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보다 좋은 곳은 없다: 환경에 적응하는 미국 대표팀 복서들

메이시스 백화점 내의 임시 훈련장에서 스파링중인 나오미 그래엄과 라시다 엘리스(적색 헤드기어) (Photo by Matthew Stockman)
메이시스 백화점 내의 임시 훈련장에서 스파링중인 나오미 그래엄과 라시다 엘리스(적색 헤드기어) (Photo by Matthew Stockman)

올림픽 무대를 목표로 하는 미국의 복서들이 호텔 연회장에 임시 훈련 시설을 마련했다가 버려진 쇼핑몰에서 장기간 지냈던, 작년에 겪은 어려움들에 대해 도쿄 2020과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복서는 어떤 상황이 닥쳐도 그에 적응해야만 합니다.

튼튼함과 기꺼이 고통을 감내하는 태도는 복서에게 최우선적으로 요구되는 덕목들 중에 속합니다. 그렇기에 작년에 코로나19가 전세계를 뒤흔들었을 때, 갈 곳을 잃었던 미국 국가대표 복서들은 어떻게든 해결책을 내놓아야만 했습니다.

유망한 밴텀급 복서인 브루스 캐링턴은 2020 도쿄 올림픽 측과의 인터뷰에서,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버려진 쇼핑몰을 팀의 임시 숙소로 썼던 것(이 숙소는 올여름 도쿄 대회 때까지 계속 이용될 예정입니다.)에 관한 질문을 받고는 웃음을 터뜨리며 다음과 같이 답했습니다. “미국 대표팀은 그 쇼핑몰을 최대한 활용했어요. 한 가족처럼 서로를 지탱해줬습니다. 우리에게는 적당한 장비와 열의을 가지고 들어올 약간의 공간만 있으면 됩니다. 쇼핑몰이든 호텔 연회장이든 제게는 똑같았어요!”

제프 메이스 코치와 브루스 캐링턴, 미국 복싱 대표팀의 메이시스 백화점 임시 훈련장에서 (Photo by Matthew Stockman)
제프 메이스 코치와 브루스 캐링턴, 미국 복싱 대표팀의 메이시스 백화점 임시 훈련장에서 (Photo by Matthew Stockman)
2021 Getty Images

미국 대표팀의 간판 선수들에게 펜데믹 시기에 걸맞은, 하지만 낯설었던 그 훈련 시설에 대한 첫인상에 대해 묻자 커다란 웃음이 터져나왔습니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이도 곳곳에 보였죠. 작년 3월부터 미국 복싱 대표팀의 훈련 시설에는 콜로라도 스프링스의 엘레간테 호텔 연회장이 들어가 있었고, 그 뒤에는 올림픽 공식 훈련 센터 근처에 위치한 시타델 몰 내 메이시 백화점에 자리잡았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아무도 웃을 수 없었다

그러나 아르헨티나에서 열리는 올림픽 미주 지역 예선을 열흘 앞두고 전세계적으로 이동제한조치가 확산되고 있다는 소식이 처음 들어왔을 때는 절대 웃을 일이 아니었습니다.

LA 동부 출신인 플라이급 복서 안토니 에레라는, 모든 것이 가능해진 동시에 모든 것이 복잡해져버린 그 때를 회상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훈련 시에] 우리 몸상태는 정점에 가까워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훈련 시설[콜로라도 스프링스 내 최첨단 설비를 갖춘 올림픽 공식 훈련장] 접근이 금지되기 시작했어요. 그곳에서 식사조차 할 수 없었고, 각자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모든 것들이 조금씩 문을 닫기 시작했습니다.”

몇몇 선수들은 거리도 먼 시골 지역으로, 다른 선수들은 인파로 붐비는 도심속에서, 어쨌든 그렇게 모두가 갈 곳을 찾아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이때 선수들의 좌우명은 ‘임기응변’이 됐습니다. 젊은 복서들은 거실에 체력단련실을 마련했고 다른 선수들도 복도에서 섀도 복싱을 멈추지 않았죠. 몇 마일에 이르는 로드워크 훈련도 각 선수가 빠짐없이, 꾸준히 진행했습니다.

