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배드민턴의 전설 박주봉, 일본의 황금기를 열다

2012년 4월 17일, 배드민턴 아시아선수권에서. 경기중 슈 와다와 이야기를 나누는 박주봉 감독. (Photo by Hong Wu/Getty Images)
2012년 4월 17일, 배드민턴 아시아선수권에서. 경기중 슈 와다와 이야기를 나누는 박주봉 감독. (Photo by Hong Wu/Getty Images)

‘셔틀콕의 황제’ 박주봉은 한국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명성을 날린 전설적인 배드민턴 선수입니다. 현역 은퇴 후 지도자의 길을 걷고 있는 박주봉은 무려 15년 동안 일본 국가대표팀에 재직하며 감독으로서도 업적을 쌓고 있습니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침체기에 빠져 있던 일본 대표팀이지만 이제는 박주봉의 지휘 아래에서 황금기를 구가하고 있습니다.

박주봉을 빼고는 한국 배드민턴 역사를 논할 수 없습니다. 1983년 덴마크오픈을 통해 한국 남자 선수 중 처음으로 국제 무대에 데뷔한 박주봉은 바로 그 대회에서 이은구와 함께 남자복식 우승을 차지하며 화려하게 첫 등장을 알렸습니다.

그 후 박주봉은 1990년대 중반까지 선수 생활을 이어가며 그야말로 눈부신 커리어를 남겼습니다. 박주봉은 남자복식에서 영혼의 단짝과도 같은 김문수와 오랫동안 호흡을 맞춰 전세계를 제패했고, 혼합복식에서도 유상희, 정명희 등과 짝을 이뤄 수많은 금메달을 차지했습니다.

두 종목을 통틀어 세계선수권대회 우승 5회, 아시안게임 우승 3회, 월드컵 우승 4회, 전영오픈 우승 9회 등 승승장구하며 한국 배드민턴의 전설이 된 박주봉은 1996년 은퇴 이후 BWF(국제배드민턴연맹)에서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허버트 스칠 상을 받고 2001년에는 한국 선수 최초로 BWF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리는 등 세계적으로도 큰 발자취를 남겼습니다.

그러니 올림픽에서도 박주봉의 이름이 빛났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더욱이 시범 종목으로만 진행됐던 배드민턴이 바르셀로나 1992부터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면서 남자복식의 박주봉과 김문수에게 한층 큰 기대가 쏟아졌습니다. 당시 박주봉-김문수 조가 남자복식 세계 최강으로 군림했던 만큼 국내에서는 금메달을 당연시하는 분위기였지만, 두 선수 모두 올림픽을 앞두고 부상을 겪었던 만큼 부담이 클 수밖에 없었습니다. 박주봉-김문수 조는 1라운드를 부전승으로 통과한 뒤 첫 경기였던 16강전에서 중국의 첸홍용-첸강 조를 만나 쉽지 않은 경기를 치렀습니다. 중국이 1세트에서 승리한 뒤 2세트에서도 앞서가며 불리한 상황이 펼쳐졌지만, 박주봉-김문수 조는 끝내 점수 차이를 뒤집고 2세트를 따내고 이어진 3세트에서도 승리하면서 8강 진출에 성공했습니다.

힘겹게 중국을 꺾은 뒤로는 오히려 한결 수월했습니다. 8강에서는 인도네시아의 메이나키-수방자 조를 손쉽게 제압했고, 준결승에서는 말레이시아의 시덱 형제와 접전을 펼치기는 했지만 역시 두 세트를 연달아 따내고 결승에 올랐습니다. 박주봉-김문수 조와 최초의 올림픽 배드민턴 금메달을 두고 결전을 벌일 상대는 인도네시아의 하르토노-구나완 조였습니다. 하르토노-구나완 조는 16강전부터 준결승까지 상대에게 한 세트도 내주지 않고 승리하는 저력을 갖춘 팀이었지만 세계 최강 박주봉-김문수 조에게는 적수가 되지 못했습니다. 박주봉-김문수 조는 결승전에서 별다른 위기 없이 인도네시아를 2-0(15-11, 15-7)으로 꺾고 올림픽 배드민턴 남자복식 1호 챔피언에 등극했습니다.

박주봉은 바르셀로나 1992를 마지막으로 세계 최정상의 자리에서 현역 은퇴를 선언했지만, 애틀랜타 1996을 앞두고 한국 대표팀에 복귀하면서 두 번째 올림픽에 출전하게 되었습니다. 이미 한 차례 복귀했다가 다시 은퇴한 후였지만 박주봉이 다시 한 번 대표팀에 합류하기로 마음을 먹었던 이유는 분명했습니다.

4년 전과는 달리 애틀랜타 1996부터 혼합복식도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포함되면서, 현역 시절 혼합복식에서 각종 국제 대회를 제패하면서도 올림픽 메달만 없었던 박주봉에게도 아쉬움을 달랠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이었습니다. 결국 박주봉은 다시 대표팀에 복귀해 라경민과 짝을 이뤄 애틀랜타 1996 혼합복식에 출전했고, 준결승까지 승승장구하며 올림픽 금메달을 목에 거는 듯했습니다. 그러나 결승전에서 한국 대표팀 동료인 김동문-길영아 조를 만나 1-2(15-13, 4-15, 12-15)로 패배하면서 은메달에 만족해야 했습니다.

