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루노 줄리, 모리셔스의 복싱 메달리스트

2008 베이징 올림픽 남자 밴텀급(54kg) 시상식. 동메달을 딴 몰도바의 베아체슬라브 고잔과 모리셔스의 브루노 줄리. (Photo by Al Bello/Getty Images)
2008 베이징 올림픽 남자 밴텀급(54kg) 시상식. 동메달을 딴 몰도바의 베아체슬라브 고잔과 모리셔스의 브루노 줄리. (Photo by Al Bello/Getty Images)

올림픽 메달은 수많은 선수들의 목표이자 꿈입니다. 하지만 그 꿈을 이뤄낸 선수가 나라 전체에 단 한 명 뿐이라면 어떨까요? Tokyo2020.org는 단 한 명의 올림픽 메달리스트를 보유하고 있는 24개국을 차례로 살펴보는 시간을 통해 유일한 메달리스트가 경험한 그 영광의 순간을 돌아보고, 그것이 선수 본인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알아봅니다.

배경

브루노 줄리의 별명은 ‘모리셔스의 마술사’ 입니다.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 마술처럼 모리셔스 최초의 올림픽 메달을 만들어낸 그에게 아주 어울리는 호칭이죠.

그러나, 이 성공은 그냥 나온 것이 아닙니다. 모리셔스가 올림픽 메달이 없었을 뿐, 복싱에서의 브루노 줄리는 결코 언더독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모리셔스의 첫 올림픽 참가는 1984 로스앤젤레스 대회였습니다. 국가 올림픽 위원회(NOC)가 생긴 이후 거의 10년이 지난 시점이었죠. 그리고 1984년부터 2008년까지 모리셔스는 매 올림픽마다 선수단을 파견했습니다. 참가에 의의를 두는 것보다는 올림픽 메달 획득이란 확실한 목표를 가지고요.

그리고 2008년, 드디어 마술 같은 순간이 찾아옵니다. 뭐, 모두가 예측 가능한 종류의 마술이긴 했지만 그래도 마술이었죠.

2008 베이징 올림픽을 앞두고 브루노 줄리는 2001년과 2003년에 대륙 선수권 은메달을 획득했고, 2006년에는 영연방 경기대회 은메달을 차지했습니다. 그리고 2008 베이징 올림픽 개최를 1년 앞둔 시점인 2007 올 아프리카 게임에서 동메달, 그리고 다시 같은 해에 아프리카 챔피언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베네수엘라의 엑토르 만자니야(홍코너)와 모리셔스의 브루노 줄리, 2008 베이징 올림픽 남자 밴텀급 8강전에서. (Photo by Al Bello/Getty Images)
베네수엘라의 엑토르 만자니야(홍코너)와 모리셔스의 브루노 줄리, 2008 베이징 올림픽 남자 밴텀급 8강전에서. (Photo by Al Bello/Getty Images)
2008 Getty Images

역사가 만들어지다

2008년 8월 18일, 브루노 줄리는 밴텀급 8강전에서 엑토르 만자니야를 상대합니다.

일반 팬들에게 이런 세세한 부분은 별로 중요하지 않겠지만, 모리셔스 사람들에게 이것은 잊을 수 없는 시합입니다. 그날, 모리셔스 전체는 역사가 만들어 질 것이라 자신했으니까요.

경기가 시작되고, 줄리는 두 번이나 역전한 끝에 포인트 13-9로 승리를 거두며 준결승 진출을 이뤄냅니다. 하지만 준결승 진출보다 더 중요하고 기쁜 소식은 8강전 승리로 동메달이 확보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준결승에서의 상대는 쿠바의 얀키엘 레온으로 결승 진출이 유력시되는 선수였습니다. 마술사는 레온과의 접전 끝에 7-5로 아쉽게 패했고, 결국 결승전에는 얀키엘 레온이 올라가게 됩니다.

준결승이 끝난 후 줄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 꿈은 항상 올림픽 금메달 획득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꿈은 계속됩니다.”

이 메달은 모리셔스의 모두를 위한 것입니다.

인생을 바꾼 경험

줄리는 올림픽 금메달의 꿈을 이뤄내지 못했습니다. 2012 런던 올림픽에서는 본선 진출에 실패했죠. 하지만 다른 모리셔스 선수들의 멘토 역할로 올림픽에 참가했습니다.

브루노 줄리의 커리어에서 마지막 정상권 등극은 런던 올림픽을 앞둔 2011년의 올 아프리카 게임 금메달과 그로부터 1년 전인 2010년에 따낸 영연방 경기대회 동메달이었습니다.

비록 올림픽 금메달 획득은 이뤄내지 못했지만, 그래도 브루노 줄리가 모리셔스 올림픽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브루노 줄리의 두 손이 모리셔스에게 최고의 선물을 안겨줬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