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민섭: 빌린 장대로 도쿄 올림픽 출전권을 따내다

도하, 카타르 – 9월 28일, 2019 IAAF 세계 육상 선수권 남자 장대높이뛰기에 출전한 대한민국의 진민섭.
도하, 카타르 – 9월 28일, 2019 IAAF 세계 육상 선수권 남자 장대높이뛰기에 출전한 대한민국의 진민섭.

대한민국의 장대높이뛰기 선수, 진민섭은 2019년 자신의 한국 신기록을 세 차례나 깨뜨렸습니다.

5.80m

2020년 3월 1일, 진민섭 선수는 호주 뉴사우스웨일즈의 크레스트 애슬레틱스 트랙의 주로에 서 있었습니다. 장대높이뛰기의 도쿄 2020 출전 기준 높이이자 지금까지 대한민국의 그 누구도 넘지 못했던 높이, 5m 80cm 도전의 마지막 3차 시기를 남겨두고 있었죠.

뱅크스타운 장대높이뛰기 대회는 진민섭 선수의 2020 시즌 첫 대회 출전이었습니다. 호주에서의 전지 훈련과 대회 참가는 3개월간 한국신기록을 세 번(5.71m, 5.72m, 5.75m) 작성했던 2019 시즌의 상승세를 이어가기 위한 출발점이 될 무대이자 2020 도쿄 올림픽을 단 몇 개월 남긴 상황에서 출전권 확보와 함께 대회를 앞두고 자신감을 키워나간다는 의미에서도 중요했습니다.

5.40m와 5.60m를 모두 첫 번째 시도에서 넘어서며 진민섭은 2019년의 상승세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줬습니다. 하지만 아직 넘어본 적이 없는 5.80m 도전에서는 두 번의 시도를 연달아 실패했고, 3차 시기이자 마지막 기회만을 남겨놓게 되었습니다.

단 한 번의 기회가 남은 상황에서 긴장감과 부담감은 늘어나 있었지만, 진민섭 선수와 코칭스태프들은 역사는 이루어질 수 밖에 없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자기 장대도 아닌, 호주에 와서 겨우 빌린 오래된 장대로 뛰어야 하는 상황에서도요.

DOHA, QATAR - SEPTEMBER 28: Jin Minsub of Korea competes in the Men's Pole Vault qualification during day two of 17th IAAF World Athletics Championships Doha 2019 at Khalifa International Stadium on September 28, 2019 in Doha, Qatar.
DOHA, QATAR - SEPTEMBER 28: Jin Minsub of Korea competes in the Men's Pole Vault qualification during day two of 17th IAAF World Athletics Championships Doha 2019 at Khalifa International Stadium on September 28, 2019 in Doha, Qatar.
Richard Heathcote/Getty Images

22년 묵은 장대

호주 전지 훈련은 출발부터 흔들렸습니다. 호주에 도착하자 마자 팀의 최우선 과제는 출전을 위한 장대를 찾는 일이었으니까요.

시드니 공항은 수하물 처리 규정상의 이유로 5m 20cm짜리 장대의 반입을 불허했고, 진민섭 선수는 결국 장대도 없이 빈손으로 호주에 도착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다행히 김도균 코치가 수소문 끝에 전 올림픽 장대높이뛰기 선수이자 2008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스티브 후커에게 비슷한 장대가 있다는 것을 알게되었지만, 그 장대는 1998년에 만들어진 것이었고 게다가 스티브 후커는 시드니에서 1,500km 떨어져있는 노스 애들래이드에 있었습니다.

결국 김도균 코치는 장대를 가지러 왕복 48시간을 운전해야만 했죠.

새로운 한국 신기록

22년된 장대는 언제든 부러질 수 있고, 부상으로 이어질 위험까지 있었지만 진민섭 선수는 빌린 장대로 새로운 기록인 5.80m에 도전합니다.

그리고 첫 두 번의 시도가 실패로 돌아가며 기록 도전은 아쉽게 막을 내리는 것처럼 보였죠.

하지만 마지막 3차 시기에서 결국 바를 넘었습니다.

트랙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김도균 코치는 경기장 안으로 달려들어갈 정도로 기뻐했습니다. 5.80m를 넘는 것으로 진민섭 선수는 2020 도쿄 올림픽 출전권을 확보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8번째 한국 신기록 수립까지 함께 달성할 수 있었습니다.

