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올림픽 수영을 어떻게 변화시켰나

기타지마 고스케 2004 아테네 올림픽 수영 남자 100m 평영 결승전에서. (Photo by Stuart Hannagan/Getty Images)
기타지마 고스케 2004 아테네 올림픽 수영 남자 100m 평영 결승전에서. (Photo by Stuart Hannagan/Getty Images)

1928년 여름, 암스테르담에서 열린 제 9회 올림픽에서 일본 수영의 새로운 역사가 써졌습니다.

전직 철도성 직원, 츠루타 요시유키가 200m 평영에서 금메달을 차지한 것이죠. 이것은 일본이 수영 종목에서 딴 첫 번째 메달인 동시에 독일의 에리히 라데마허가 보유했던 세계 기록을 거의 2초나 앞당긴 세계 신기록이기도 했습니다.

규슈의 해안 도시, 가고시마 출신인 츠루타는 일본 제국 해군에서 수영 실력을 성장시킬 기회를 얻었고, 1928년 암스테르담 올림픽을 앞두고 일본 최고의 실력자 중 한 명으로 떠오를 수 있었습니다.

미국의 조니 와이즈뮬러. 와이즈뮬러는 1924 파리 올림픽 수영에서 금메달 3개, 수구에서 동메달 1개를 획득했고 1928 암스테르담 올림픽 수영에서 두 개의 금메달을 추가했다.
미국의 조니 와이즈뮬러. 와이즈뮬러는 1924 파리 올림픽 수영에서 금메달 3개, 수구에서 동메달 1개를 획득했고 1928 암스테르담 올림픽 수영에서 두 개의 금메달을 추가했다.
1924 Getty Images

그러나, 일본은 1928년 전까지 올림픽 수영에서 아무런 성과도 내지 못하던 나라였습니다. 당시 수영 종목은 미국이 지배해왔고, 1900년부터 1928년까지 전체 금메달의 절반인 29개의 금메달을 독식하고 있었으니까요.

1912 스톡홀름 올림픽부터 올림픽 무대에 이름을 올렸던 일본은 암스테르담 이전에도 수영 선수들을 출전시켰습니다.

하지만 1920 안트베르펜 올림픽에 참가했던 두 명은 둘 다 조별 예선에서 탈락했고, 1924년에 참가한 6명 역시 아무런 성적도 내지 못했습니다.

그 당시 일본에는 수영장이 전국에 단 두 곳 뿐이었죠. 그러나, 모든 것은 츠루타의 금메달 이후로 변하게 됩니다.

일본은 미국의 수영 스타일을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100m 자유형의 조니 와이즈뮬러가 사용하는 영법을 분석해 기술을 향상시키려 했고, 이것은 스트로크 메카닉 연구의 출발점이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수영할 때 몸의 회전을 최소화해야 더 빨리 갈 수 있다는 것이 상식처럼 알려져 있었지만, 일본은 연구를 통해 어깨를 살짝 회전시키는 것이 스트로크의 길이를 늘려준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지금은 이것이 “스트로크당 거리(DPS)”라 불리며 수영의 효율성을 나타내는 중요한 지표로 여겨지고 있지만, 몸을 회전시키는 것이 수영에 도움이 된다는 개념은1956년 호주가 멜버른 올림픽 수영 종목을 석권하고 나서야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또한 일본 대표팀은 킥 스타일에도 중점을 뒀습니다. 그리고 꾸준한 리뷰와 시험, 보정과 개선을 통해 새로운 영법을 보여 줄 준비를 마쳤죠.

미야자키 야스지, 1932 로스엔젤레스 올림픽 100m 자유형에서. 당시 15세였던 야스지는 준결승에서 58초 0의 올림픽 신기록을 세웠다.
미야자키 야스지, 1932 로스엔젤레스 올림픽 100m 자유형에서. 당시 15세였던 야스지는 준결승에서 58초 0의 올림픽 신기록을 세웠다.
Keystone/Getty Images

4년 후, 새로운 지식과 함께 올림픽으로 돌아온 일본은 1932 로스엔젤레스 올림픽의 수영 종목을 지배했습니다. 금메달 5개를 포함한 12개의 메달을 따냈죠. 그리고 츠루타도 돌아와 200m 평영에서 일본 올림피언 최초의 올림픽 2연패를 달성했고, 은메달 역시 일본의 고이케 렌조가 가져갔습니다.

일본 대표팀의 원투 피니시는 200m 평영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미야자키 야스지와 가와이시 타츠고는 100m 자유형에서 금메달과 은메달을, 150m 자유형에서는 기타무라 쿠소와 마키노 쇼조가 1, 2위를 기록했습니다. 더하여 일본은 4x200m 계영에서도 금메달, 그리고 남자 100m 배영에서는 1,2,3위를 모두 차지했습니다.

일본이 4년만에 대단한 결과를 만들어내며 올림픽 수영을 완전히 변화시킨 것입니다.

그 노력을 인정받은 츠루타는 이후 일본 수영 연맹 이사와 에히메 수영 학교 교장을 역임했고, 1968년에는 국제 수영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습니다.

츠루타 요시유키, ISHF와의 인터뷰에서: “어렸을 때부터 수영을 배웠습니다. 물고기를 쫓아다니고 집 앞에 흐르던 개울에서 뛰어놀면서요.”

“24살이 되던 해의 여름에 제 9회 암스테르담 올림픽 200m 평영에서 일본 최초의 금메달을 따냈습니다. 네덜란드 여왕에게서 메달을 받았을 때는 정말 엄청난 영광이었어요.”

92년 전 츠루타가 암스테르담에서 거둔 승리는 일본 수영에 엄청난 영향을 줬습니다. 얼마나 큰 영향이냐면...하계 올림픽에서 일본이 유도, 레슬링, 체조 다음으로 많은 메달을 따낸 종목이 수영이 될 정도의 영향이었습니다.

2016 리우 올림픽 남자 200m 개인혼영 시상식. 은메달을 딴 일본의 하기노 고스케가 마이클 펠프스, 왕 슌과 포즈를 취하고 있다. (Photo by Adam Pretty/Getty Images)
2016 리우 올림픽 남자 200m 개인혼영 시상식. 은메달을 딴 일본의 하기노 고스케가 마이클 펠프스, 왕 슌과 포즈를 취하고 있다. (Photo by Adam Pretty/Getty Images)
2016 Getty Images

22개의 금메달로 일본은 올림픽 수영 강국 중 하나가 되었고, 현재 미국, 호주, 동독, 헝가리만이 일본보다 많은 수영 메달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는 기타지마 고스케가 76년 전 츠루타 이후 처음으로 올림픽 2연패를 달성합니다. 더하여 고스케는 100m와 200m 평영에서 모두 금메달을 따내는 것으로 최초의 두 종목 올림픽 2연패까지 달성했습니다.

도쿄 2020에서 일본은 2016 리우 올림픽에서 보여줬던 활약을 홈 팬들 앞에서 그대로 이어가려 할 것입니다. 리우에서는 하기노 고스케가 400m 개인 혼영에서 금메달, 가네토 리에가 200m 평영에서 금메달을 따냈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