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이저 클라크: 내가 누구인지 세상이 알게 될 것이다

남자 슈퍼헤비급 준결승에서 승리한 잉글랜드의 프레이저 클라크. 2018 골드코스트 커먼웰스 게임에서. (Photo by Mark Metcalfe/Getty Images)
남자 슈퍼헤비급 준결승에서 승리한 잉글랜드의 프레이저 클라크. 2018 골드코스트 커먼웰스 게임에서. (Photo by Mark Metcalfe/Getty Images)

영국의 수퍼헤비급 복싱 챔피언, 프레이저 클라크의 지난 수 년간은 불운의 연속이었습니다. 첫 아이의 탄생을 축하하던 날, 목을 칼에 찔렸고, 2017년에는 웨스트민스터 테러의 현장에 있었으며 2012, 2016 올림픽 출전 불발에 이어 도쿄 2020 출전권 확보에 단 두 경기를 남겨둔 상황에서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로 예선 전체가 취소되어 버렸습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는 클라크는 올림픽 영광을 향한 마지막 도전을 위해 링으로의 복귀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 날은 어제 일처럼 기억합니다.”

흐린 봄날의 오후, 커먼웰스(영연방) 챔피언 등극을 앞둔 프레이저 클라크는 GB 복싱 팀의 동료 팻 매코맥, 칼럼 프렌치와 함께 센트럴 런던에서 있었던 기자 회견을 마치고 건물 밖으로 나서고 있었습니다.

그 순간, 한 대의 자동차가 인도로 돌진하더니 웨스트민스터 궁전 외부에 있는 난간을 들이받았습니다. 길 위에는 파편이 흩어졌고, 곳곳에 사람들이 쓰러져 있었죠.

2017년 3월 22일이었습니다. 영국땅에서 일어난 최악의 테러 중 하나인 웨스트민스터 테러가 발생했던 날. 클라크는 그 테러의 현장에 있었습니다.

“경관이 살해당하는 순간을 봤고, 테러 용의자도 봤습니다. 용의자가 총에 맞아 쓰러지는 것도 봤어요.”

“끔찍한 장면들을 목격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운이 좋았다고 볼 수 있어요. 몇 분 더 일찍 나왔더라면 상황은 달랐을 수 있습니다."

“아슬아슬하게 피했죠. 저는 그날 집으로, 가족에게로 돌아갈 수 있었지만 거리에 있던 사람들 중 일부는 그러지 못했습니다. 그 일을 겪은 모두에게 슬픈 날이었고 영국 전체가 슬픈 날이었어요.”

“하지만 프레이저 클라크의 인생 이야기에서는 이 일도 또 하나의 챕터가 될 뿐입니다. 어찌된 일인지 저는 운나쁜 일에 잘 휘말리는 것 같습니다. 항상 그래요.”

2018 골드코스트 커먼웰스 게임에서 훈련중인 잉글랜드 대표팀의 프레이저 클라크(Photo by Mark Metcalfe/Getty Images)
2018 골드코스트 커먼웰스 게임에서 훈련중인 잉글랜드 대표팀의 프레이저 클라크(Photo by Mark Metcalfe/Getty 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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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을 위한 싸움

28세인 클라크는 현재 GB 복싱 팀에서 가장 오래 뛴 선수며 지난 10년간 팀의 일원이었습니다. 그리고 클라크가 속한 슈퍼헤비급은 GB 복싱 팀에서도 가장 많은 성공을 거둔 체급 중 하나로, 계속해서 국내, 유럽, 커먼웰스 우승을 거둬왔습니다.

그러나, 클라크의 인생은 완전히 달라질 수도 있었습니다.

2016년 12월, 클라크는 첫 아이가 태어나며 아버지가 되었고, 친구들과 함께 버턴어폰트렌트의 나이트클럽에서 축하 파티를 벌였습니다.

“저는 좋은 사람입니다. 모든 면에서 천사 같다는 말은 아니지만 그 날은 그냥 하룻밤 나가 노는 정도였어요.”

“거기서 다른 일행과 부딪혔습니다. 두 집단 사이에 적대감 같은 게 흘렀고 알코올 때문에 감정이 격해졌죠. 하지만 동네 중심가에서는 매주, 흔하게 볼 수 있는 시비였습니다.”

“그냥 싸움이라 생각했고, 휘말려들었습니다.”

