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지 럭비의 제리 투와이: 성장의 원동력은 가난

피지의 제리 투와이. 2020 시드니 세븐스 결승전 피지 대 남아메리카 공화국. (Photo by Bradley Kanaris/Getty Images)
피지의 제리 투와이. 2020 시드니 세븐스 결승전 피지 대 남아메리카 공화국. (Photo by Bradley Kanaris/Getty Images)

월드클래스 ‘사이드스탭’의 기원과 신발에 ‘나이프’와 ‘포크’라고 써 두는 이유, 그리고 왜 올림픽 금메달이 피지의 재통합에 힘을 보탰는지. 2019 세계 올해의 선수, 제리 투와이의 이야기를 들어봅시다.

제리 투와이는 7인제 럭비에서는 아마도 가장 빠른 선수일 것입니다.

피지 출신의 투와이는 공중전화 박스 크기의 공간만 있어도 상대를 사이드스텝으로 제칠 수 있으며 인터넷에 투와이의 이름만 쳐도 그의 민첩성에 대한 수많은 영상들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잉글랜드, 호주, 뉴질랜드 출신 선수들이 엘리트 스포츠 아카데미의 흠집 하나 없는 잔디 구장에서 실력을 닦아온 것과는 다르게 투와이는 피지의 수도, 수바에 있는 작은 마을의 원형교차로에서 럭비를 익혔습니다.

피지에서 영상통화로 진행한 인터뷰에서, 리우 2016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투와이는 올림픽 채널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매일 오후, 학교가 끝나면 뉴타운에 있는 조그만 회전교차로에서 3대3 럭비를 했습니다.”

“환경에 적응하는 법을 배웠고, 좁은 공간에서 스텝과 수비를 다루는 방법을 익혔어요. 아주 한정된 공간에서 하는 럭비였기 때문에 트라이를 하기 위해서는 이런 스텝 동작이 필수였습니다.”

제리 투와이의 해트트릭, 피지를 챔피언으로 이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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럭비를 할 장소를 구하기는 정말 힘들었지만, 아이들에게는 넘치는 창조력과 열정이 있었습니다. 다들 그저 럭비를 하고 싶어했을 뿐이었죠.

공 대신에 자갈을 채운 물병을 썼고, 맨발로 뛰었습니다. 자갈 때문에 부상을 당할 때도 있고, 발톱 두 세개가 빠질 때도 있었어요. 하지만 다음날에 또 다시 럭비를 하러 나왔습니다. 왜냐면 정말 재미있었으니까요.

가난 속에서 자라나다

투와이와 그의 가족들은 수도와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한 칸짜리 판잣집에서 살았습니다. 투와이의 아버지는 농사로 생계를 겨우 유지해갔고, 어머니는 일 주일에 50 피지 달러 (US$22)를 받는 가정부로 일했습니다.

전 세계를 돌며 호텔에서 생활하고, 라스베이거스, 케이프타운, 홍콩 등지의 관중으로 가득찬 스타디움에서 럭비를 하며 돈을 버는 생활은 투와이의 어린 시절에는 상상도 하지 못했을 일이었죠.

“학교에서 쫓겨났고, 부모님은 뭔가 다른 걸 해보라고 권했습니다. 저는 럭비로 눈을 돌렸죠. 하지만 체격 때문에 어려웠습니다. 몸이 작았으니까요. 항상 팀에 마지막으로 뽑히는 아이였습니다.”

“부모님은 번 돈을 다 저축했습니다. 그리고 어느날 저를 부르더니 저를 위해 럭비화를 샀다고 했어요. 흰색과 푸른색의 나이키였습니다.”

“저는 그 신발을 들고 울었습니다. 우리 가족의 상황이 어떤지 잘 알고 있었으니까요. 부모님은 이제 그게 제 인생이고, 그게 우리를 먹여 살리게 될 것이라 말해줬습니다.”

그 순간부터 저는 제 럭비화에 ‘나이프’와 ‘포크’를 써왔습니다. 그걸로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니까요.

제리 투와이: 슬럼에서 나라 전체로 희망을 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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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들의 학비를 책임지다

아들을 위한 럭비화에 투자한다는 것은 투와이의 부모님이 내린 최고의 선택이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투와이는 그 럭비화를 신고 여동생들이 학교를 마칠 수 있게 도왔으니까요.

