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인기 종목 경보에서 피어난 육상의 전설 김현섭

8년만에 2011 대구 세계육상선수권 20km 경보 동메달을 받은 김현섭 선수. 2019 도하 세계육상선수권에서. (Photo by Maja Hitij/Getty Images)
8년만에 2011 대구 세계육상선수권 20km 경보 동메달을 받은 김현섭 선수. 2019 도하 세계육상선수권에서. (Photo by Maja Hitij/Getty Images)

경보의 김현섭은 한국 최초의 세계육상선수권 메달리스트입니다. 비인기 종목 경보가 배출한 한국 육상의 전설이자 아시안게임에서 3연속 메달을 획득한 두 번째 육상선수이기도 한 그는 현재 고향 속초에서 자신의 마지막 메이저대회가 될지도 모르는 도쿄올림픽을 목표로 고된 훈련을 소화하고 있습니다. 

한국 최초의 세계육상선수권 메달리스트

2011년 대구세계육상선수권 대회에서 개최국 한국은 하나의 메달도 획득하지 못한 채 대회를 마무리했습니다. 한국 육상은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에서 메달을 획득한 적은 있지만, 세계선수권 대회 메달과는 거리가 있었습니다. 거의 유일한 메달리스트 후보였던 20km 경보의 김현섭은 위경련 등의 컨디션 난조 끝에 6위로 대회를 마무리했습니다. 자국에서 열리는 세계선수권의 최초이자 유일한 메달 기대주라는 부담감과 스트레스가 높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2019년 반전이 일어났습니다. 러시아 선수들의 약물 파동이 밝혀졌기 때문입니다. 김현섭보다 높은 순위를 기록했던 3명의 선수가 기록을 박탈당하면서 최종 3위가 되었습니다. 이로써 김현섭은 대한민국 최초의 세계육상선수권 메달리스트가 되었습니다. 도하 세계선수권에서 뒤늦게 동메달 수여식도 진행하였습니다. 

최초의 세계육상선수권 메달리스트가 된 김현섭은 메달을 받기 전 출전한 2013 모스크바와 2015 베이징에서도 나란히 10위를 기록하며 한국 육상선수 중 유일하게 3개 대회 연속 10권에 안착하는 성과를 냈습니다. 그는 아시안게임에서는 2006 도하 은메달, 2010 광저우와 2014 인천에서는 동메달을 목에 걸어 육상 선수 중 두 번째로 아시안게임에서 3연속 메달을 획득한 선수입니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 대회에서는 4연속 메달에 도전하였지만 아쉽게도 4위에 그치고 말았습니다.

한국 경보의 기둥으로

강원도 속초에서 태어난 김현섭은 시골에서 태어난 여느 아이들처럼 동네를 뛰어다니며 운동하기를 좋아했다고 합니다. 그는 운동부가 많았던 설악중학교에 입학하여 마른 체형 탓에 육상부로 스카우트되었습니다. 육상부에서 중거리 종목을 시작했으나 성적은 좋지 않았습니다. 결국 중학교 2학년 때 경보로 종목을 바꾸게 됩니다. 선수와 코치의 숫자가 적고 비인기 종목인 경보는 예나 지금이나 타종목에서 좋은 성적을 기록하지 못한 아이들이 전환하는 사례가 많습니다. 경보로 종목을 바꿨음에도 고1 때까지 김현섭은 평범했습니다.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동계 훈련에 임했고, 고등학교 2학년 첫 고교대회에서 부별 신기록을 세우면서 전설의 시작을 알렸습니다. 

고교 졸업 후 삼성전자에 입단한 김현섭은 달라진 환경 덕에 2004 아테네 올림픽 출전을 노렸습니다. 어렵게 선수 생활을 했던 고교 시절을 지나 실업팀에 입단하니 자신감이 붙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주니어의 10km와 성인의 20km는 단순히 거리만 두 배가 아니었습니다. 훈련도 몇 배로 힘들었고 회복하는 것도 어려움이 있었다고 합니다.

카타르, 도하 – 2006년 12월 7일: 2006 도하 아시안게임 남자 20km 경보 시상식. (왼쪽부터) 대한민국의 김현섭(은메달), 중국의 한유청(금메달), 일본의 고이치로 모리오카(동메달). (Photo by Christof Koepsel/Getty Images for DAGOC)
카타르, 도하 – 2006년 12월 7일: 2006 도하 아시안게임 남자 20km 경보 시상식. (왼쪽부터) 대한민국의 김현섭(은메달), 중국의 한유청(금메달), 일본의 고이치로 모리오카(동메달). (Photo by Christof Koepsel/Getty Images for DAGOC)
2006 DAGOC

사실상의 첫 메이저 대회 출전이었던 도하 아시안게임에서 김현섭은 은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목표로 했던 금메달 획득은 실패했지만, 첫 출전에서 좋은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금메달을 거둔 중국의 한유청이 시작부터 페이스를 끌어올리고 치고 나갔고, 그 뒤를 일본 선수들이 뒤따라가는 형태로 레이스가 진행되었습니다. 비바람이 부는 가운데 김현섭은 자신의 페이스를 유지하여 오버페이스를 했던 일본 선수들을 제치고 은메달을 획득했습니다.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는 개최국 중국 선수들이 1, 2위를 하고 김현섭은 뒤를 이어 3위를 기록했습니다. 중국 선수들은 당시 랭킹 3위 안의 선수들이면서 개최국의 이점을 앉고 좋은 성적을 거두었습니다. 

