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년이 지나도 여전히 행복한 두 사람: 도쿄 1964에서 결혼한 불가리아의 올림피언들

10월 23일, 도쿄 올림픽 기간 중에 결혼식을 올린 불가리아 선수들
10월 23일, 도쿄 올림픽 기간 중에 결혼식을 올린 불가리아 선수들

1964년 10월에 열렸던 도쿄에서의 첫 올림픽을 기념하기 위해 도쿄 2020은 56년 전 도쿄 올림픽에서 나왔던 역사적인 순간들을 되돌아보는 시리즈를 준비했습니다. 시리즈의 이번 시간에는 불가리아의 디아나 요르고바와 니콜라 프로다노프의 로맨틱한 올림픽 이야기를 알아봅니다.

배경

디아나 요르고바와 니콜라 프로다노프는 십대 시절 불가리아의 엘리트 체육계에서 서로를 만났습니다.

요르고바는 멀리뛰기 선수였고 프로다노프는 체조 선수로, 두 사람은 4년 이상을 친구로 지내다 로맨스가 싹트게 됩니다.

이제 78세가 된 요르고바는 1940년대와 50년대의 불가리에에서 자라난 소녀에게는 “올림픽이 전부”였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1964 년 10월 초, 도쿄로 향할 당시만 해도 이번 올림픽에서 스포츠 이상의 일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은 알지 못했습니다.

두 사람은 1964 올림픽을 마친 후에 결혼하기로 이미 약속된 상태였고, 날짜 역시 “5월 26일(1965년), 프로다노프의 생일”로 정해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일본 주재 불가리아 대사는 다른 생각을 합니다.

결혼을 앞둔 젊은 선수 커플이 선수단에 있다는 소문을 듣게 된 대사는 두 사람을 공관으로 초청했고, 요요기 올림픽 선수촌 국제 클럽에서 결혼할 마음이 있느냐는 질문을 던집니다.

그리고 두 사람의 답은 ‘예스’ 였습니다. 하지만 요르고바는 나중에 “정말 걱정되었습니다. 정말 가까운 사람들 – 부모님, 친척, 친구들 – 의 축복 속에서 결혼하는 날을 꿈꿨지만, 다들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흥분되었지만, 남몰래 슬펐습니다.” 라고 그때의 복잡한 감정을 밝혔습니다.

“부모님께 연락해서 이야기할 방법도 없었습니다. 따라서 부모님도 라디오, TV, 신문을 통해 그 소식을 듣고 놀랐습니다.”

그래도 요르고바는 부모님을 충분히 기쁘게 해 드릴 수 있었습니다. 대회 전만 해도 거의 알려지지 않은 선수였지만, 도쿄에서 6.24m를 뛰며 6위에 올랐고, 그 이후 1972 뮌헨 올림픽에서는 은메달을 차지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스타디움 전광판에 뜬 멀리뛰기 결선 진출자들의 이름에 섞여 있는 제 이름을 보고 소원이 이뤄졌다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정말 잊을 수 없는 순간이었습니다. 날아갈 듯 기뻤어요. 나 자신, 코치, 팀, 나라를 위해 할 일을 다하고, 약속을 지켰다는 만족감이 느껴졌습니다.

1960 로마 올림픽에도 출전했던 프로다노프는 체조 결선에 올라가는데는 실패합니다. 하지만, 자기 종목을 모두 마친 두 사람은 올림픽 기간 중에 결혼식을 올린다는 놀라움을 경험하기로 결정합니다.

불가리아 선수단의 니콜라 프로다노프와 디아나 요르고바. 1964 도쿄 올림픽 기간 중에 치러진 결혼식에서.
불가리아 선수단의 니콜라 프로다노프와 디아나 요르고바. 1964 도쿄 올림픽 기간 중에 치러진 결혼식에서.
Bulgarian Gymnastics Federation.

행복한 순간

두 사람이 각자의 경기를 마친 뒤, 모든 준비는 끝났습니다.

56년 전의 일이지만, 요르고바는 그 때의 일을 마치 56분 전에 일어났던 일처럼 생생하게 설명합니다.

“가장 아름다운 드레스를 입었고, 흰 장갑과 베일, 구두까지 눈처럼 흰색이었습니다. 니콜라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턱시도를 입었어요. 동화 속 왕자와 공주가 된 기분이 들었습니다.”

“홀은 사람들도 가득 차 있었습니다. 유명한 선수들, 코치들과 팀들, 기자들과 초대 손님들까지. 결혼식은 황실 대표로 온 교기씨의 주례로 진행되었고, 정말 큰 영광이었습니다. 그리고 식은 올림픽 깃발과 커다란 올림픽 성화 포스터 앞에서 축복의 노래인 신토 선율이 흐르는 가운데 치러졌습니다.

“사케를 한 모금 마시고, 결혼 서약을 한 후 반지를 교환했습니다. 놀라울 정도로 아름다운 케이크를 자르고, 맛봤어요. 인생 최고의 맛이었습니다. 5층으로 된 케이크에는 올림픽 오륜 옆에 우리 이름이 새겨져 있었어요. 이후 불가리아 전통의 커플 댄스인 라체니차와 하객들과 함께하는 포크 댄스가 진행된 뒤 우리는 오사카행 고속철도에 올라 교토로의 일일 신혼여행을 떠났습니다.”

하룻동안의 신혼여행을 마치고 두 사람은 도쿄로 돌아와 폐막식에 참석해야 했습니다. 대중들의 폭발적인 관심에도 이제 익숙해졌죠.

“니콜라와 저는 모두의 친절과 보살핌, 관심에 매료되었습니다. 다들 진심으로 기뻐해줬어요. 사진을 찍거나 서로에게 몇 마디 말을 건네거나, 사인이나 기념품을 교환하는 짧은 만남들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기차로 떠난 신혼여행과 오사카와 교토에서 보낸 시간 동안 모두가 우리를 알아보고, 어디서든 환영과 축복을 받았습니다. 이런 관심과 따뜻한 환대, 환호와 미소 띤 얼굴들에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에 저희는 정말 감동받았고, 기뻤으며 행복으로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그 이후

요르고바와 프로다노프는 도쿄 1964 이후 일본에 단 한 번 더 방문할 수 있었지만, 두 사람의 마음은 언제나 그곳, “두 번째 고향”을 생각한다고 합니다.

“도쿄, 오사카, 교토. 일본은 56년간 이어지고 있는 우리의 동화 같은 이야기에 정말 아름다운 출발점이 되어줬고, 영원이 우리 마음 속에 남아 있습니다.”

두 사람은 불가리아로 돌아간 뒤 소피아에서 한 번 더 결혼식을 올렸고, 지금까지 행복한 결혼 생활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결혼 후 두 사람 사이에는 두 명의 딸이 태어났고, 그 중 한 명은 엄마가 1972 올림픽에서 6.77m로 은메달을 차지하기 전에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네 명의 손자를 둔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되어 있습니다. 이런 오랜 행복의 원동력은 무엇일까요?

프로다노프: “비밀은 스포츠에 있습니다. 스포츠를 통해 엄격한 규율과 도덕성, 그리고 인간관계에서의 타협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두 사람은 당연히 도쿄 2020을 기대하고 있으며, 도쿄를 통해 더 많은 추억들을 떠올릴 것입니다.

프로다노프: “우리의 행복한 가족 이야기가 시작된 곳입니다. 56년간 이어져오고 있어요. 일본이 가진 역사와 윤리, 정신은 우리 가족들에게 언제나 따라야 할 모범이 되어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