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가리, 매직 마자르와 그 후예들

헝가리 축구 대표팀, 1964 도쿄 올림픽에서.
헝가리 축구 대표팀, 1964 도쿄 올림픽에서.

올림픽의 역사 속에는 ‘인크레더블 팀’이라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엄청난 성과를 낸 팀들이 존재합니다. 도쿄 2020을 통해 올림픽을 빛냈던 잊을 수 없는 팀과 스타 플레이어들의 이야기를 다시 한 번 만나보세요. 시리즈의 이번 시간에는1960년대를 지배했던 헝가리 남자 축구 대표팀을 돌아봅니다.

배경

나이 어린 축구 팬들은 믿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옛날, 지난 세기의 중반부에 헝가리는 축구계에서 이름을 떨치던 나라였습니다. 9세기, 헝가리에 정착한 유목민인 마자르족의 이름을 따 매직 마자르란 별명으로 불리던 헝가리 대표팀은 축구를 완전히 바꿔놓은 팀이었으니까요. 헝가리는 그 당시로는 가장 재미있고 직관적인 축구를 만들어냈으며 1950년대와 60년대 올림픽 무대에서 최대의 성공을 거둘 수 있었습니다.

위대한 헝가리 대표팀의 전설은 1952 헬싱키 올림픽에서 탄생했습니다. 매년 세계 축구 최고의 골에 주어지는 푸스카스상 명칭의 유래이기도 한 푸스카스 페렌츠를 필두로 미래의 전설들, 치보르 졸탄, 보지크 요제프, 코치시 샨도르, 히데그쿠티 난도르가 포함된 헝가리 대표팀은 5연승과 20득점 2실점의 기록으로 올림픽 왕좌를 차지한 것입니다.

1952 올림픽의 헝가리는 모든 상대를 궤멸시켰고, 다음 해인 1953년 11월, 런던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친선 경기로 이들과 맞붙게 된 잉글랜드 대표팀도 헝가리의 강력함을 실감했습니다. 경기 시작 60초만에 골을 넣은 히데그쿠티가 헤트트릭, 푸스카스는 두 골을 넣은 그 경기에서 축구 종주국이자 최강이라 불리던 잉글랜드는 헝가리에게 6-3으로 무릎을 꿇었고, 이는 당시 잉글랜드의 역대 두 번째 홈 패배이자 세기의 경기로 남게 되었습니다.

소문에 따르면 그 경기 당시 잉글랜드 선수 한 명이 워밍업 도중 키가 작고 살집이 있는 푸스카스를 발견하고는 동료에게 이런 말을 했었다고 합니다. “[푸스카스를 보며] 저 작고 뚱뚱한 놈을 봐. 박살내버리자.”

1950년부터 1956년까지 헝가리 대표팀은 총 42승을 올렸고, 7번의 무승부와 단 1번의 패배를 기록했습니다. 하지만 그 한 번의 패배는 스위스 베른에서 치러진 서독과의 유명한 1954년 월드컵 결승전이었고, 당시 전력상 매우 열세로 평가되었던 서독에게 2-3으로 졌습니다.

1965년 5월 5일,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있었던 국제 친선 경기. 잉글랜드의 수비수 잭 찰튼을 돌파하려는 헝가리의 페렌츠 베네. (Photo by Don Morley/Allsport/Getty Images)
1965년 5월 5일,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있었던 국제 친선 경기. 잉글랜드의 수비수 잭 찰튼을 돌파하려는 헝가리의 페렌츠 베네. (Photo by Don Morley/Allsport/Getty 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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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의 승리

그러나, 헝가리 역대 최고의 멤버로 구성된 팀은 1952년 올림픽 금메달 이후 아무런 우승도 거두지 못했습니다. 1956 멜버른 올림픽이 열릴 무렵 일어난 정치적 혼란은 타이틀 방어를 불가능하게 만들었고, 그 해 헝가리 혁명과 소련의 탄압으로 인해 1956 올림픽의 축구는 1912년 이래로 가장 소규모인 11개 팀만이 참가한 대회가 되었습니다.

헝가리의 매직 마자르 세대도 대부분의 스타들이 서유럽으로 떠나며 막을 내렸고, 헝가리의 스타들은 새로운 국가, 새로운 무대를 열광시켰습니다. 코치시와 치보르는 앞서 스페인으로 떠났던 쿠벌러 라슬로를 따라 바르셀로나로 갔고, 푸스카스는 레알 마드리드의 전설로 이름을 남기게 됩니다.

하지만 헝가리에 남은 팀, 떠난 스타들의 그늘에 가린 채로 배우고 훈련했던 굶주린 젊은이들이 주축이 된 팀도 증명할 것이 남아 있었습니다. 이 새로운 헝가리 스쿼드는 1960 로마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따내며 헝가리 축구의 깊이가 어느 정도인지를 전 세계에 보여줬습니다.

그리고 로마 올림픽에서 시상대에 서는 것으로 헝가리의 올림픽 축구 지배는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됩니다. 1964년, 제 2회 유러피언 네이션스 컵(현재의 UEFA 유러피언 챔피언십)에서 준결승에 올랐던 젊은 헝가리 대표팀은 헝가리의 두 번째 올림픽 금메달을 목표로 1964 도쿄 올림픽에서 치열한 경쟁을 펼쳤습니다. 도쿄에서 헝가리 대표팀의 하이라이트는 19살의 주장 페렌츠 베네가 여섯 골을 모두 넣으며 모로코를 대파한 경기였고, 베네는 아랍 연합 공화국(지금의 이집트)과의 경기에서 네 골을 더 집어넣었습니다. 더하여 결승에서 체코를 2대1로 꺾으며 정상에 오르기까지 베네는 5경기동안 12골을 터뜨렸습니다.

