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콜 프랭크, 80년간 이어진 온 가족의 기다림 끝낼 도쿄 2020 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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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젤리카 라드쉐는 1940년 올림픽 출전 자격을 얻었지만, 제2차 세계대전 발발로 인해 대회가 취소되면서 기회를 잃었습니다. 그로부터 80년이 흐른 지금, 라드쉐의 손녀 니콜 프랭크가 드디어 온 가족의 꿈을 이루고 도쿄 2020 본선 진출까지 다다를 기회를 잡았습니다.

안젤리카 라드쉐는 우루과이 출신으로 독일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수영 선수로서 독일 및 유럽 대회에서 타이틀을 보유하고 있던 라드쉐는 1940년 올림픽의 출전 자격도 손에 넣었습니다. 하지만 도쿄에서 헬싱키로 개최지까지 변경되었음에도 제2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인해 대회가 취소되고 말았습니다. 수영장에서 경기를 펼치는 대신, 라드쉐도 남편과 함께 전쟁으로 내던져졌습니다.

올림픽을 향한 라드쉐의 꿈은 끝났지만, 전쟁에서 살아남은 부부는 종전 후 우루과이로 돌아가 가족을 꾸렸습니다.

그리고 2003년, 라드쉐 부부의 손녀 니콜 프랭크가 태어났습니다.

이제 열여섯 살인 프랭크는 우루과이 최고의 수영 선수 가운데 한 명으로 꼽힙니다. 그런 만큼, 프랭크가 도쿄 2020 출전권을 따내고 온 가족의 꿈을 이루기 직전까지 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비록 할머니가 직접 볼 수는 없더라도, 프랭크는 올림픽 본선 출전으로 할머니께 최고의 헌사를 바치게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도쿄 2020>과의 인터뷰에서 프랭크는 “우리 가족은 어떤 종목이든지 모두들 운동을 했다”고 밝혔습니다. “대부분이 수영이었습니다. 할머니 두 분, 고모, 아버지, 어머니, 우리 남매 … 전부 수영에 도전했죠.”

“지금 제가 압박감에 시달리고 있다는 느낌은 받지 않지만, 할머니의 발자취를 이어간다는 데에서 의욕을 얻습니다. 할머니의 꿈과 제 꿈을 동시에 이룰 수 있으니까요. 우리 아버지, 그러니까 할머니의 아들과 제가 의견을 같이하고 있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어린 시절의 니콜 프랭크. 우측이 안젤리카 라드쉐.
어린 시절의 니콜 프랭크. 우측이 안젤리카 라드쉐.
Provided by Nicole Frank.

물의 최면술

프랭크가 처음으로 수영을 하게 된 것은 분명히 가족 덕분이었습니다. 기계체조와 수영을 함께 연습했던 때도 있었죠.

“어릴 때는 수영과 기계체조를 같이 했는데, 어느 시점에 두 종목을 동시에 할 수 없는 때가 왔습니다. 저는 이미 물과 사랑에 빠져 있었기 때문에 수영을 택했어요. 물 밖에 있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 결정에 대해 후회하지 않습니다. 예전에 체조할 때 했던 동작들을 이제는 할 수 없을 걸요!”

“어머니께서도 수준 높은 체조선수셨고, 지금은 체육 선생님이셔서 스포츠에 대해 아주 잘 이해하고 계십니다. 제가 더 나아질 수 있도록 많이 지도해 주세요. 우리 가족은 전반적으로 저를 많이 도와주면서도 제가 스스로 길을 찾아갈 수 있도록 해줍니다. 제가 수영을 즐기고 최선을 다하기를 바라면서 그 과정을 함께해주고 있습니다.”

프랭크를 어린 나이부터 최면에 빠지게 한 과정입니다.

프랭크는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다”며 솔직하게 털어놓았습니다. “물속에서는 그냥 마음이 편합니다. 물속이 곧 제 공간이라서 좋고요. 물속은 제가 감정을 터뜨리고, 즐기고, 배우고, 친구를 만들 수 있는 공간입니다 … 이제 다시 물을 느낄 수 있게 되어 정말 좋습니다.”

다시 물속에 있게 된 것만으로도 행복해졌습니다.