하지만 클라크는 잔인하게 공격당했고, 칼에 세 번 찔립니다 .다리에 두 번, 목에 한 번.

“보기 좋지는 않았죠. 휘말릴 상황도 아니었고, 이야기하고 다닐 정도로 좋은 일도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제가 겪은 일에 대해 아주 자랑스럽게 이야기합니다.”

10년 전, 클라크의 친구이자 같은 아마추어 복서인 코너 업튼이 칼에 맞아 숨지는 사고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클라크 본인도 칼에 찔렸다가 고생 끝에 건강을 되찾을 수 있었고, 그 과정에서 가족들이 어떤 충격 속에 살아가야 했는지를 목격했습니다.

클라크의 이런 경험은 결국 링 밖에서의 시간을 칼 소지 반대 캠페인에 헌신하겠다는 결심으로 이어졌습니다.

“사건 당시 제 딸은 정말 어렸습니다. 가족들에게 얼마나 끔찍한 일이 될 수 있었는지 깨달았어요.”

“그 경험을 통해 칼 한 자루가 인생을 단 1초만에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절대 좋은 쪽으로 바뀌지 않는다는 점이죠. 칼을 소지하고 돌아다니는 것 말고도 세상에 할 일은 수없이 많습니다.”

“내가 어디 출신이고, 누구며 얼마나 터프하냐는 아무 상관 없습니다. 모두에겐 사랑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전화로 끔찍한 소식을 듣는다고 상상해 보세요. 아들이나 딸이 칼에 찔렸다는 소식.”

“제 어머니는 그런 전화를 받아야 했습니다. 저 때문에요.”

조 조이스(우)와 프레이저 클라크. 2012 ABA 엘리트 챔피언십 결승에서. (Photo by Scott Heavey/Getty Images)
조 조이스(우)와 프레이저 클라크. 2012 ABA 엘리트 챔피언십 결승에서. (Photo by Scott Heavey/Getty 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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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드코스트에서의 금메달

피습 후 몇 달 동안 혼돈의 시간이었습니다. 부상으로부터 몸과 마음을 회복하는 것에 더해 손과 햄스트링의 부상은 앞으로의 커리어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인생 최악의 몸 상태였고, 정신적으로도 최악이었습니다. 복귀해서 예전 실력을 낼 수 있을지에 대해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심적으로 정말 힘들었습니다.

더하여 클라크에게 중요한 목표 중 하나인 커먼웰스 게임이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제가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들 중 하나였습니다. 하지만 100퍼센트로 참가하는 일은 이미 글렀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너무 멀어졌고 불가능하다고 느꼈습니다.”

클라크는 선수 생활에서 가장 어둡고 가장 바닥까지 떨어졌던 그 순간, GB 복싱의 도움으로 되살아날 수 있었다고 말합니다. 자신의 복귀를 돕기 위해 GB 복싱의 스탭들은 클라크에게 의무 이상의 노력을 쏟아냈습니다.

“매일 두 번의 치료를 받았습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1대1 세션들도 있었어요.”

“뭔가에 마음을 집중하고 목표가 생기자, 몇 번의 수술이나 다리와 목에 칼을 몇 번 찔린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저는 파이터입니다. 이 말 자체가 클리셰이긴 하죠. 하지만 타고난 투사입니다. 햄스트링 부상과 수술 후에 다시 걸을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겼고, 걸을 수 있다면 복싱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따라서 모든 것을 회복에 집중했습니다.”

클라크의 복싱 복귀는 놀라웠습니다. 의욕과 함께 활기를 되찾은 클라크는 커먼웰스 게임 참가를 위해 호주로 날아갔고, 결승전에서 인도의 사티시 쿠마르를 꺾고 자신의 첫 번째 메이저 대회 금메달을 목에 겁니다.

2018 골드코스트 커먼웰스 게임 남자 복싱 +91kg 급에서 금메달을 차지한 프레이저 클라크. (Photo by Chris Hyde/Getty Images)
2018 골드코스트 커먼웰스 게임 남자 복싱 +91kg 급에서 금메달을 차지한 프레이저 클라크. (Photo by Chris Hyde/Getty 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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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2012와 리우 2016: 오해를 풀다

“금메달을 정말 많이 땄습니다. 셀 수도 없어요. 동메달도, 은메달도 있습니다. 전 세계를 돌며 대단한 사람들과 함께 해낸 일이죠. 따라서 지금까지 제가 이뤄온 모든 것이 자랑스럽습니다.”

