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을 이어온 수잔 렝글렌의 유산

1920 안트베르펜 올림픽 여자 테니스 경기 중인 프랑스의 수잔 렝글렌
1920 안트베르펜 올림픽 여자 테니스 경기 중인 프랑스의 수잔 렝글렌

올림픽 역사는 수많은 챔피언과 신기록, 그리고 멋진 이야기로 가득 차 있습니다. 하지만, 기묘한 일이나 재미있는 일화, 감동적인 이야기와 슬픈 기억도 놀라울 정도로 많이 존재하지요. 저희는 매주 과거의 올림픽 이야기를 발굴해 내는 시간을 통해 여러분들에게 재미와 감동을 선사해 드리려 합니다. 이번 주에 살펴볼 이야기는 안트베르펜 1920 대회에서 나온 여자 테니스의 역사적인 금메달 이야기입니다. 

배경

여자 테니스계를 완전히 바꿔 놓는 인물, 수잔 렝글렌은 1899년 파리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렝글렌이 태어난 지 단 12년만에 그 변화는 시작됩니다.

“절대로 잊지 못할 하루가 있습니다. 저는 막 12살이 되었고 콩피에뉴에서 돌아온 아버지가 ‘자, 테니스 라켓하고 공 몇 개 사왔다. 코트에서 어떨지 한 번 보자.’ 하시며 3.5프랑에 산 라켓, 어린이용 라켓과 정말 이상하게 생긴 테니스 공을 저에게 건네줬던 날이 바로 그날입니다.”

렝글렌의 아버지는 딸의 천식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테니스를 시켰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렝글렌은 테니스 신동으로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습니다. 15살 때 이미 프랑스 인터내셔널 챔피언십(프랑스 오픈의 전신) 결승까지 올라갔고, 인터내셔널 클레이코트 챔피언십에서는 우승까지 거둔 것입니다.

그러나, 제1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세상의 다른 모든 것들과 마찬가지로 렝글렌의 커리어도 멈춰서야 했습니다.

전쟁이 끝난 뒤 테니스 국제 대회들이 재개된 1919년. 렝글렌의 실력은 수 년간의 공백기에도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은 듯 했습니다. 바로 그 해에 참가한 윔블던에서 도로시 램버트 챔버스와 역사에 남을 명승부를 펼치며 자신의 첫 윔블던 우승을 거둔 렝글렌은 이후 1920, 1921, 1922, 1923, 1925년으로 다섯 번 더 윔블던 우승을 거둡니다.

1920년, 올림픽 참가를 위해 안트베르펜에 도착한 렝글렌은 이미 유력한 금메달 후보 중 한 명이었습니다.

결승

렝글렌은 안트베르펜 1920의 테니스 경기가 열린 베이르스홋 테니스 클럽에서 대회를 준비했습니다. 12살 때 처음 라켓을 잡은 소녀가 10년도 채 안되어 올림픽에 출전한 것입니다.

렝글렌은 첫 3라운드에서 한 게임도 놓치지 않는 완벽함을 보여주며 세 경기 모두 세트스코어 2-0 승리를 가져갔습니다. 시그리드 픽을 상대한 준결승에서 렝글렌은 대회에서 처음으로 상대에게 한 게임을 내 줬지만, 단 한 게임 허용에 그치며 6-0. 6-1 승리를 거뒀습니다.

결승에서 렝글렌은 영국의 도로시 홀맨을 6-3, 6-0으로 꺾으며 금메달을 차지했고, 상대를 완전히 압도하는 실력으로 ‘라 디빈’이란 별명으로 불리게 됩니다.

단식 금메달 하나로는 부족했던 렝글렌은 막스 드퀴지스와 함께 출전한 혼합복식에서 금메달을 추가했고, 엘리사베스 다옌과 함께 올림픽에서 처음 열린 여자 복식 종목에서 동메달도 따냈습니다.

하지만 이 올림픽 메달들은 렝글렌의 놀라운 커리어에서 극히 일부분에 불과했습니다.

파리 롤랑 가로스 스타디움에서 15,000명의 학생들에게 테니스의 규칙을 설명하고 있는 전 테니스 챔피언 수잔 렝글렌 (Photo by Hulton Archive/Getty Images)
파리 롤랑 가로스 스타디움에서 15,000명의 학생들에게 테니스의 규칙을 설명하고 있는 전 테니스 챔피언 수잔 렝글렌 (Photo by Hulton Archive/Getty Images)

렝글렌이 남긴 유산

렝글렌의 강세는 올림픽 이후에도 계속해서 이어졌고, ‘라 디빈’은 최초의 여자 프로 테니스 선수이자 테니스의 첫 여성 스타로 떠올랐습니다.

