도로 사이클 개인 도로 경주에서 금메달을 따낸 마리오 자닌(중앙). (Photo by Keystone/Hulton Archive/Getty Images)
1964 도쿄 올림픽 도로 사이클 개인 도로 경주에서 금메달을 따낸 마리오 자닌(중앙). (Photo by Keystone/Hulton Archive/Getty Images)
2019 Getty Images

영광의 순간

도로 사이클에서는 일정 시간이 지나면 선두 그룹이 떨어져 나가고 앞서 달리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도쿄 1964에서는 그와는 아주 다른 양상이 펼쳐졌습니다.

눈으로 직접 보지 않으면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상황.

1964 도쿄 올림픽 도로 경주 코스는 일반적인 경주 코스와는 다른, 보기 드문 구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보통 선두 그룹은 오르막 구간에서 치고 나가지만 도쿄 1964의 코스에는 65m의 짧은 오르막 구간이 전부였습니다.

일부 선수들이 앞으로 치고 나가려는 시도를 했지만 리드를 지켜내지 못하는 상황이 계속 이어졌습니다. 결국 피니시가 가까워진 상황에서도 주 그룹이 그대로 뭉쳐서 달려나갔고, 마지막 한 번의 스프린트에 모든 것이 걸리게 되었습니다.

고개를 숙이고 온 힘을 다해 페달을 밟는 선수들. 수많은 선수들이 동시에 피니시라인까지 질주했고, 51명의 선수들이 모두 4:39.51을 기록한 혼돈의 스프린트 끝에 금메달은 0.01초 차이로 정해졌습니다.

이탈리아의 마리오 자닌(4:39:51.63)이 1위, 그리고 덴마크의 크옐 로디안(4:39:51.65)과 벨기에의 발터 고드프루트(4:39:51.74)가 그 뒤를 따랐습니다.

그러나, 금메달리스트 자닌과 99위 사예드 에스마일 호세이니의 차이는 공식 기록으로 0.2초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습니다.

문자 그대로 올림픽 역사상 가장 치열했던 피니시였습니다.

도쿄 1964: 마리오 자닌

그 이후

올림픽 챔피언 자리에 오른 자닌은 그 이후 1966 뷰엘타 아 에스파냐의 한 스테이지에서 우승한 것 이외에는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합니다. 그리고 은메달리스트 로디안은 도쿄 1964 이후 국제 무대에서 은퇴했고, 덴마크 국내 대회에만 출전합니다.

한편, 동메달을 따낸 고드프루트는 1970 투르 드 프랑스에서 그린 저지를 따냈고, 파리-루베와 플랑드르 투어를 포함한 굵직한 대회들에서 다수의 우승을 거두게 됩니다. 은퇴 후에도 사이클계에서 계속 일을 해갔던 고드프루트는 나중에 프로 팀의 스포츠 디렉터까지 맡게 됩니다.

하지만 올림픽 이후 최고의 성공을 거둔 선수는 시상대를 벗어난 곳에 있었습니다. 에디 메르크스, ‘더 카니발’이란 별명의 이 선수는 도쿄 1964에서는 12위에 그쳤지만 역대 최고의 도로 사이클리스트 중 한 명으로 남게 됩니다.

지로 디탈리아 5회 우승, 투르 드 프랑스 5회 우승과 뷰엘타 아 에스파냐 1회 우승. 여기에 더해 투르 드 프랑스 스테이지 최다 우승 기록(34)은 아직도 깨지지 않고 있으며 마찬가지로 그랜드 투어 최다 우승 기록(11회)과 세계 선수권 최다 우승 공동 기록(3회)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내년에 열리게 될 도쿄 2020에서는 도로 사이클의 출발점과 결승점이 다릅니다. 남자 경주는 무사시노노모리 공원에서 출발해 244km를 달리게 되며 도쿄 1964의 단순한 코스와는 달리 코스의 총 상승고도가 4,865m로, 선수들에게 치고 나갈 수 있는 수많은 지점들이 제공되는 것입니다.

따라서...어쩌면 조금 슬프기도 하지만 56년 전 일본에서 있었던 놀라운 피니시 장면이 내년에도 또 나올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