물을 다시 느낀다는 것이 중요했어요.

수영장 밖에서의 수개월

FINA의 승인 하에 프랭크는 2019년 12월부터 미국 애틀랜타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프랭크의 표현에 따르면 “도쿄에 갈 수 있도록” 훈련하기 위해 거주지를 옮긴 것입니다.

하지만 지난 3월 COVID-19로 인해 훈련장이 폐쇄되면서 프랭크의 준비 과정도 멈춰버리고 말았습니다.

“3월 11일 이후로 물에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4, 5개월 동안 수영을 하지 못하다가 3주 전에 수영장으로 돌아오게 됐습니다.”

“다시 수영을 하게 됐을 때 약간은 이상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마치 제가 수영을 할 줄 모르는 듯한 느낌이었어요. 스트로크도 끔찍했고, 발차기도 못하거나 심지어는 물에 뜨는 방법조차 모르는 것 같았습니다. 정말 끔찍했어요!”

“하지만 다시 물속에 있게 된 것만으로도 행복해졌습니다. 그런 느낌도 상관없었습니다. 물을 다시 느낀다는 것이 중요했어요.”

열다섯, 월드컵에서

이번 팬데믹으로 인해, 굉장히 좋은 폼을 이어오던 프랭크도 잠시 멈춰 설 수밖에 없었습니다.

2019년에 프랭크는 리마에서 펼쳐진 팬아메리칸게임에 출전했고, FINA 세계선수권에 참가하기 위해 한국까지 먼 길을 떠나기도 했습니다. 광주 세계선수권대회에서는 프랭크가 동경하는 스타 선수들도 모두 볼 수 있었습니다. 그때 프랭크는 겨우 열다섯 살이었습니다.

“아주 특별한 경험이었습니다. 다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어요. 앞으로도 절대 잊어버리지 않을, 제 인생에서 가장 대단한 경험 중 하나입니다. 처음에는 그 모든 선수들이 제 옆에 있는 모습을 보니 기분이 이상했습니다. 그 선수들이 승부를 겨루고, 연습하고, 기록을 깨는 광경을 본다는 것은 정말 엄청난 일이었습니다.”

올림픽은 다른 어떤 것과도 다릅니다. 그저 하나의 대회가 아니에요.

도쿄 2020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마음가짐을 달리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꿈을 이루기까지, 앞으로 한 번의 스트로크

여러 국제 대회에 참가하면서 프랭크는 우루과이에서 도쿄 2020 본선 진출을 바라볼 만한 가장 큰 희망 중 하나로 떠올랐습니다.

“그 덕분에 저도 의욕을 얻고, 그 동안의 노력에 대한 보상을 받았다는 것을 깨닫게 됐습니다. 도쿄에 갈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생각만 해도 자랑스럽습니다. 진짜 기회요. 단순한 꿈이 아니라요.”

프랭크는 200m 자유형 및 200m 개인혼영 종목에서 본선 진출을 노리고 있습니다. 올림픽을 단 1년 남겨둔 가운데 프랭크에게는 앞으로의 도전에 대비할 시간이 더 많아졌습니다.

“저는 가장 어린 만큼(프랭크는 내년에 열일곱 살이 됩니다) 경험이 부족합니다. 이제는 저 스스로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이 더 생겼습니다. 단지 체력적인 부분만이 아니라 정신적으로도요. 올림픽은 다른 어떤 것과도 다릅니다. 그저 하나의 대회가 아니에요. 도쿄 2020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마음가짐을 달리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일단 현재로서는 프랭크 가족에게 올림픽이 1940년 이래로 가장 가까이 다가와 있습니다.

“할머니께서 우리 남매에게 선수생활에 대해 많이 이야기하시지는 않았지만, 400m와 800m를 하셨다고 합니다. 늘 올림픽에 나가고 싶어하셨지만 전쟁 때문에 불가능했어요.”

“언제나 제게 수영을 즐겨야 한다고 말씀하셨어요. 만약 꿈이 있다면 필요한 만큼 많이 도전하라고, 항상 그만큼의 가치가 있을 것이라고도 이야기해 주셨죠.”

그리고 지금으로서는 분명 그만한 가치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