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황하던 십대에서 버뮤다의 첫 올림픽 메달리스트까지

경기 중의 클래런스 힐
경기 중의 클래런스 힐

올림픽 메달은 수많은 선수들의 목표이자 꿈입니다. 하지만 그 꿈을 이뤄낸 선수가 나라 전체에 단 한 명 뿐이라면 어떨까요? Tokyo2020.org는 단 한 명의 올림픽 메달리스트를 보유하고 있는 24개국을 차례로 살펴보는 시간을 통해 유일한 메달리스트가 경험한 그 영광의 순간을 돌아보고, 그것이 선수 본인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알아봅니다.

배경

뉴저지 뉴어크에서 자라난 클래런스 힐은 방황하던 십대 시절을 보내기도 했지만, 결국 자신의 넘치는 에너지를 길거리가 아닌 링 위에 쏟는 법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1972년, 버뮤다로 돌아온 힐은 팸브룩 유스 센터에서 스탠리 트림의 지도 하에 아마추어 복싱 커리어를 시작하게 됩니다.

처음부터 힐은 “버뮤다의 헤비급 챔피언”을 꿈꿨고, “올림픽 메달 획득”을 원했습니다.

그 당시, 버뮤다는 1936년부터 모든 올림픽에 선수단을 꾸준히 보냈지만 올림픽 메달은 하나도 따내지 못했고, 1964 도쿄 올림픽의 요트 드래곤급 종목에서 5위에 올랐던 것이 메달권에 가장 근접했던 기록인 나라였습니다.

따라서 슬프게도, 올림픽 메달 획득이라는 힐의 꿈을 믿어주는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하지만 20대 초반에 복싱 글러브를 끼기 시작한 힐은 자신이 해낼 수 있고, 그 사실을 모두에게 증명해 보일 것이라 확신했습니다.

만들어지는 역사

그리고 4년후. 25살의 힐은 1976 몬트리올 올림픽에 도전할 준비를 마쳤습니다.

몬트리올에서 힐은 오프닝 라운드에서 부전승을 거뒀고, 다음 라운드에서는 이란의 파르비즈 바드파를 상대로 3라운드 KO승을 거뒀습니다.

그리고 8강에서 벨기에의 루디 가우브를 판정으로 꺾었죠. 그러나, 준결승에서 루마니아의 마르체아 사이먼에게 0-5 판정패를 당합니다. 준결승에서의 이 패배로 힐은 쿠바의 전설이자 올림픽 복싱 헤비급 3회 연속 금메달을 따낸 유일한 인물인 테오필로 스테벤손과 맞붙을 기회를 놓치게 되었지만, 결국 동메달전에서 승리하며 버뮤다의 첫 올림픽 메달이란 목표는 이루게 됩니다.

클래런스 힐: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내고 시상대에 서는 느낌은 ‘와우’ 였어요. 어떤 느낌이었는지 말로 설명을 못할 정도입니다.”

“젊은 나이에 내가 사랑하는 일을 하고, 그리고 올림픽에서 나라를 대표하는 특권까지 누린다. 세상의 꼭대기에 서 있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러나, 힐은 스테벤손과 맞붙을 기회가 있었다면 하고 아직도 아쉬워합니다.

“스테벤손과 정말 붙어보고 싶었습니다. 이 말을 하면 사람들은 농담인 줄 알아요. 하지만 지금도 말할 수 있습니다. 1976년의 저는 스테벤손을 꺾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 때는 그 정도로 자신감에 차 있었어요.”

힐은 아직까지도 올림픽 메달을 목에 건 유일한 버뮤다 사람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버뮤다는 힐의 메달 덕분에 영국 해외 영토 중에서 하계 올림픽 메달을 보유한 유일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인생을 바꾸다

안타깝게도, 힐이 나라를 대표해 세계 최대의 스포츠 무대에서 메달을 따왔다는 사실은 버뮤다에서 크게 인정을 받지 못했습니다.

힐은 1974년과 1978년 세계 아마추어 선수권에 참가하지 않았고, 그 사이에 열린 팬 아메리칸 게임의 우승자 명단에도 올라가지 못했습니다. 또한, 당시에 열렸던 다른 선수권과 토너먼트들의 우승자 명단에도 올라 있지 않았죠.

그러나, 몬트리올에서의 모험 후 4년이 흐른 시점에서 힐은 프로로 전향했고, 19승 3패 1무의 전적을 기록합니다. 비록 타이틀 획득은 하지 못했지만 가장 유명한 경기로는 1982년 토니 튜브스에게 만장일치 판정패를 당한 경기를 꼽을 수 있습니다. 당시 힐은 1라운드에서 튜브스를 다운시켰지만 그 기세를 이어가지 못하며 패했습니다.

이후 복싱계를 떠난 힐은 상실감에 빠졌고, 어두운 시절을 보냈으며 다양한 혐의로 감옥에 수감되기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결국에는 다시 일어섰고, 지금은 젊은 남녀 복서들의 훈련을 돕고 있습니다.

이런 경험 때문에 힐은 극도로 힘든 시기를 겪은 사람이더라도 언제든 인생을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굳게 믿습니다.

2004년, 버뮤다 스포츠 명예의 전당이 문을 열며 첫 10명의 헌액자가 정해졌지만 힐은 그 명단에 없었습니다. 힐의 이름은 그 다음해가 되어서야 명예의 전당에 올라갈 수 있었죠.

2019년 11월, 힐은 “복싱 국제 무대에서의 성과를 기념하는” 10,000 달러 수표를 받았고, 앵글 스트리트에 있는 한 체육 시설은 힐이 복싱에 남긴 업적을 기념해 '클래런스 힐 다용도 체육관'으로 명명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