“어느 금요일에 저는 집에서 친구들과 빈둥거리고 있었습니다. 농담도 하고 이야기도 하고 바보 같은 짓들을 하면서요.”

“그런데 그날 오후에 지역 럭비 팀이 저를 찾아왔습니다. 다음날 시가토카에서 있을 7인제 럭비의 큰 대회에 뛸 윙어가 필요하다면서요.”

“어머니는 택시를 타고 가라고 10 피지달러를 주셨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돈이 많이 없었기 때문에 저는 그냥 1피지달러 하는 버스를 타고 갔어요.”

“당시 두 여동생들이 학비를 내지 못해서 그 다음 주 월요일에 있을 시험을 치지 못할 처지에 놓여 있었습니다. 그래서 경기가 있던 토요일에 저는 신께 기도를 드렸죠. 저에게 우리 팀을 우승시킬 수 있는 힘과 지혜를 달라고. 그리고 우승 상금으로 동생들의 학비를 내 줄 수 있도록 해 달라고요.”

“우리는 조별 리그 세 경기를 치렀고, 저는 매 경기에서 트라이 두 개씩을 기록했습니다. 준결승에서는 부상을 당했지만, 결국 우리 팀이 대회에서 우승했고 7,000 피지달러의 상금을 나눠 가졌어요. 집에 돌아와 그 돈을 모두 어머니께 드렸습니다. 아버지는 제 자신을 위해 돈을 남겨두라고 말했지만 저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아니요, 이건 가족과 제 두 여동생을 위한 돈입니다.’”

“그 순간부터 알게 되었습니다. 럭비를 통해 가족을 도울 수 있다는 사실을요. 그리고 이것이 제가 럭비 커리어를 시작하게 된 동기였습니다.”

이제 투와이는 돈 문제로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입장이 되었지만, 그래도 가족들을 통해 힘을 얻는다는 점은 여전하다고 말합니다.

“부모님과 형제자매들이 제 전부입니다. 지금도 훈련에서 지치거나 포기하고 싶을 때는 부모님이 저에게 해 준 일들을 떠올립니다. 그게 제 인생에서, 그리고 럭비를 하는데 있어서의 주된 동기입니다.”

벤 라이언의 훈련법에 적응하다

투와이의 럭비 커리어를 더욱 발전시키는 일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찾아왔습니다.

피지의 7인제 럭비 대표팀 감독 자리에 벤 라이언이 들어왔고, 벤 라이언은 최고의 재능을 찾아 피지 전체를 다녔습니다.

그리고 뉴타운 출신의 키작은 스텝퍼, 투와이가 7인제 럭비 전국 대회에서 맹렬한 트라이들을 뽐내며 단숨에 라이언의 눈을 사로잡았죠.

곧 투와이는 대표팀으로 소집되었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재능 하나로만 뛰어왔던 투와이에게 훈련이란 조금 적응이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저는 훈련이 싫었습니다. 끔찍했어요. 첫 훈련 세션에서 우리는 400m를 네 번 뛰었습니다. 훈련장 가장자리에는 배수로가 파져 있었고, 꽃이 심어져 있었죠.

“두 번째 라운드에서 저는 벤을 쳐다봤습니다. 벤도 저를 보고 있었어요. 그냥 배수구로 뛰어들어서 숨었습니다. 벤 라이언이 저를 부를 때까지.”

“벤은 이야기하는 걸 정말 좋아하고, 이야기를 통해 선수에게 의욕을 불어넣는데 정말 뛰어난 사람입니다. 그날 벤이 포기하지 않는 것이 대해 저에게 해 준 말은 절대 잊을 수 없을 겁니다. 부모님이 저에게 가르쳤던 절대 포기하지 않는 의지와도 연결되는 말이었어요.”

팟캐스트: 벤 라이언 – 럭비 7s 금메달 뒤에 있었던 코치
25:04

벤 라이언은 새로운 훈련법을 도입했고, 시가토카의 모래 언덕에서 했던 훈련은 7인제 럭비계에서 전설로 남았습니다.

자연 환경을 최대한 활용하는 이 훈련에서 선수들은 모래 언덕을 오르내려야 했습니다. 그것도 타는 듯한 더위 속에서요.