4년 후인 1968년, 헝가리는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 당시 더 옵저버지의 존 알로트가 “만약 경기의 재미로 월드컵이 수여된다면 그 주인공은 헝가리가 되어야 할 것”이라 평했던 그 팀이 거의 그대로 참가한 멕시코시티 올림픽에서 또 하나의 올림픽 금메달을 차지합니다.

그 당시 헝가리 대표팀은 전 세계 어디와 비교해도 가장 공격적이고 스타일리시한 축구를 구사하는 팀이었습니다.

1968 멕시코시티 올림픽에서 헝가리를 상대했던 팀들은 그런 평가에 아무런 이의도 제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헝가리 대표팀은 금메달을 향해 여유롭게 나아갔고, 가나와 2-2로 비겼던 경기만이 유일한 오점으로 남았습니다. 총 6경기를 치르며 헝가리는 단 세 골을 허용한 반면 18골을 집어넣었고, 결승전에서는 불가리아를 4-1로 완파했습니다. 또한 이 승리로 헝가리는 영국과 우루과이에 이어 세 번째로 올림픽 축구 2연패를 달성한 팀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2008년에 아르헨티나가 이 대열에 합류합니다.)

1966 월드컵 당시 팀 숙소였던 팰리스 호텔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헝가리 선수들. 왼쪽부터 페렌츠 베네, 임레 마테츠, 베노 카포츠타. (Photo by Central Press/Hulton Archive/Getty Images)
1966 월드컵 당시 팀 숙소였던 팰리스 호텔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헝가리 선수들. 왼쪽부터 페렌츠 베네, 임레 마테츠, 베노 카포츠타. (Photo by Central Press/Hulton Archive/Getty 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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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 플레이어들

‘황제’라는 별명을 가진 얼베르트 플로리안은 1960년대 헝가리 대표팀(1959년 대표팀 데뷔)의 독보적인 스타였습니다. 페렌츠바로시에서 351경기 256골을 넣은 플로리안이 어느 정도의 평가를 받고 있는지는 2007년부터 2013년까지 사용된 페렌츠바로시의 홈구장 이름이 슈터디온 얼베르트 플로리안이었던 것으로도 잘 알 수 있습니다.

얼베르트는 미드필드까지 내려와 기회를 만들어가는 것을 즐겼던 스트라이커로, 1960년대 헝가리 선수들 중에서는 혁명 전의 영웅들인 치보르와 푸스카스를 가장 직접적으로 계승하는 선수라 할 수 있습니다. 이 두 선수 중에서도 푸스카스는 팀 동료인 히데그쿠티가 “최고”라고 칭했던 선수로, “푸스카스는 축구에 대한 육감을 가진 선수다. 1,000가지 해결책이 있으면 푸스카스는 1,001번째 방법을 선택한다.”고까지 평가했던 선수였습니다.

그리고 얼베르트가 1967 발롱도르를 수상했을 때 동독 대표 호르스트 브래운리히는 “얼베르트는 새로운 헝가리 팀을 만들었고, 월드클래스 축구 선수로서의 모든 실력을 쌓기까지 했습니다. 보지크와 푸스카스를 모두 가진 선수에요.” 라고 평가하기도 했습니다.

주장 베네, 야노스 파르카스, 졸탄 바르가(페렌츠바로시에서 얼베르트와 함께 뛴 동료. 페렌츠바로시는 1965 인터시티 페어스 컵 결승에서 이탈리아의 명문유벤투스를 꺾었다.)도 1960년대 헝가리 대표팀의 뛰어난 주역들이었습니다. 세계 최고의 선수들을 잃은 대표팀을 아주 멋지게 되살려낸 이들의 위풍당당함은 그 뒤로도 수십년간 축구계에 영감을 주었습니다.

흰색 유니폼의 헝가리 대표팀, 1964 올림픽 축구 결승전에서.

그 이후

1972년, 뮌헨에서의 올림픽 축구 토너먼트 결승에서 폴란드에게 패하며 따낸 은메달을 마지막으로 헝가리는 예전의 영광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실 헝가리가 국제 무대에서 빛을 잃은 것은 혜성같은 등장만큼이나 갑작스러웠습니다.

헝가리가 월드컵 무대에 마지막으로 섰던 것은 1986년이었고, 그 이전의 두 월드컵과 마찬가지로 조별 리그에서 탈락했습니다. 과거 전 세계에 새로운 축구를 전파했던 올림픽 무대에서는 1972년 결승 이후 단 한 번 – 애틀랜타 1996 – 의 본선 진출만을 이뤄냈고, 여기서도 세 경기 모두 패했습니다.

헝가리의 축구 지배는 오래가지 못했지만, 1950년대외 60년대의 매직 마자르가 없었다면 1970년대 토탈 풋볼의 오렌지군단, 네덜란드를 볼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금세기 초반에 축구를 지배했던 스페인의 바르셀로나가 구사하던 점유율 위주의 티키타카 전술도 볼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처럼 과거의 헝가리 스타들은 아름다운 스포츠, 축구를 더욱 아름답게 만드는 사슬의 강력한 연결 고리로 지금까지도 남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