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밀리 오버홀트, 수영의 즐거움을 되찾다

2015년 7월 16일, 팬아메리칸 게임 여자 400m 개인혼영 결승에서 1위를 차지한 에밀리 오버홀트. 토론토, 캐나다.
2015년 7월 16일, 팬아메리칸 게임 여자 400m 개인혼영 결승에서 1위를 차지한 에밀리 오버홀트. 토론토, 캐나다.

18살의 어린 나이로 리우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따냈던 에밀리 오버홀트는 올림픽 이후 심한 우울증에 시달렸습니다. 그 힘들었던 시기의 경험담과 어려움을 이겨내고 도쿄를 목표로 다시 수영을 시작할 수 있게 되기까지의 이야기를 도쿄 2020이 들어봤습니다.

두 번째 컴백.

다른 대부분의 선수들과 마찬가지로 에이미 오버홀트도 COVID-19 팬데믹과 훈련 중단이라는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하지만 수영장으로의 복귀를 시작하고 있는 현재, 오버홀트는 과거의 경험을 통해 강해진 정신력 덕분에 팬데믹 상황 속의 힘든 시간을 버텨낼 수 있었다고 말합니다.

수영장을 떠나 있다는 것은 오버홀트에겐 처음 경험하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COVID-19 팬데믹 전에도 오버홀트는 수영을 중단했던 시기가 있었고, 사실 수영장을 떠나 있던 시간으로만 보면 그 때가 팬데믹 상황의 최근보다 훨씬 더 길고 더 힘들었습니다.

2016 리우 올림픽에서 4x200m 계영 동메달과 자신의 주종목인 400m 혼영에서 5위를 기록한 이후 정신적으로 정말 힘들었던 시간을 견뎌야 했던 것이죠.

“그 때부터 상태가 아주 나빠졌습니다.”

리우 올림픽에서의 성적은 18세 선수에게 엄청난 일이었지만 정작 본인은 결과를 즐기지 못했습니다. 수영에 대한 열정과 사랑이 식어버렸기 때문이었죠. 리우에서 돌아온 이후 그녀를 지탱해오는 동시에 억눌러왔던 부담감들이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올림픽은 스포츠 대회들 중에서도 정점에 있는 무대입니다. 따라서 그런 정상을 경험하고 다시 내려온다는 일은 정말 힘들었어요. 부담스러울 정도였습니다.”

“올림픽 이후 정말 오랫동안을 우울한 상태로 지냈습니다. 어떻게 나아질 지가 보이지 않았어요. 이 상황이 영원히 지속되고 모든 것이 똑같을 것이란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멀리 내다 볼 수가 없었어요. 그때부터 상태가 아주 나빠졌습니다.”

2015 FINA 세계선수권 여자 400m 개인혼영 시상식. 금메달에 헝가리의 카틴카 호스주, 은메달은 미국의 마야 디 라도, 동메달은 캐나다의 에밀리 오버홀트. (Photo by Adam Pretty/Getty Images)
2015 FINA 세계선수권 여자 400m 개인혼영 시상식. 금메달에 헝가리의 카틴카 호스주, 은메달은 미국의 마야 디 라도, 동메달은 캐나다의 에밀리 오버홀트. (Photo by Adam Pretty/Getty Images)
2015 Getty Images

깨어진 균형

리우 올림픽을 앞둔 시점에서 오버홀트의 커리어는 정상을 향해 가고 있었습니다. 캐나다 대표팀의 여자부 최연소 선수였고, 2015년 팬 아메리칸 대회 3관왕(400m 자유형 금메달, 200m 자유형 은메달, 4x200m 계영 동메달)과 2015 세계선수권 400m혼영 동메달리스트였죠.

그 동메달은 400m 혼영 종목에서 나온 캐나다의 첫 세계 선수권 메달이었고, 당시 오버홀트는 18살 생일도 지나지 않은 어린 선수였습니다.

성적에 고무된 오버홀트는 중대한 결정을 내리게 됩니다. 부모님과 함께 사는 집을 떠나 벤쿠버 브리티시 콜럼비아 대학에 있는 하이 퍼포먼스 센터에 들어간다는 결정이었죠. 오직 올림픽에만 집중하기 위해.

“올림픽을 앞둔 1년간은 정말 힘들었습니다.”

“가까운 사람들과도 만나지 않았습니다. 수영에만 집중하고, 그 외의 일은 하나도 하면 안된다고 생각했어요. 올림픽 출전과 좋은 성적에 대한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습니다. 삶의 균형이 깨져버린 것 같았어요. 머릿속에는 수영뿐이었습니다. 완벽해지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결국 얼마 후에 모든 것을 앗아갔습니다.”