“벤 라이언이 그 모래 언덕에서 단련하려 했던 것은 우리의 몸이나 체력이 아니었습니다. 우리의 멘털리티를 위한 훈련이었어요. 경기에서 지치고 체력이 고갈되었을 때도 달릴 수 있는 정신적인 강인함을 심으려 했던 것입니다.”

사이클론 피해를 입은 피지에 희망을

7인제 럭비는 피지의 국민 스포츠이며 나라 전체의 분위기는 럭비팀이 해외에서 거두는 성적에 큰 영향을 받습니다.

월드 시리즈에서 승리를 거둘 때마다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는 것에 더해 대표팀은 힘든 상황 속에서 피지 사람들의 사기를 올려주는 힘 역시 가지고 있다 할 수 있죠.

2016년 초, 남반구 역대 최대의 사이클론이 피지를 강타했습니다.

280km/h에 달하는 강풍을 동반한 사이클론 윈스턴으로 44명이 사망하고 한 달 동안 주택 40,000호가 파괴되거나 피해를 입었으며 14억 달러의 재산 피해가 발생했습니다.

“사이클론이 피지를 덮쳤을 때, 우리는 라스베이거스에서 경기를 치르기 위해 이동하는 중이었고, 그 끔찍한 재해를 실제로 경험하지는 못했습니다.”

“주장이었던 오세아 콜리니사우는 타고난 리더였죠. 우리처럼 어린 선수들에게 동기부여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었어요. 우리에게 피지에서는 럭비가 모든 것이라는 말을 해줬습니다. 나라가 고통받고 있지만, 사람들은 우리 경기를 보기 위해 산도 넘을 것이라고요. 피지 전체가 보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사람들에게 힘을 주고 피지에 다시 행복을 가져다줄 수 있다.”

감동적인 결승전에서 피지는 15점차를 뒤집으며 호주를 꺾었고, 이 승리를 재해로 인해 목숨을 잃은 사람들에게 바쳤습니다.

올림픽의 기쁨과 피지의 단합

피지는 라스베이거스 우승의 기세를 몰아 그 해 월드 시리즈 우승에 더해 리우 2016에서 7인제 럭비 최초의 올림픽 금메달을 따냈습니다.

결승전에서 영국을 43-7로 대파하며 따낸 금메달은 태평양 지역 국가 최초의 메달 올림픽 메달 획득이었고, 나라 전체가 단합해 기쁨을 나누는 모습은 전 세계에 퍼져 나갔습니다.

“이런 일은 꿈도 꾸지 못했습니다. 스포츠 최대의 상이 우리에게 올 것이란 꿈이요. 하지만 우리는 피지 사람들에게 이것이 얼마나 큰 의미인지 피지 공항에 도착하기 전까지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각계각층의 모든 사람들이 우리의 이름을 외치며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뭔가 엄청난 일을 해냈다는 걸 깨달았어요.”

올림픽 최초 금메달을 따낸 피지의 럭비(7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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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감을 즐기다

올림픽 금메달을 획득한 이후 피지 대표팀의 상당수가 은퇴하거나 연봉이 높은 유럽에서 15인제 럭비팀 계약을 하기 위해 팀을 떠났습니다. 하지만 투와이는 남아서 피지가 지배하는 7인제 럭비의 새로운 시대를 만들어갔죠.

2018년에는 팀의 주장으로 임명되었고, 2019년에는 세계 7인제 럭비 올해의 선수로 뽑혔습니다.

“주장으로서의 책임감과 수많은 상들을 수상하는 일은 우리를 더 나은 럭비 선수로, 더 강인한 사람으로 만들어 준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 팀의 형제들이 없었다면 제 인생에서 이런 일들을 달성해낼 수 없었습니다.”

COVID-19 확산으로 인해 연기되기 전까지, 이번 럭비 시즌에서 피지는 시리즈 전체 순위표에서 1위를 달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2021년으로 연기된 도쿄 올림픽에서도 7인제 럭비 올림픽 2연패가 유력하다고 평가되고 있죠. 투와이는 과연 2021년에도 팀에 남아 있을까요?

“도쿄에서 뛰고 싶습니다. 하지만 연기된 이후에는 상황이 좀 붕 떠버렸어요. 지금은 그저 내 럭비를 즐기고, 신께서 저를 어디로 인도할 지 지켜볼 뿐입니다.”

기사제공: 올림픽 채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