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야케 요시노부: 일본 최고의 역도 선수

1964 도쿄 올림픽 역도 페더급 시상식. 왼쪽부터 미국의 아이작 버거(은), 일본의 요시노부 미야케(금), 폴란드의 미예치슬라브 노웍(동). (Photo by Central Press/Hulton Archive/Getty Images)
1964 도쿄 올림픽 역도 페더급 시상식. 왼쪽부터 미국의 아이작 버거(은), 일본의 요시노부 미야케(금), 폴란드의 미예치슬라브 노웍(동). (Photo by Central Press/Hulton Archive/Getty Images)

올림픽 역사는 수많은 챔피언과 신기록, 그리고 멋진 이야기로 가득 차 있습니다. 하지만 기묘한 일이나 재미있는 일화, 감동적인 이야기와 슬픈 기억도 놀라울 정도로 많이 존재하지요. 저희는 매주 과거의 올림픽 이야기를 발굴해 내는 시간을 통해 여러분들에게 재미와 감동을 선사해 드리려 합니다. 이번 주의 주인공은: 1964 도쿄 올림픽에서 일본의 첫 금메달을 따낸 미야케 요시노부 입니다.

배경

미야케 요시노부는 올림픽을 빛냈던 최고의 역도 선수 중 한 명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1939년 11월 24일, 미야기현 무라타정에서 아홉 형제중 여섯째로 태어난 미야케는 역도 가문의 시초로 성장하게 됩니다.

중학교에 들어간 미야케는 유도에 관심이 생겼습니다. 신문 배달 일을 병행해야 했기에 정식으로 부 활동은 하지 못했던 미야케는 남는 시간을 활용해 유도를 해야 했지만 현 대회 참가까지 이뤄냅니다. 

하지만, 고등학교 2학년때 유도 연습 중 부상을 당하게 됩니다.

어떻게 하면 더 강해질 수 있을까를 생각하던 미야케는 친구 중 한 명에게 시바타 농림고등학교에 바벨이 있다는 말을 듣습니다. 이후 그 역도실에서 훈련을 하던 미야케는 후쿠시마 고등학교 학생인 후루아먀 유키오가 1956 멜버른 올림픽에서 8위를 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자신도 올림픽에 참가해 똑 같은 일을 해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 미야케는 역도를 계속하기로 마음먹습니다. 당초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취업을 할 생각이었던 미야케였지만, 역도를 지원하는 회사가 없다는 것을 알자 마음을 바꿔 역도 프로그램이 잘 되어 있는 대학을 찾게 됩니다. 호세이 대학에 합격한 미야케는 50,000엔의 입학금이 필요했고, 형이 절반을 대줬지만 나머지 금액을 위해 일을 해야만 했습니다.

하루에 이마가와야키 하나와 물 한 병만 마시고 하는 일은 쉽지 않았지만, 그 모든 어려움 속에서도 미야케는 자신의 목표를 달성했고, 로마 1960에 참가해 은메달을 따냈습니다.

그러나, 로마 올림픽은 미야케가 걸어간 올림픽 역도의 여정에서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그의 다음 목표는 도쿄 1964 대회에서의 금메달.

2012, 사사카와 스포츠재단과의 인터뷰에서 미야케는 그 당시를 이렇게 회상합니다: “1,460일동안 뭘 해야 하는가를 정했습니다.”

“어떤 공부/훈련을 해야 하는가, 정신적으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체중 조절이 필요했기에 영양학을 공부했고, 피로와 의학에 대한 지식도 쌓았으며 정신력 강화와 프로그램을 어떻게 짜는지, 그리고 경쟁자들에 대한 정보도 모았습니다.”

이 기간 동안 미야케는 1962년과 1963년 세계선수권 2연패를 달성했고, 대학도 졸업했습니다.

역도 기술을 보완하기 위해 미야케는 자신의 역도 동작을 찍고 싶어했고, 육상자위대에서 12,000엔(당시 USD 33)의 월급을 받았지만 카메라를 사기 위해 240달러를 빌리기까지 했습니다.

그 노력의 결과로 “포스버리 플롭”, “알리 셔플” 그리고 최근의 “바일스” 같은 유명한 기술들처럼 미야케도 자신만의 특별한 기술을 사용했습니다. 이 기술은 바 앞에서 양발 뒤꿈치를 가까이 대고 무릎을 벌리는 동시에 발가락이 바깥쪽을 향하도록 하는 자세로, 개구리가 앉은 모습과 비슷해서 “미야케 풀” 혹은 “개구리 스타일”이라 불립니다.

결전의 날

미야케가 참가하는 페더급(60kg) 역도 경기는 도쿄 1964 개막식 이틀 후, 시부야 공회당에서 열렸습니다.

하루 전날에는 역도의 이치노세키 시로가 밴텀급에서 동메달을 따며 일본의 이번 올림픽 첫 메달을 기록했습니다.

올림픽을 앞두고 며칠간 잠을 잘 자지 못했던 미야케는 경기 당일 아홉 시간의 숙면을 취할 수 있었고, 샤워 전에 1km를 달린 뒤 스트레칭을 하고, 침착한 모습으로 경기장에 도착했습니다.

미야케의 가장 큰 경쟁자는 미국의 아이작 버거. 로마 1960에서 페더급 은메달을 차지했던 선수였습니다.

그러나, 미야케는 2위 버거보다 15kg를 더 들며 397.5kg로 세계 신기록을 작성했고, 도쿄 1964의 개최국 첫 금메달을 만들어냈습니다.

또한, 동구권이 21개의 메달 중 15개를 가져간 도쿄 1964 역도에서 미야케는 비 동구권 선수로는 유일한 금메달리스트였습니다. 그리고 7개 체급의 금메달리스트 중에서도 유일하게 한 번도 실패 없이 경기를 마친 선수이기도 했습니다.

1964 도쿄 올림픽 역도 페더급에서 금메달을 확정한 요시노부 미야케. (Photo by Keystone/Getty Images)
1964 도쿄 올림픽 역도 페더급에서 금메달을 확정한 요시노부 미야케. (Photo by Keystone/Getty Images)

그 이후

4년 후 멕시코시티 1968에서 미야케는 올림픽 2연패를 달성했고, 동생인 요시유키도 같은 체급에서 동메달을 따냈습니다. 같은 올림픽의 같은 세부 종목에서 형제가 시상대에 동시에 선 것은 이 두 사람이 일본 최초이자 지금까지도 유일합니다.

그리고 뮌헨 1972. 미야케는 4연속 올림픽 참가를 이뤄냈고, 이번 대회에서는 4위에 올랐습니다.

미야케는 역도에서 25번의 세계 신기록 수립과 올림픽 금메달 두 개, 은메달 한 개. 그리고 세 번의 세계선수권 우승을 기록하고 은퇴했고, 스포츠 무대 밖에서는 1968년에 스포츠 공로상, 1997년에 퍼플 리본 메달, 2011년에 서보장을 받았습니다.

또한 1993년에는 역도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현재는 도쿄 국제대학에서 역도 감독을 맡고 있으며, 81세의 나이로 다음 세대의 역도 선수들, 도쿄 2020에 일본을 대표할 선수들을 길러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미야케 가족도 올림픽 역도 무대에 꾸준히 이름을 올려오고 있습니다. 특히 조카 미야케 히로미는 런던 2012 은메달리스트이자 리우 2016 동메달리스트이며, 도쿄 2020에서도 여자 48kg급에 다시 출전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