국제 테니스 명예의 전당에 따르면: “렝글렌은 250번의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단식 83회 (이 중 7회는 한 게임도 내 주지 않은 승리), 복식 74회, 그리고 혼합복식 93회. 렝글렌은 단식에서 8년동안 단 한 번 패했고, 1919년부터 1920년, 1922년부터 1926년의 기간 동안에는 무패를 기록했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1919년부터 1926년 사이에 단 한 경기만을 졌다는 이야기입니다.

렝글렌의 최다 연승 기록은 181경기며 커리어 기록은 341승 7패, 최종 승률 98%를 기록했습니다.

세 개의 올림픽 메달과 6번의 윔블던 단식 우승 이외에도 렝글렌은 프랑스 선수권 6회 우승을 거뒀습니다. 이 중 칸느에서 미국의 떠오르는 스타, 헬렌 윌스를 상대로 6-3, 8-6 승리를 거뒀던 경기는 특히 ‘세기의 경기’라 불리며 많은 관심을 받았고, ‘여신과 미국의 소녀: 수잔 렝글렌과 헬렌 윌스의 이야기’ 라는 책을 쓴 래리 엥겔만을 포함한 많은 작가들에게 영감을 주기도 했습니다.

렝글렌은 에른스트 헤밍웨이의 책,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에서도 등장했고, 헤밍웨이는 책 속의 인물인 로버트 콘을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아마도 렝글렌만큼 이기기를 좋아했을 것이다.’

윔블던에서의 수잔 렝글렌(1899-1938), 세 가지 우승을 모두 거둔 1920년 6월. (Photo by Topical Press Agency/Getty Images)
윔블던에서의 수잔 렝글렌(1899-1938), 세 가지 우승을 모두 거둔 1920년 6월. (Photo by Topical Press Agency/Getty Images)

렝글렌이 이처럼 두드러진 존재가 된 것은 테니스 실력뿐만 아니라 카리스마와 패션 센스로 테니스 자체의 인식을 바꿔 놓았기 때문입니다.

WTA는 렝글렌을 놀랍고도 독특하며 멋지다고 평했습니다. “렝글렌의 모습은 그녀의 경기와 마찬가지로 눈에 띕니다. 긴 모피 코트와 붉은 립스틱으로 악센트를 준 짙은 메이크업을 하고 경기장에 들어섰고, 어두운 색의 머리는 1920년대 신여성들에게 인기 있는 짧은 보브 컷이었습니다. 렝글렌은 패션 아이콘이었고 전 세계 여성들이 그녀의 스타일을 따라했습니다. 다이아몬드가 강조된 스카프를 머리에 쓰고 실크 스타킹과 그 당시에는 충격적이라 할 수 있는 복장, 팔과 종아리가 드러난 복장으로 경기를 치렀습니다."

렝글렌은 또한 양성 평등의 옹호자이기도 했고, 프로로 전향한 최초의 여자 선수가 되는 것으로 새로운 지평을 열기도 했습니다.

“저는 제 커리어에서 다른 직업을 가진 남녀 그 누구와 비교해도 떨어지지 않을 만큼 열심히 노력해왔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인생을 통틀어 5,000달러도 벌지 못했어요. 이 금액에서 제 전문, 제 인생의 노력인 테니스가 벌어다 준 액수는 한 푼도 없습니다.” 

“저는 27살이고 부자가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이 저를 천재라고 부르는 이 직업을 떠나 돈을 벌기 위해 다른 커리어를 찾아가야 하나요?”

“아니면 가난이 찾아올 것을 알면서도 웃으며 다른 누군가에게 엄청난 돈을 계속 벌어다 줘야 하나요?”

렝글렌은 1928년에 프로 선수 커리어를 마쳤지만 테니스는 결코 떠나지 않았고, 선수 생활을 마친 후에 스포츠 샵을 열고 테니스 캠프를 운영하며 테니스에 대해 글을 쓰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로부터 단 10년 후, ‘라 디빈’은 백혈병 판정을 받았고 39세의 나이로 1938년 7월 4일, 악성 빈혈에 의해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그녀가 스포츠계에 남긴 유산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1978년, 렝글렌은 국제 테니스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렸고, 1997년에는 롤랑가로스의 2번 코트와 여자 우승 트로피의 이름이 수잔 렝글렌 코트, 수잔 렝글렌 트로피로 명명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