하지만, 빛나는 아마추어 커리어를 걸어온 클라크도 메달 하나가 빠져 있다는 것은 인정합니다. 그것도 모든 메달 중에서도 최고의 메달이 하나 빠져 있죠.

올림픽 대표 선발전에서 클라크는 두 번이나 떨어졌습니다. 첫 번째 도전인 2012 런던 올림픽에서는 자신의 전 스파링 파트너이자 결과적으로 런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된 안소니 조슈아에게 밀려 출전권을 따내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4년 후 리우 올림픽에는 클라크 대신 조 조이스가 뽑혔고, 조이스는 본선 무대에서 은메달을 따냈습니다.

각 체급당 나라별 한 명의 선수만이 올림픽 복싱 본선 무대에 설 수 있습니다. +91kg, 슈퍼헤비급의 클라크가 영국 올림픽 대표가 되기 위해서는 세계 최고보다 더 뛰어나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저는 올림픽 금메달이 그 어떤 세계 타이틀보다도 더 큰 업적이라고 느낍니다.”

안소니 조슈아의 IBF, WBC, WBO 세계 타이틀 획득 준비를 도왔던 클라크의 말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제가 지난 두 번의 올림픽을 놓쳤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저는 그렇게 보지 않아요.”

“2012년은 본선 진출이 정말 비현실적인 목표였습니다. 그 당시의 제 커리어를 보면 예선 통과도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어요. 그 정도로 어렸습니다. 그 때 올림픽 본선에 진출했다면 아무것도 못 이뤘을 겁니다. 올림픽 무대에 섰다 해도 메달과는 거리가 멀었겠죠.”

그와는 반대로, 2016 리우 올림픽 출전권은 치열한 경쟁이 펼쳐졌고, 결국에는 조이스가 출전을 확정했습니다.

“저와 조 둘 다 올림픽을 목표로 했고, 둘 다 금메달을 원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항상 뒤따라가는 입장이었어요. 솔직히 그냥 이유없이 낙관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조가 출전권을 따내지 못하면 내가 기회를 잡겠다는 생각이었죠.”

“하지만 당시 조의 컨디션을 보면 올림픽 출전이 당연한 일이었다고 봅니다. 그게 현실이었어요.”

터키 삼순에서 열린 올림픽 유렵 예선에서 조이스는 마함마드라술 마지도프를 상대로 판정승을 거두며 올림픽 출전권을 확정했습니다. 클라크는 집에서 조이스의 승리와 함께 자신의 올림픽 출전 희망이 사라지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죠.

클라크를 가장 고통스럽게 한 것은 올림픽에 나가지 못한다는 현실만이 아니었습니다. 올림픽에서 나라를 대표한다는 것은 어렸을 때부터 가져온 꿈이었지만, 올림픽 본선 진출을 위해 또다시 4년을 기다리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사실이 가장 고통스러웠죠. 클라크는 당연히 충격을 받았습니다.

TV로 올림픽 출전권이 사라지는 순간을 목격한 지 20분 후, 클라크는 자신의 트레이너, 로버트 맥크라켄의 전화를 받습니다.

“다들 제가 어떤 느낌일지 알고 있었습니다. 출전권 확보가 힘들다는 예상은 모두 하고 있었으니까요. ‘지금 당장 기분이 나아지게 해줄 소식은 없지만 평소대로 계속 노력해 간다면 기회는 반드시 올 거야.’라는 위로의 말을 들었습니다.”

“당시 모두가 바쁜 일정을 치르고 있는 상황이라 일부러 저한테 전화하지 않아도 되는 입장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를 걱정해 줬어요.”

“내 인생 최고의 가르침이었습니다. 제가 GB 복싱의 사람들을 정말 존경하는 이유이기도 하죠.”

그리고 클라크는 프로 선수 커리어에 대한 생각을 잠시 접어두고 다시 일어나 도쿄 2020 본선 진출을 위한 기나긴 여정을 시작했습니다.