선수 본인이 ‘정말 이겨내기 힘들었다’고 말하는 햄스트링 부상은 그 스트레스를 가중시켰습니다

사실, 그 당시의 오버홀트는 몰랐습니다. 올림픽에 집중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사회적 고립 상태에 빠지고, 엄청난 부담감을 받는 것에 더해 계속해서 완벽만을 추구하는 생활이 정신 건강에 얼마나 큰 위협이 되는지 십대였던 오버홀트는 알 수 없었죠.

결국 리우 올림픽이 끝나고 올림픽의 흥분이 가라앉았을 때 모든 것이 폭발해 버렸습니다. 올림픽이 끝난 뒤 1개월만에 오버홀트는 결국 우울증으로 병원에 입원했고, 그곳에서 두 달이 넘는 시간을 보내게 됩니다.

“건강을 되찾고, 수영을 다시 할 수 있게 되기까지 꼬박 1년이 걸렸습니다.”

마음을 터 놓기가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일단 이야기를 시작하자 기분도 나아지기 시작했어요.

마음을 열다

뒤늦은 깨달음이긴 했지만 오버홀트는 이제 스포츠와 개인 생활 사이에서의 혼란이 우울증으로 이어졌다는 사실을 압니다. 주변에 조언을 해 줄 좋은 사람들은 많이 있었지만, 그 당시에는 친구들과 떨어지고, 학교를 떠난다는 일이 큰 충격이었다고도 인정하죠.

모든 상황이 너무 빨리 진행되었고, 오버홀트는 너무 어렸습니다.

처음에는 자신의 상황에 대해 말할 수 없었지만, 점점 마음을 열기 시작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는 것으로 오버홀트는 회복을 위한 첫 발을 내디딜 수 있었습니다.

“정말 엄청난 응원을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내가 겪고 있는 일에 대해 말할 준비가 되지 않았어요. 마음을 터 놓기가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일단 이야기를 시작하자 기분도 나아지기 시작했어요.”

공감의 힘

오버홀트는 자신이 겪고 있는 고통을 먼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털어놓았습니다. 그리고 모든 이야기들을 대중들에게도 공개했고, 사람들이 보낸 긍정적인 반응에 놀라게 됩니다.

“반응이 정말 좋았습니다. 사람들은 이야기를 들려줘서 고맙다고 했어요. 그리고 다들 자신의 이야기를 공유했습니다.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어요. 이런 일을 겪는게 나 혼자가 아니라는 느낌이었고, 정말 좋았습니다.

이제 오버홀트는 자신의 경험을 공유하는 행동이 다른 선수들에게도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용기가 되어주길 바랍니다. 그녀가 깨달은 교훈은 분명합니다. 항상 주변 사람들과 소통하고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죠.

관점의 변화

그리고 4년이 흘렀습니다. 오버홀트는 이제 훨씬 나아졌고, 수영장에서 다시 한 번 행복을 느낄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회복으로의 길은 평탄하지만은 않았습니다.

“우울증에서 가장 힘든 부분은 상황이 더 나아질 것이란 희망이 생기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힘든 시기가 다시 찾아올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지만, 이제 오버홀트는 세상을 다른 관점으로 바라봅니다. “하루 안 좋았다고 해서 출발점으로 다시 되돌아가는 일은 없습니다. 이제는 알아요.”

도쿄로 가는 길

오버홀트는 미소와 함께 수영장으로 돌아왔습니다.

“'돌아가고 싶다, 내 커리어는 아직 안 끝났다'는 생각은 항상 내면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내가 언제 준비될지 확신이 서지 않았어요.”

올림픽을 위한 훈련으로 복귀한 현재, 오버홀트는 수영을 전과는 다른 시각으로 바라봅니다. 수영과 개인 생활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죠. 대학도 다니고 친구들과 어울리기도 하면서요.

또한, 오버홀트는 성공 역시 되찾았습니다. 캐나다 대표팀으로 출전한 2019 세계선수권에서 4x200m 계영 동메달을 획득하면서요.

그리고 이어진 올림픽의 연기는 올림픽에 대해서도 좀 더 담담한 시각을 유지할 수 있게 해줬습니다. “우리가 겪은 이 모든 팬데믹 상황 때문에 도쿄 올림픽 무대에 선다는 것은 정말 특별한 일이 될 것입니다. 저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선수들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오버홀트는 400m 개인 혼영과 4x200m 계영 출전을 노리고 있습니다. “리우보다 잘하자”를 최종 목표로 삼아서요.

하지만 오버홀트는 이미 메달 이상의 승리를 달성했습니다.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그리고 다시 즐거운 마음으로 수영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 가장 큰 승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