린 데이비스, 멀리뛰기 금메달을 차지하다

1964 도쿄 올림픽 멀리뛰기에서 8.07m를 뛴 영국의 린 데이비스. Allsport Hulton/Archive
1964 도쿄 올림픽 멀리뛰기에서 8.07m를 뛴 영국의 린 데이비스. Allsport Hulton/Archive

1964년 10월에 열렸던 도쿄에서의 첫 올림픽을 기념하기 위해 도쿄 2020은 56년 전 도쿄 올림픽에서 나왔던 역사적인 순간들을 되돌아보는 시리즈를 준비했습니다. 오늘은: 린 데이비스의 멀리뛰기 금메달에 얽힌 이야기를 알아봅시다.

배경

석탄 광부의 아들, 린 데이비스는 웨일스 브리젠드 근처의 난티모엘에서 1942년 5월 20일에 태어났습니다.

1964 도쿄 올림픽에서 글로벌 스타로 떠오르게 되는 데이비스는 학창 시절부터 육상 대회 출전을 시작했고, 18살 때는 멀리뛰기 선수로 큰 성장을 이뤘습니다.

하지만 그 당시만 해도 4년 후에 열릴 올림픽에서 뛴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1962 퍼스 영연방경기대회 웨일스 대표팀으로 선발된 데이비스는 7.72m를 뛰며 영국 신기록을 작성했지만, 0.01m 차이로 시상대에는 서지 못했습니다.

이후 데이비스는 기록을 더 향상시키기 위해 노력했고, 1962 유럽 선수권 금메달리스트인 소련의 이고르 테르 오바네스얀의 기술에서 영감을 얻게 됩니다. ‘히치 킥’으로 불리는 이 기술은 도약한 후에도 팔과 다리를 계속 움직이는 기술이었습니다.

영광의 순간

데이비스는 빠르게 발전했지만, 1964 도쿄 올림픽 금메달 후보로 꼽히는 선수까지는 아니었습니다.

예선에서 두 번째로 좋은 기록을 내며 결선에 올라갔지만, 데이비스가 디펜딩 챔피언 랄프 보스턴(미국)이나 테르 오바네스얀을 넘을 것이라고 예상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을 정도였으니까요.

그러나, 모든 것이 걸린 결선의 날에 데이비스는 홀로 8.07m를 뛰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고, 올림픽 멀리뛰기 8연패를 달성해온 미국 대표팀의 연승 행진을 끝냈습니다.

도대체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2014년, 랄프 보스턴과 함께 도쿄 올림픽 50주년 기념 인터뷰를 가졌던 데이비스는 BBC 라디오 웨일스 스포츠를 통해 이런 말을 했습니다.

“랄프가 ‘오늘 8m 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 같아.’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데이비스는 그날 자신이 금메달을 따내고, 린 ‘더 리프’ 데이비스란 별명을 얻게 된 것은 날씨 때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비가 오고 추웠던 그날은 일본보다는 웨일스의 가을과 비슷한 날씨였고, 그 환경이 자신에게 유리하게 작용했다는 것입니다.

“날씨가 이렇지 않고 따뜻했다면 당연히 이길 수 없었을 것입니다.”

날씨의 도움을 받았다고는 하지만, 그 자리까지 오르기 위해 데이비스가 한 노력과 의지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결과였습니다. 데이비스는 당당하게 금메달을 따냈고, 역사를 만들었으며 그 과정에서 보스턴(8.03m)과 테르 오바네스얀(7.99)을 넘어섰습니다.

웨일스 최초로 올림픽 개인 종목 메달을 따낸 선수가 된 데이비스는 2012 런던 올림픽에서 그렉 러더포드가 금메달을 딸 때까지 영국의 유일한 멀리뛰기 금메달리스트로 남아 있었습니다.

1964 도쿄 올림픽에서 8.07m를 뛰며 금메달을 확정하는 영국의 린 데이비스. (Photo by Express Newspapers/Getty Images)
1964 도쿄 올림픽에서 8.07m를 뛰며 금메달을 확정하는 영국의 린 데이비스. (Photo by Express Newspapers/Getty Images)

그 이후

1964 도쿄 올림픽에서 영웅적인 활약을 펼친 데이비스는 계속해서 성공을 이어갔고, 1966 부다페스트 유럽선수권에서 금메달, 3년 후에는 은메달을 차지합니다.

또한 1966 영연방경기대회에서도 금메달을 따냈고, 1970 영연방경기대회에서는 타이틀 방어에도 성공하며 최초로 멀리뛰기 2연패를 달성합니다.

영연방경기대회, 유럽선수권, 그리고 올림픽에서의 활약으로 데이비스는 1964년과 1966년에 BBC 웨일스 스포츠 올해의 인물로 두 번 선정됩니다.

그러나, 1968 멕시코시티 올림픽에서 데이비스는 9위를 기록하며 올림픽 타이틀을 지켜내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1972 뮌헨 올림픽에서는 18위에 머물렀죠.

1973년에 은퇴를 발표한 데이비스는 1976년까지 캐나다 육상 협회의 기술 이사로 활동했고, 이후에는 영국 대표팀에서 1980 모스크바, 1984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준비를 도왔습니다.

이후 BBC 웨일스를 통해 방송계에서도 활동했고, 카디프에 있는 웨일스 대학에서 체육학 조교수로 일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2003년부터 2011년까지는 영국 육상협회 선수 위원회 회장을 맡았습니다.

이제 78세가 된 데이비스는 여전히 영국 스포츠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인물 중 한 명으로 남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