2019년 열린 2020 미국 복싱 대표팀 선발전에서. 아브라함 페레즈와 안소니 에레라. ((Photo by Chris Graythen)
2019년 열린 2020 미국 복싱 대표팀 선발전에서. 아브라함 페레즈와 안소니 에레라. ((Photo by Chris Graythen)
2019 Getty Images

“그래도 혼자서는 한계가 있습니다.” 작년 봄 코로나19 초기 대유행 발생지인 뉴욕 브루클린에서 온 캐링턴이 덧붙였습니다. “어딘가에 주먹을 날리고 싶어져요. 그게 우리 복서들의 일이니까요.”

미국 복싱 대표팀에게도 결단의 순간은 다가왔습니다. 팀의 총책임자로서 복서들에게 “꿈을 실현할 기회”를 제공하는 것은 마이크 맥아티 이사의 직무였고, 부드러운 융단과 줄무늬 벽지, 샹들리에로 꾸며진 엘레간테 호텔의 연회장을 임시 훈련이 가능한 장소로 바꾸는 것이 바로 그 일이었습니다.

당연히 이상과는 거리가 먼 일이었습니다.

‘호텔 연회장’이라는 오판

코로나19 대유행 초반, 미국 전역의 체육관이 폐쇄됨에 따라 다른 동료들과 마찬가지로 집에서 훈련을 진행할 수밖에 없었던 에레라는 훈련 시설이 된 연회장을 “까다로웠습니다.”라고 묘사했습니다. “할 수 없는 것이 더 많았어요. 그렇지만 조금씩 새로운 훈련장에 익숙해졌습니다. 따라서 그냥 ‘달랐다’고만 해두겠습니다. 네, 그렇다고 할 수 있겠네요.”

'달랐다’

노스 캐롤라이나 페이엣빌 출신의 미들급 복서 이자 2019 여자 복싱 세계챔피언 나오미 그레이엄의 말도 똑같았습니다. “그러니까 그곳에서 우리는 최선을 다했어요. 우리는 그 연회장을 정상적인 훈련 시설로 만들기 위해 들일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들였습니다.”

하지만 호텔로는 충분치 않다는 것이 점차 분명해졌습니다. 코로나19 유행이 본격화된 이후 미국 복싱 대표팀은 2020년에만 임시 훈련 시설 네 곳을 운영했는데, 그 가운데 세 곳이 엘레간테 호텔 연회장에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맥아티 이사에 말에 따르면 장기적인 대안이 필수적인 상황이었습니다.

전염병의 기세는 누그러질 줄 몰랐고, 복서들에게는 집에서 하던 개인적인 훈련들을 한 팀으로서 다함께 할 수 있는 ‘기지’가 필요했습니다.

캔자스 주 로렌스의 은퇴한 형사이자, 복싱 - 특히, 아마추어 복싱 – 을 향한 열정을 뼛속 깊이 간직하고 있는 맥아티 이사는 다음과 같이 밝혔습니다. “외부의 조치를 기다릴 시간이 없었습니다. 우리는 가만히 앉아서 불평을 늘어놓을 수도 있었고 일어나 앞으로 나아갈 수도 있었어요. 복싱 선수들에게는 적응력과 전술적 유연성이 요구됩니다. 복싱계에는 나보다 빠르거나 강한 이가 언제나 있기 때문이죠. 그렇기에 우리는 전진하는 것을 택했고 그 결과가 바로 쇼핑몰이었습니다. 궁극적인 목표는 도쿄 대회이니, 완벽한 대안은 아닐지 몰라도 합리적인 대안인 것은 맞았습니다. 사실 ‘완벽’이란 불가능해요. ‘완벽’은 발전의 적과도 같습니다.”

오래된 쇼핑몰에 훈련장을 차리다

미국 복싱 대표팀 수석코치 빌리 월시는 사교성 넘치는 아일랜드인으로, 아마추어 복싱계에서는 명성이 높은 인물입니다. 선수 경기력 관리에 있어 탁월한 실력을 갖춘 맷 터너 이사와 함께 월시 코치는, 시타델 몰의 일부 구역을 훈련 시설로 조성하는 일을 도왔습니다. 모두가 앞장서 일을 처리했으며, 커뮤니케이션 이사마저 거리로 나가 복싱 포스터를 사올 정도였습니다.

