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스넬, 역사적인 올림픽 중거리 2관왕

1964 도쿄 올림픽 육상 남자 1,500m에서 금메달을 따내는 뉴질랜드의 피터 스넬(466번). (Photo by Central Press/Getty Images)
1964 도쿄 올림픽 육상 남자 1,500m에서 금메달을 따내는 뉴질랜드의 피터 스넬(466번). (Photo by Central Press/Getty Images)

1964년 10월에 열렸던 도쿄에서의 첫 올림픽을 기념하기 위해 도쿄 2020은 56년 전 도쿄 올림픽에서 나왔던 역사적인 순간들을 되돌아보는 시리즈를 준비했습니다. 오늘은 육상 800m와 1500m에서 2관왕을 달성한 피터 스넬의 이야기입니다.

배경

세계적인 육상 선수로 국제 무대에서 활동한 시간은 상대적으로 짧지만(1960-1965) 피터 스넬은 그 짧은 기간 동안 정말 많은 것을 이뤄낸 인물로, 스넬이 세운 기록은 현재의 중거리 선수들과 비교해도 전혀 뒤쳐지지 않는 정도입니다.

뉴질랜드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스넬은 다재다능한 운동 선수로 테니스, 골프, 배드민턴, 크리켓, 럭비 유니언 등의 운동에 모두 재능을 보였습니다. 그래서 육상에 집중하겠다는 결정은 19살이 되어서야 내려지게 됩니다.

스넬의 코치가 될 아서 라이디아드는 당시 스넬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피터, 네 스피드에 지구력 훈련만 추가하면 최고의 중거리 선수 중 한 명이 될 수 있어.”

그렇게 육상에 집중하게 된 이후, 21살의 스넬은 1960 로마 올림픽에서 국제 무대에 처음 등장하게 됩니다. 그리고 뉴질랜드 밖에서는 한 번도 달려보지 않은 선수이자 국제 무대에서는 아무도 모르는 선수였던 스넬은 로마 올림픽 800m 준결선에서 세계기록 보유자 로저 모엔스보다 빨리 들어왔고, 결선에서는 올림픽 신기록으로 금메달을 차지해 버립니다.

1962년 초에는 일주일 간격으로 800미터와 1마일(1.61km) 세계 신기록을 세웁니다. 800m에서는 1:44.3을 기록하며 모엔스의 종전 세계 기록을 1.4초 앞당겼고, 이 기록은 46년 후인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 뛰었어도 금메달을 딸 정도의 빠른 기록이었습니다.

같은 해, 스넬은 1962 퍼스 영연방 경기대회에서 880야드(804.6m) 신기록과 함께 금메달을 땄고, 1마일 경주에서도 또다시 금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1960 로마 올림픽 800m 시상식에 선 금메달리스트, 뉴질랜드의 피터 스넬. 은메달은 벨기에의 로저 모엔스(왼쪽), 동메달은 영국령 서인도제도의 조지 커. (Photo by Keystone/Hulton Archive/Getty Images)
1960 로마 올림픽 800m 시상식에 선 금메달리스트, 뉴질랜드의 피터 스넬. 은메달은 벨기에의 로저 모엔스(왼쪽), 동메달은 영국령 서인도제도의 조지 커. (Photo by Keystone/Hulton Archive/Getty Images)
2007 Getty Images

역사를 이루다

1964 도쿄 올림픽 개막식에서 뉴질랜드의 기수로 입장한 스넬은 이번 올림픽에서 1920 안트워프의 알버트 힐 이후 최초로 올림픽 800m/1500m 더블을 달성할 선수라는 평가를 받고 있었습니다.

먼저 치러진 것은 800m였지만, 스넬은 1962년에 세계 신기록을 작성한 이후 800m에서 대회 출전이 거의 없는 상태였습니다.

1964년 10월 16일에 시작된 800m 결선. 400m 지점에서 케냐의 윌슨 키프루컷을 선두로 한 그룹 속에서 선수들에게 둘러쌓이게 된 스넬은 치고 나기기 위해 뭔가를 해야만 했고, 300m를 남겨둔 지점에서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인 ‘캐논볼 스프린트’를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결과, 스넬은 2위와 10m 이상의 차이를 내며 제일 먼저 결승선을 통과했습니다.

이어진 1,500m 경주. 1,500m 결선을 앞두고 스넬은 단 8일 동안 이미 다섯 번의 레이스를 진행한 상태였습니다. 800m의 조별 예선, 준결선, 결선. 그리고 1,500m의 조별 예선과 준결선.

1,500m 결선에서는 프랑스의 미셸 베르나르가 선두로 나섰지만, 400m 지점에서 뒤쳐졌고, 뉴질랜드의 존 데이비스가 선두, 스넬이 2위로 달리게 되었습니다. 이번에도 스넬은 또다시 선수들에게 둘러 쌓이게 되었지만, 영국의 존 웨튼이 옆으로 비켜주며 스넬이 지나갈 길을 터 줍니다.

그리고 마지막 직선 주로. 스넬은 속도를 올리며 승부를 걸었고 폴란드의 위톨드 바란을 따라잡은 뒤 선두로 달리던 존 데이비스까지 크게 앞지르며 결국 15m 차이로 승리를 차지했습니다.

이 승리로 스넬은 1920년 이후 처음으로 한 올림픽에서 800m와 1,500m를 모두 우승한 선수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스넬 이후 올림픽 800m/1,500m 더블을 달성한 선수는 아직까지 없습니다.

2011년, garycohenrunning.com 을 통해 스넬은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로마는 열광 그 자체였고, 도쿄는 엄청난 만족감과 확신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로는 뭔가 하고 싶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어요.”

“800m 올림픽 2연패가 더 어려웠습니다. 두 경주 다 승부를 예측할 수 없었으니까요. 하지만 도쿄에서의 1,500m는 제가 유리했습니다. 승리를 거두지 못했다면 그게 더 충격적이었을 정도로요.”

1964 도쿄 올림픽 남자 1,500m 결선에서, 뉴질랜드의 피터 스넬(466번). (Photo by Keystone/Getty Images)
1964 도쿄 올림픽 남자 1,500m 결선에서, 뉴질랜드의 피터 스넬(466번). (Photo by Keystone/Getty Images)

그 이후는?

스넬은 1964 도쿄 올림픽에서의 성공 이후 선수 생활을 1년 더 했고, 1965년에 26세의 나이로 은퇴했습니다.

1971년, 학업을 위해 미국으로 이주한 스넬은 캘리포니아, 데이비스 대학에서 휴먼 퍼포먼스 분야 이학사를 받았고, 워싱턴 주립 대학에서는 운동 생리학 박사 학위를 받게 됩니다. 이후 미국 스포츠 의학회의 회원이자 연구원으로 건강과 신체 단련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습니다.

2000년에는 뉴질랜드가 뽑은 세기의 선수로 선정되었고, 2009년에는 기사 작위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2012년에는 IAAF 명예의 전당에 처음으로 이름을 올린 24명의 선수 중 한 명이 되었습니다.

또한, 스넬의 800m 세계 기록은 지금까지도 뉴질랜드 최고 기록으로 남아 있으며 2018년, 호주의 조셉 덩이 깨뜨리기 전까지 56년간 오세아니아 대륙 최고 기록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슬프게도, 피터 스넬은 81번째 생일을 앞둔 작년 12월에 댈러스의 자택에서 세상을 떠났고, 역대 최고의 중거리 러너 중 한 명이자 올림픽 금메달 3관왕을 향해 모두가 애도를 표했습니다.

도쿄 1964: 피터 스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