조 조이스(우)와 프레이저 클라크. 2012 ABA 엘리트 챔피언십 결승에서. (Photo by Scott Heavey/Getty Images)
조 조이스(우)와 프레이저 클라크. 2012 ABA 엘리트 챔피언십 결승에서. (Photo by Scott Heavey/Getty 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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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2020 예선과 연기

2020년 3월 14일, 클라크는 이스트 런던 코퍼 박스 아레나의 드레싱룸에서 올림픽 은메달 2관왕, 클레멘테 루소와의 경기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유럽에 마지막 남은 도쿄 2020 올림픽 본선행 티켓이 걸린 세 경기 중 첫 시합이었죠.

루소는 자신의 다섯 번째 올림픽 출전을 노리는 선수로 강력하고도 까다로운 상대였습니다.

하지만 클라크는 그 당시 상황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분위기가 올라 있었습니다. 나가서 싸울 준비가 되어 있었고, 상대를 해치울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경기 시작 20분 전에 누군가가 문을 두드렸고, 클라크는 루소가 소화불량으로 몸이 좋지 않아 기권했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부전승으로 다음 라운드에 진출한 것이죠.

클라크의 캠프에는 기대와 흥분이 쌓여가기 시작했습니다. 16강에 올라갔고, 8강까지 가서 승리만 한다면 도쿄 올림픽 진출이 확정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다른 곳에서 훼방꾼이 나타났습니다.

“상황이 급속도로 변한다는 사실은 분명했습니다.”

“응원단이 있다가 무관중으로 전환되었습니다. 그리고 소셜미디어에 더해 모두가 폰과 TV를 하루 종일 접하고 있기 때문에, [영국의 코로나바이러스 확산이] 상황이 점점 더 심해진 다는 사실은 눈에 보일 정도였습니다.”

곧 클라크는 긴급 회의에 소집되었고, 예선이 중지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됩니다.

낙담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잉글랜드, 런던: COVID-19 팬데믹으로 취소된 복싱 올림픽 예선 라운드. 경기장 외부에 출입금지 표지판이 서 있다. (Photo by James Chance/Getty Images)
잉글랜드, 런던: COVID-19 팬데믹으로 취소된 복싱 올림픽 예선 라운드. 경기장 외부에 출입금지 표지판이 서 있다. (Photo by James Chance/Getty 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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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실망했습니다. 그 순간, 그 자리에서, '이번에는 할 수 있다' 라는 느낌이 왔었으니까요. 올림픽에 다녀온 많은 친구들이 저에게 공통적으로 해주는 말이 있습니다. 올림픽 출전을 확정하는 순간 드는 느낌이 최고라는 말이요.”

“본선행 티켓을 도둑맞았다 정도는 아니었지만, 최고의 기분을 느껴볼 수 있는 기회를 빼앗긴 것 같았습니다.

“두 번의 힘든 시합을 앞두고 있었던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저는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몸 상태도 좋았고, 정신력도 좋았습니다. 누구를 탓할 수도 없는 일이었어요. 보통은 이런 일이 발생하면 누군가 탓할 사람이 나오지만, 그것 마저도 없었습니다. 정말 운이 없었다고 말할 수 밖에 없는 일이었어요.”

예선 연기의 실망감에서 조금 회복되려는 순간에 도쿄로부터 온 속보는 더욱 충격적이었습니다. 올림픽을 1년 연기한다는 결정이 내려졌으니까요.

“무방비 상태에서 당했습니다. 충격이었어요. 미래에 대한 계획은 누구나 세우는 겁니다. 저도 계획이 다 짜여져 있었어요. 스포츠뿐만 아니라 일상 생활에서도요.”

“올림픽을 위해 많은 것들이 뒤로 미뤄져야 했습니다. 아이를 한 명 더 가지는 것도, 이사를 다니는 것도. 올림픽을 위해 훈련하고 있으면 올림픽이 최우선 순위가 될 수 밖에 없고, 다른 모든 것은 2순위로 밀려납니다.”

“그 대가를 치르는 것은 내 주변 사람들입니다. 저도 힘들지만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 제 가족들은 더 힘들어요. 제가 일상으로 돌아올 때까지 조금 더 기다려 줘야만 합니다. 올림픽을 위해 훈련하는 것은…보통 일이 아니니까요.”

“일주일 내내, 하루 24시간 전부를 잡아먹습니다.”

락다운 속에서의 삶

코퍼 박스에서의 실망스러운 예선전 취소. 그리고 이어진 영국의 락다운 상황이라는 불안한 현실 때문에 클라크는 올림픽에서 나라를 대표한다는 꿈을 거의 포기할 뻔 했다고 인정합니다.