네 개의 링을 비롯해 여러 개의 샌드백, 그리고 근력 및 체력 훈련 장비 전부가 들어섰습니다. 젊은 시절 골든 글러브를 놓고 경쟁을 벌이기도 했던 맥아티 이사는, 복싱을 향한 열의를 전화기 너머까지 내비치며 “그 공간이 최대한 진짜 복싱 체육관처럼 보이고 느껴지게 하려고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그 쇼핑몰 훈련장에 입성하던 날, 저는 대표팀이 해낸 일을 정말이지 믿을 수가 없었어요.”

맥아티 이사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습니다. 피팅룸을 가리키는 화살표나 복싱 글러브 정리대로 쓰이는 버려진 신발장 등을 무시하면, 실제로 쇼핑몰 훈련장과 올림픽 훈련 센터 간에는 거의 차이가 없었습니다. 쇼핑몰 훈련장은 긴박한 필요성과 나름의 독창성, 약간의 결단력에 기초해 즉흥적으로 구성된 것이었음에도 말입니다.

작년에는 훈련 중 많은 시간을 대형 해머로 바위를 깨고 거대한 트랙터 타이어를 뒤집는 데 쓴 캘리포니아 주 농업 지역 툴레어 출신의 슈퍼헤비급 복서 리차드 토레스 주니어는 웃으며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상품 전시장 한복판에 있는 링을 쇼핑몰 방문객들이 오가며 지켜보는 장면이 떠올라요. 처음 쇼핑몰 훈련장에 갔을 때는 남성 의류 매대 위치를 안내하는 표시 따위의 것들도 우리 눈에 들어왔습니다. 초반에는 저도 대체 어쩌다 우리가 매장 3번 통로에서 스파링 훈련을 하고 있는 것인지에 관해서 농담을 던졌습니다.”

그러나 낯선 장소에서의 훈련에 대한 망설임과 낄낄거리는 웃음소리는 이내 잦아들었습니다. 메이시 백화점은 오래된 공간이었지만 미국 복싱 대표팀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다했고,대표팀에게 그곳은 필요에 의해 탄생한, 결코 평범하지 않은 하나의 ‘집’이 됐습니다.

터너 이사는 “코로나19 사태가 발생했을 때 우리에게는 집이 없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쇼핑몰 훈련장이] 전형적인 복싱 체육관이 아님은 명백하나, [2020년 3월부터는] 사실 세상의 모든 것이 예전과는 크게 달라져버렸습니다. 그러니 계속 앞으로 나아가는 데 필요한 일들을 해야만 했습니다.”

그리 나쁘지 않았던 ‘쇼핑몰 훈련장’

터너 이사는 반쯤 버려진 쇼핑몰이 올림픽 대비 훈련에 쓰일 만한 장소로 바뀌는 과정 전반을 감독했습니다. 선수들이 가능한 가까이 붙어 맞대결을 펼쳐야 하는 복싱이라는 스포츠를 대상으로, 글로벌 팬데믹의 한가운데에서 그는 이 일을 해낸 것입니다.

아버지의 체육관에서 훈련 세션 중인 미국 복싱의 올림픽 기대주, 리차드 토레스 주니어. (Photo by Ezra Shaw)
아버지의 체육관에서 훈련 세션 중인 미국 복싱의 올림픽 기대주, 리차드 토레스 주니어. (Photo by Ezra Shaw)
2020 Getty Images

2012년, 인턴 직원으로 들어와 이제는 정상급 아마추어 복싱 선수들의 정밀하고 과학적인 훈련을 감독하는 위치까지 올라온 터너는 쇼핑몰 훈련장에 대해 몇 가지를 덧붙였습니다. “실제 쇼핑몰과는 차단되어 있었습니다. 따라서 윈도우 쇼핑을 즐기는 사람들은 한 명도 없었어요.”

LA 출신의 플라이급 복서, 에레라 역시 “쇼핑몰 훈련장은 꽤 괜찮았어요.”라고 밝혔습니다. “규격에 맞는 링이 [네 개] 있었고, 보통 훈련 시설보다 규모도 더 컸습니다.”