한국은 2011년 대구에서 처음으로 세계육상선수권을 개최하면서 10-10(10개의 종목에서 10위 내의 성적을 거둔다는 의미)을 목표로 내세웠습니다. 그러나 메달을 목표로 했던 선수는 경보의 김현섭이 유일했습니다. 결과는 안타깝게도 6위를 기록했지만, 도핑 파문으로 일부 선수들이 기록을 박탈당하면서 최종 동메달로 최초의 세계육상선수권 메달리스트가 되었습니다. 

언론과 세간의 관심 속에서 고된 훈련을 했던 김현섭은 경기를 앞두고 위경련이 왔었습니다. 경기를 하루 앞두고 응급실에서 링거를 맞아야 할 정도로 컨디션 유지가 힘들었지만 국민들의 관심과 응원 덕에 좋은 성적을 기록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김현섭도 주변의 관심과 협회, 소속팀의 지원에 힘입어 비인기 종목 경보에 전환점을 만들고 싶었다고 합니다.

이후 김현섭은 2013 모스크바와 2015 베이징 세계선수권에서도 10위를 기록하며 세계육상선수권에서 3연속으로 10위안에 안착한 최초의 한국 선수가 되었습니다. 그사이에 열린 2014년 인천 아시안 게임은 김현섭에게 아쉬움이 큰 대회입니다. 2011 대구 세계선수권에 이어 자국에서 열린 두 번째 메이저 대회였고, 당시 세계랭킹도 3위였던 만큼 금메달을 목표로 출전하였습니다. 하지만 중국의 왕첸, 일본의 스즈키 유스케에 이어 동메달에 머물렀습니다. 두 선수는 당시에도 세계 상위권 랭커였고, 특히 일본의 스즈키는 현재 20km와 50km에서 모두 세계신기록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김현섭의 경기 운영방식은 상위 그룹에서 이어 달리면서 선수의 페이스에 맞춰 레이스를 완주하는 스타일입니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중국과 일본의 선수들이 자신만의 페이스로 경기를 주도하는 데에 비하여 자신은 (상대에) 반응하는 레이스를 펼쳤다며, 자신이 주도하는 레이스를 했다면 경기가 달라지지 않았겠냐고 아쉬움을 드러내기도 하였습니다.

브라질, 리우 데 자네이루 – 8월 12일: 대한민국의 김현섭. 2016 리우 올림픽 남자 20km 경보에서(Photo by Ryan Pierse/Getty Images)
브라질, 리우 데 자네이루 – 8월 12일: 대한민국의 김현섭. 2016 리우 올림픽 남자 20km 경보에서(Photo by Ryan Pierse/Getty Images)
2016 Getty Images

마지막 올림픽을 향해

2016년 리우 올림픽을 앞두고 소속팀은 김현섭에게 20km와 50km 병행을 제안했습니다. 김현섭은 성인무대에서 20km에서만 뛰었지만, 소속팀은 50km에서 메달을 딸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고, 20km와 50km의 병행은 다른 세계적인 선수들도 하고 있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처음엔 50km의 훈련이 버겁고 두려워서 거절하려 했으나, 올림픽 메달의 꿈을 이루기 위해 50km를 병행하며 리우 올림픽을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처음 출전한 50km 경기에서 올림픽 출전 기준을 가볍게 통과하며 올림픽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막상 올림픽에서는 50km 경기 중 중도 기권하고 말았습니다. 20km 경기의 피로감이 5~6일 휴식일 동안 충분히 풀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결국 40km 지점을 넘어서 근육 경련이 일어났고 43km를 지나면서 기권하였고, 결과적으로 하나에 집중하였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진하게 남는 대회였습니다.

김현섭은 2020년 도쿄 올림픽을 앞두고 고향팀인 속초 시청으로 이적했습니다. 어느덧 노장이 된 전설은 리우 올림픽 이후 두 차례의 세계선수권에서 26위와 37위에 머물렀고 2018년 아시안게임에서도 4위에 머물며 아시안게임 4연속 메달 획득에 실패하며 이제 이제 은퇴 후 지도자 생활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도쿄 올림픽 출전권을 획득하지는 못했지만, 도쿄를 자신의 마지막 올림픽으로 삼고 싶다는 그는 현재 고향에서 고된 훈련을 소화하고 있습니다. 비인기 종목에서 육상의 전설을 쓴 김현섭은 한국 경보를 알리겠다는 신념으로 올해의 올림픽과 그 이후의 지도자 생활을 고대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