한국 장대높이뛰기의 간판

대한민국은 올림픽 장대높이뛰기에서 눈에 띄는 성과를 내오지 못해왔습니다. 하지만 진민섭 선수는 한 걸음씩 새로운 길을 개척해 나가고 있죠. 초등학교때 멀리뛰기 선수로 육상을 시작했던 진민섭 선수는 중학교로 진학할 때 장대높이뛰기로 종목을 바꿨습니다.

그리고 성장과 함께 한국 장대높이뛰기에서 따라올 수 없는 기록들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2007년에는 전국 소년체전에서 4.40m를 넘으며 은메달을 따냈습니다. 고등학교에 올라가서는 1학년 최초로 5m를 넘었고, 2009년 IAAF 세계 청소년 육상 경기대회에서 5.15m의 기록으로 금메달을 차지합니다.

신기록 작성은 성인 레벨에 올라와서도 계속됩니다. 2013년에 5.64m를 뛰며 처음으로 한국 신기록을 작성했고, 2014년에는 5.65m, 2018년에는 5.66m와 5. 67m를 기록합니다.

2019년 5월 3일에는 5.71m를 넘으며 다시 한 번 한국 신기록을 작성했고, 기준 기록 통과로 2019 도하 세계 육상선수권 참가 자격까지 획득합니다. 그리고 6월 25일에는 5.72m, 8월 6일에는 5.75m의 기록을 작성하죠.

최근의 이런 기록 향상에 대해 진민섭 선수는 장대의 교체가 도움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라디오 A's와의 인터뷰에서 진민섭 선수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정체기를 넘어서기 위해 5m 10cm 장대를 5m 20cm짜리로 바꿨습니다. 10cm 길면 기록도 10cm 좋아지겠지 하는 생각으로요."

"장대에 대한 데이터가 많지 않기 때문에, 모험을 한 번 해봤고, 다행히도 저한테 잘 맞아줬습니다."

INCHEON, SOUTH KOREA - SEPTEMBER 28: Jin Minsub of South Korea competes during the Men's Pole Vault final during day nine of the 2014 Asian Games at Incheon Asiad Main Stadium on September 28, 2014 in Incheon, South Korea.
INCHEON, SOUTH KOREA - SEPTEMBER 28: Jin Minsub of South Korea competes during the Men's Pole Vault final during day nine of the 2014 Asian Games at Incheon Asiad Main Stadium on September 28, 2014 in Incheon, South Korea.
Lintao Zhang/Getty Images

2020 도쿄 올림픽을 목표로

올림픽 진출을 확정한 진민섭 선수는 도쿄 2020에 대한 확실한 목표를 세우고 있습니다.

올림픽 진출을 이뤄낸 직후 SBS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죠: "목표는 5.90m 입니다. 무조건 넘을 것입니다. 만약 5m 80cm를 목표로 했다면 장대를 5m 20cm짜리로 바꾸지도 않았을 겁니다. 지금은 더 탄성이 강한 장대로 바꿔보려고 합니다. 강한 근력이 필요하겠죠."

빌린 장대의 일화는 이처럼 좋은 결과로 막을 내렸습니다. 하지만 장대에 관해 도쿄 올림픽에서 대비해야 할 문제가 한 가지 더있죠. 바로 도쿄의 여름 더위입니다.

"2019 도하에서는 더위 때문에 장대의 탄성이 줄어들 정도였습니다."

"아시아 선수권때 경험했기 때문에 좀 더 강한 장대를 가져갔지만 그래도 약해졌어요. 시합때는 조금 당황했습니다."

"하지만 다른 선수들은 다 잘했습니다. 따라서 책임은 저한테 있다고 생각해요. 도쿄 올림픽에서는 이런 문제들을 극복할 수 있도록 기본 훈련과 기계 체조 훈련들을 통해 더 나아지도록 하겠습니다."

"도쿄에서는 비가 오든 태풍이 불든 다 뚫을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5.90m와 결선 진출이 목표입니다."

"2020년에 첫 출전한 대회에서 5m 80cm를 넘었고, 이것은 10개월간 10cm 높아진 기록입니다. 자신 있습니다."

하지만 SBS와의 이 인터뷰는 도쿄 올림픽 연기가 발표되기 전에 진행되었습니다. 경쟁자들에게는 불안하게도, 이제 진민섭 선수에게는 준비할 시간이 더욱 늘어나 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