그 오래된 백화점을 개조한 훈련 시설은 남자와 여자 두 팀이 동시에 훈련을 진행할 수 있을 정도로 컸습니다. 평소였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죠. 한 가지 긍정적인 부분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경쟁력 있는 복서 대부분은 마음 속에 대단히 곤란한 환경에서도 최선을 다하려는 태도를 갖추고 있습니다.

최고 체급인 슈퍼헤비급에서는 작은 편이나, 매서운 펀치력과 세련된 발놀림으로 오로지 슈퍼헤비급의 거구 복서들을 쓰러뜨리는 일에만 관심을 보이는 토레스도 “그 체육관에 다같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서로를 지탱하고 자극할 수 있었습니다.”라고 전했습니다.

2019년 12월 15일, 2020 미국 올림픽 복싱 대표팀 선발전에서 모렐 맥케인을 꺾은 나오미 그래엄(Photo by Chris Graythen)
2019년 12월 15일, 2020 미국 올림픽 복싱 대표팀 선발전에서 모렐 맥케인을 꺾은 나오미 그래엄(Photo by Chris Graythen)
2019 Getty Images

이는 캐링턴도 언급했던 일종의 가족에 관한 설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공동체 의식은 전세계 곳곳의 복싱 체육관에서 발견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스포츠계에 40년을 바친 맥아티 이사는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복싱은 수많은 장벽을 무너뜨리는 스포츠입니다. 모두가 고통을 느끼고 붉은 피를 흘리죠.”

캘리포니아 훈련 캠프에서, 아르헨티나, 그리고 도쿄로

다사다난했던 한 해가 가고 주어진 조건 하에서 최선을 다한 미국 복싱 대표팀은, 3월 28일부터 5월 4일까지 캘리포니아 주 출라 비스타의 올림픽 공식 훈련 시설에 자리한 다국적 훈련 캠프에 합류할 예정입니다.

특별히 복싱 선수들을 위하여, 나아가 최고의 복서를 양성하기 위하여 조성된 이 시설은, 로키 산맥이 지평선에 보이는 쇼핑몰 훈련장과는 차원이 다른 시설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캘리포니아 방문에 이어 5월 10일부터 16일에는 아르헨티나에서 열리는 올림픽 지역 예선 일정이 잡혀있습니다. 선수들의 운명을 가르는 이 지역 예선 일정은 종래 계획보다 1년이나 늦게 치러지는 것입니다. 선수들은 과연 그 기다림의 시간 동안 조금 더 영리해졌을까요? 아니면 성공을 향한 갈증이 더 커졌을까요?

정답은 시간만이 알고 있습니다.

메이시스 백화점에 만들어진 임시 훈련장에서 장비 거치대로 활용되고 있는 진열대. (Photo by Matthew Stockman)
메이시스 백화점에 만들어진 임시 훈련장에서 장비 거치대로 활용되고 있는 진열대. (Photo by Matthew Stockman)
2021 Getty Images

캐링턴은 어깨를 으쓱하며 “살다 보면 많은 것들이 삶 안으로 내던져집니다. 그렇지만 그것들을 뚫고 올림픽 출전자가 되는 것이야말로 환상적인 일이에요.”라고 전했고, 표현은 더 직설적이었으나 그레이엄의 생각도 이와 마찬가지였습니다. “날짜만 다르고 목표는 1년 전과 같습니다. 시상대 정상에 오른 제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동기가 부여됩니다. 그게 계속 저를 추동해요.”

맥아티 이사의 말에 따르면 미국 복싱 대표팀은 지역 예선 일정을 마친 뒤 “쇼핑몰 훈련장으로 복귀”하게 됩니다. 올여름 세계 최고의 선수들을 꺾을 미국에서 가장 강인한 선수들이 도쿄행을 준비하기에는 쇼핑몰 훈련장만한 곳이 없죠.

선수들이 지금까지 해낸 것들, 현실과의 타협 과정에서 배운 것들에 관하여 대표팀에서 제일 덩치 큰 선수인 토레스가 정확하게 요점을 짚었습니다.

"복싱입니다. 적응하고 정복할 뿐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