애틀랜타 1996 이후 박주봉은 다시 선수로 복귀하지 않고 본격적으로 지도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국내가 아닌 해외에서 지도자 커리어를 쌓기 시작한 박주봉이 영국, 말레이시아를 거쳐 일본으로 가게 된 것은 2004년의 일이었습니다. 침체기에 빠져 있던 일본 배드민턴 대표팀은 아테네 2004에서도 12명 중 11명이 1라운드조차 통과하지 못하는 처참한 성적을 냈고, 이에 박주봉을 감독으로 선임해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자 했습니다. 일본 대표팀의 지휘봉을 잡은 박주봉은 합숙 훈련을 통해 선수들의 의욕을 고취하고 전임 코치 제도를 도입함으로써 국가대표팀 위주의 체계가 자리잡을 수 있도록 했습니다. 또한 배드민턴 대표팀의 훈련 시설을 마련하는 데에도 주도적인 역할을 해 2008년에는 선수촌이 건립될 수 있었습니다.

박주봉의 노력이 실질적인 결과로 이어지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여자복식 4위(마에다 미유키-스에츠나 사토코) 등 베이징 2008부터 서서히 나아지는 모습을 보여준 일본 대표팀이 제대로 부활을 신고한 것은 리우 2016에서였습니다. 마쓰모토 미사키-다카하시 아야카가 여자복식 1위에 오르며 일본 배드민턴 사상 처음으로 올림픽 금메달의 주인공이 되었고, 박주봉이 발굴한 오쿠하라 노조미가 여자단식에서 동메달을 차지했던 것입니다. 리우 올림픽 이후 일본 대표팀은 2017년 세계선수권 여자단식 금메달(오쿠하라 노조미), 2018년 전영오픈 혼합복식 금메달(와타나베 유타-히가시노 아리사), 2018년 아시아선수권대회 남자단식(모모타 켄토), 여자복식(후쿠시마 유키-히로타 사야카) 금메달 등 각종 국제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내며 황금기를 구가하고 있습니다.

올해, 전세계가 COVID-19의 여파로 주춤한 가운데에서도 박주봉이 이끄는 일본 대표팀의 기세는 꺾일 줄 모르고 이어지는 중입니다. 지난 3월 전영오픈에서 남자복식(엔도 히로유키-와타나베 유타), 여자복식(후쿠시마 유키-히로타 사야카) 금메달을 차지한 일본 대표팀은 무려 7개월만에 다시 열린 국제 대회에서도 좋은 성과를 거두며 주목을 받았습니다. 덴마크오픈(10월 13일~18일) 여자단식에서는 오쿠하라 노조미가, 여자복식에서는 후쿠시마 유키-히로타 사야카 조가 우승한 데 더해 남자단식에서는 니시모토 켄타가 4강에 진출하는 저력을 보여준 것입니다. 심지어 여자복식 결승전에서는 일본 대표팀 동료끼리 맞대결을 펼침에 따라 2위 자리도 일본의 차지가 되었습니다(마츠모토 마유-나가하라 와카나).

결과적으로 좋은 성적을 거두기는 했지만, 이번 덴마크오픈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박주봉의 고민은 깊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일본에서 COVID-19의 기세가 쉽게 꺾이지 않으면서 전영오픈 이후 9월이 될 때까지 대표팀 훈련이 전혀 진행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6월부터 8월 사이에도 소집 훈련을 계획하기는 했지만 모두 취소되었고, 8월에는 박주봉을 비롯한 대표팀 코칭스태프가 각 소속 클럽에서 훈련 중이던 선수들을 직접 방문해 지도하는 시간을 짧게나마 갖기도 했습니다. 9월이 되어서야 대표팀 소집 훈련이 재개되었지만 박주봉의 고민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오랫동안 시합에 나서지 못했기 때문에 선수들의 실전 감각이 우려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박주봉은 덴마크오픈 이후 BWF와의 인터뷰를 통해 “대회 감각이나 실전 감각을 얼마나 유지하고 있는지 [걱정이었다]”고 털어놓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일본 대표팀이 이번 덴마크오픈에서 여전한 기량을 선보이면서 자국에서 개최될 도쿄 2020에서의 성과에도 관심이 모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BWF와의 인터뷰에서 박주봉은 다음 시즌에 대해 신중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올림픽은 물론 세계선수권, 토마스컵 등 중요한 국제 대회가 여럿 예정되어 있는 다음 시즌에 대해 “지금으로서는 많이 생각하고 있지 않다”면서도 앞으로 차근차근 준비를 갖춰 가겠다는 것입니다.

“이 대회[덴마크오픈]가 끝나면 준비하기 시작해야죠. 내년에는 까다로운 대회가 많기 때문에 저도 일정을 세우기 시작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