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일한 메달: 키프로스의 요트 영웅

2012 런던 올림픽 남자 레이저 세일링에서 은메달을 차지한 키프로스의 파블로스 콘타이즈. 이는 키프로스의 첫 번째 올림픽 메달이다. (Photo by Laurence Griffiths/Getty Images)
2012 런던 올림픽 남자 레이저 세일링에서 은메달을 차지한 키프로스의 파블로스 콘타이즈. 이는 키프로스의 첫 번째 올림픽 메달이다. (Photo by Laurence Griffiths/Getty Images)

올림픽 메달 획득은 수많은 선수들의 목표입니다. 하지만 자신이 나라에서 유일한 올림픽 메달 보유자라면? Tokyo2020.org는 단 한 명의 올림픽 메달리스트를 보유하고 있는 24개국을 차례로 살펴보는 시간을 통해 그 영광의 순간을 돌아보고, 그것이 선수 본인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알아볼 것입니다.

배경

요트 선수 파블로스 콘타이즈는 키프로스의 유일한 올림픽 메달을 획득한 영광의 주인공입니다. 콘타이즈는 2012 런던 올림픽 남자 레이저 클래스에서 은메달을 차지하며 처음이자 유일한 키프로스의 올림픽 메달리스트입니다. 이는 당시 위기를 겪고 있던 키프로스라는 작은 섬나라에 희망을 줄 수 있는 큰 의미를 가진 승리였습니다.

콘타이즈는 1990년 남부 해안가에 위치한 리마솔이라는 도시에서 태어났습니다. 9살 때부터 요트를 타기 시작한 콘타이즈는 14살이 되자 본격적인 훈련에 돌입했습니다. 요트라는 스포츠가 더 이상 취미가 아닌 삶의 방식이 된 것입니다.

콘타이즈의 첫 번째 코치인 리마솔 항해 클럽의 야니스 파파조글루와 로이터의 인터뷰 내용입니다. "당시 콘타이즈는 모든 것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단지 재능이 있는 정도가 아니라 진짜 원석이었죠. 군대식 규율에 익숙한 노력파인 동시에 굉장히 겸손한 성품을 갖고 있었습니다."

2007년부터 성공적인 선수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우선 2008 베이징 올림픽 출전권을 확보했고 ISAF 유스 세계 선수권에서 우승을 차지합니다. 다음 해 연달아 ISAF 유스 올림픽을 제패하며 유일한 레이저 클래스 2관왕으로 등극하는 역사적인 사건을 만들어 냅니다. 한 달 후 18살이 된 콘타이즈는 레이저 클래스 사상 최연소 선수로 올림픽에 출전하여 13위라는 성적을 거둡니다.

2009년에도 그의 기세는 계속 됩니다. 런던 올림픽 경기장에서 열린 월드컵 대회에서 두 개의 은메달을 비롯해, 유러피언 남자 선수권에서는 동메달을 수확합니다. 2010년 말에는 사우스햄턴 대학에서 선박공학 학사 학위를 취득하기 위해 잠시 휴지기를 가지며 그의 가장 큰 목표인 2012 런던 올림픽 준비에 만전을 기합니다.

2012 런던 올림픽 남자 요트 레이저 클래스에서 은메달을 차지한 키프로스의 파블로스 콘타이즈 (Photo by Clive Mason/Getty Images)
2012 런던 올림픽 남자 요트 레이저 클래스에서 은메달을 차지한 키프로스의 파블로스 콘타이즈 (Photo by Clive Mason/Getty Images)
2012 Getty Images

만들어지는 역사

올림픽에서 콘타이즈는 절정의 기량을 선보입니다 - 레이저 클래스에서 은메달을 차지한 것이죠. 콘타이즈는 오랫동안 올림픽 메달을 기다려 온 조국 키프로스에게 기쁨을 선사하며 자신의 이름을 역사에 남기게 됩니다.

당시 22세의 콘타이즈는 금메달도 노릴 수 있었지만, 세계 선수권 5관왕인 호주의 톰 슬링스비가 출발부터 골인 때까지 선두를 놓치지 않으며 올림픽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경기 후 컨타이즈는 다음과 같이 인터뷰 했습니다. "정말 굉장했습니다."

"저 개인과 키프로스 모두에게 역사적인 날입니다. 제가 키프로스 역사에 이름을 남길 것이라곤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아직은 실감이 나지 않는데, 귀국했을 때 저를 응원해주는 사람들을 보면 실감이 될 것 같습니다."

국가위기 키프로스에 올림픽 메달이 희망을 가져다 준 스토리
07:33

인생을 바꾼 메달

콘타이즈의 은메달은 국가의 자존심을 지켜주었고, 경제적인 위기를 겪고 잇던 키프로스 사람들에게 희망을 안겨주었습니다. 당시 키프로스는 몇 달 전 그리스발 금융 위기에 직격탄을 맞아 유럽 연합 회원국들에게 긴급 금융 구제 요청 여부를 검토하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사람들은 힘든 시기에 우러러 볼 수 있는 우상을 필요로 합니다. 우리는 파블로스에게 큰 빚을 졌습니다. 그는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었습니다." 리마솔 항해 클럽의 회원인 다프베 카라야니-디아만티와 로이터와의 인터뷰 내용입니다.

언론은 우울한 소식은 잠시 접어두고 은메달을 들고 있는 콘타이즈의 모습을 1면에 실었습니다.

한동안 콘타이즈는 키프로스라는 국가의 자긍심의 원천이었습니다. 콘타이즈는 2016 리우 올림픽에서는 7위를 기록했고 개막식 기수로도 활약했습니다.

하지만 콘타이즈의 올림픽 드림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일이 잘 풀린다면 내년 도쿄2020 대회에 참가할 수 있을 것입니다. 콘타이즈에게는 네 번째 올림픽 출전입니다. 지난해 에노시마 해안에서 열린 테스트 대회에서 금메달을 차지했기 때문에, 분위기가 좋게 흘러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선은 대회 출전권 확보가 급선무입니다.

콘타이즈는 조국에서 최정상의 운동 선수인 동시에 활발한 사회 활동가이기도 합니다. 요트 대회가 없거나 훈련을 하지 않을 때에는 어린 선수들을 가르치거나 초등학교에서 스포츠의 중요성에 대해 강의 하고 자선 대회에 참가하기도 합니다.

콘타이즈는 인터뷰에서 "제 꿈은 키프로스에서 요트의 저변을 확대하는 것입니다. 그리스에는 수 많은 요트 정박지가 있고 요트 문화도 확산되어 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콘타이즈는 도쿄 올림픽 이후에도 선수 생활을 접을 생각이 없습니다. 그는 아직도 승리에 목말라 있습니다.

"나이를 먹어가고 있지만 파리 올림픽에서도 활약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선은 도쿄 올림픽이 우선입니다."

키프로스의 요트 영웅에게 미래는 아직도 모함이 가득한 세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