“락다운과 다른 모든 상황들로 인해 모두의 삶은 엉망이 되었다고 봅니다. 이런 시기에는 꿈을 잠시 잊고 가족들을 위해 뭐가 최선인지를 따져봐야만 하죠.”

“감정이 격해졌고 좌절했습니다. 올림픽에 대한 사랑과 올림픽을 위해 내가 쏟은 헌신만큼 실망도 컸어요. 처음에는 나와 올림픽은 인연이 없다는 느낌이었습니다. 다 잊고 앞으로 나아갈 때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많은 사람들이 그냥 포기했을겁니다. ‘더 이상은 못참아’ 하면서요. 하지만 올림픽은 제가 깨어 있을 때 항상 생각하는 목표입니다. 내 인생과 마음 속에 이미 자리잡고 있어요.”

클라크가 도전을 계속 이어가겠다고 결심한 것은 퍼포먼스 디렉터 롭 크라켄과 동료들과의 대화를 통해서였습니다.

“다르게 보면 1년이 더 생겼고 발전할 기회가 더 생긴겁니다. 시간은 금방 가요. 알아차리가도 전에 지나가 버릴 겁니다. 제 훈련과 초점은 올림픽을 향해 맞춰져 있습니다. 확실해요. 1년은 긴 시간이고 뭐든 일어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올림픽에 11년의 제 인생을 쏟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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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n’t wait for a swinger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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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소셜 미디어를 통해 저에게 이런 말을 합니다. ‘말도 안돼, 아직도 프로로 안갔어?’ 마치 내가 기대 이하의 성적을 내고 있는 것처럼 말해요. 하지만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합니다. 저는 아마추어 레벨에서 정상에 올라 있어요.”

“저는 특권처럼 느껴집니다. 대표팀에 이렇게 오랫동안 내 자리를 지켜올 수 있었다는 것은 영광스러운 일이기도 해요. 동네 체육관이 아닙니다. 자기 나라를 대표하는 일이죠. 대표팀 코치들이 나와 친하기 때문에, 그냥 선의로서 대표팀 자리를 유지해 주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제가 열심히 노력하고 재능이 있기 때문에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겁니다.”

도쿄 올림픽 본선 진출이란 목표에 집중하기로 한 현재, 클라크의 락다운 상황은 고요함과는 거리가 멉니다. 홈 짐은 장비로 가득차 있으며 다이어리는 팀 업데이트와 정기적인 측정 수치들로 넘쳐나죠.

“훈련 세션들은 계속해서 진행되고 있습니다. 코치들과 일주일에 두 번씩 전화를 하고, 1주일에 세 번은 줌[영상통화]을 해요.”

“아침에는 스트렝스 & 컨디셔닝 코치와 페이스타임을 합니다. 저에게 필요한 게 있는지, 도움을 줘야 하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요. 팀이 저에게 들이는 노력은 더 이상 칭찬할 말이 없을 정도입니다.”

주먹이 근질거립니다.

어서 빨리 상대에게 펀치를 먹이고 싶어요.

“이제는 주먹이 근질거립니다.

“이런 말을 하면 사람들은 내가 폭력적이라고 하겠지만, 복싱은 제가 11살때부터 해온 일입니다. 어서 빨리 대회에서 상대에게 펀치를 먹이고 싶어요. 다음 대회는 다시 코퍼 박스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 무대가 주는 흥분은 엄청나죠.”

도쿄 올림픽 본선 진출이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클라크는 이미 다음 일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저에게는 시작일 뿐입니다.”

“지금 저는 복싱계에서만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언젠가는 전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저를 알게 될 것입니다. 제가 하는 일로요. 지금은 시작일 뿐입니다. 하지만 올림픽에서 나라를 대표하며 출발한다는 것은 괜찮은 시작이라고 봅니다. .”

“상대가 나를 이기려면 인생 최고의 경기를 펼쳐야 될 겁니다. 기술, 체력, 힘 등 모든 요소들을 빼놓고 봐도 저는 뼛속까지 파이터니까요.”

“저는 자부심이 있는 사람이고 숨이 다할 때까지 싸워갈 겁니다.”

프레이저 클라크의 놀라운 인생에서 또 하나의 챕터가 시작되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