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아 바, 무패를 깨뜨리며 세네갈의 유일한 메달을 따내다

1988 서울 올림픽 남자 400m 허들 결선. 에드윈 모제스(#1114)와 세네갈의 아마두 디아 바 (#898)를 제치고 올림픽 신기록으로 결승선을 통과하는 미국의 안드레 필립스(#1120). (Photo by Russell Cheyne/Getty Images)
1988 서울 올림픽 남자 400m 허들 결선. 에드윈 모제스(#1114)와 세네갈의 아마두 디아 바 (#898)를 제치고 올림픽 신기록으로 결승선을 통과하는 미국의 안드레 필립스(#1120). (Photo by Russell Cheyne/Getty Images)

올림픽 메달은 수많은 선수들의 목표이자 꿈입니다. 하지만 그 꿈을 이뤄낸 선수가 나라 전체에 단 한 명 뿐이라면 어떨까요? Tokyo2020.org는 단 한 명의 올림픽 메달리스트를 보유하고 있는 24개국을 차례로 살펴보는 시간을 통해 유일한 메달리스트가 경험한 그 영광의 순간을 돌아보고, 그것이 선수 본인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알아봅니다.

배경

세네갈의 아마두 디아 바는 1988 서울 올림픽이 열리기 4년 전인 1984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서도 세네갈 최초의 올림픽 메달 획득에 근접했었습니다. 남자 400m 허들 결선에서 디아 바는 49초 28의 기록으로 동메달리스트보다 1초 늦게 들어오며 명예로운 5위에 올랐었죠. 그날, 미국 육상의 전설 에드 모지스는 자신의 두 번째 올림픽 금메달을 따냈고, 그 누구도 꺾을 수 없는 3년간의 연승을 이어갔습니다.

하지만 다음 올림픽까지 4년이 남은 상황에서 당시 25세였던 디아 바는 메달을 딸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LA에서의 성적이 몇 가지 실수 때문이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죠.

최근 BBC 아프리카를 통해 디아 바는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습니다. “저는 첫 출전이었고, 피할 수 있었던 실수들을 몇 가지 저질렀습니다.”

“코치와 함께 메달을 따내기 위한 훈련을 시작했습니다. 1984년에는 기회를 놓쳤지만, 1988 올림픽을 앞두고는 메달을 노리기 위한 준비를 마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디아 바는 아프리카 대륙 선수권에서 세 개의 금메달을 차지했고, 1987 세계선수권에서는 5위를 차지했습니다. 하지만 세계선수권에서도 금메달을 차지한 것은 다시 한 번 에드 모지스였습니다.

“LA 1984부터 서울 1988까지의 4년동안 저는 매 대회마다 같은 선수들과 경쟁했습니다. 에드 모지스, 안드레 필립스, 그리고 독일의 해럴드 슈미트와 에드가 이트. 우리는 서로를 아주 잘 알았어요.”

역사가 만들어지다

“모든 올림픽, 모든 대회들에는 언제나 메달을 놓고 경쟁을 펼치는 탑 5나 탑 10 선수들이 존재합니다. 1988년에는 저도 그들 중 한 명이었어요.”

당연한 말이었습니다.

9월 25일, 아마두 디아 바는 1988 서울 올림픽의 출발선에 경쟁자들과 함께 섰습니다. 함께 경쟁해왔던 선수들 모두가 결선에 올랐고, 더하여 새로운 얼굴인 22세의 케빈 영도 이 최고들 중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5번 레인에 자리잡은 디아 바는 새로운 전략이 있었습니다.

“허들은 기술적인 측면이 정말 중요하기 때문에 ‘해 보자’ 하면서 그냥 달릴 수가 없습니다. 저는 제가 일반적으로 써온 8번 허들까지 각 허들 사이를 13걸음으로 하는 전략을 쓰고 싶었지만, 그 방법으로 6위를 기록한 이후 코치들은 허들 사이를 14걸음으로 늘린다고 정했습니다. 그렇게 하면 더 빨라질 수 있겠지만, 처음에는 오히려 속도가 줄어드는 측면이 있어요.”

마지막 허들을 남긴 상황에서 디아 바는 3위로 달렸습니다. 몇 미터만 더 가면 동메달인 상황이었죠. 모지스와 필립스가 선두를 지키고 있었고, 앞서가던 두 사람은 그 상황이 어떤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마지막 허들까지 셋이 같이 달린다면 앞서가는 두 사람에게는 좋지 않은 결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따라서 둘은 리드를 지키려고 했죠.”

마지막 허들에서 환상적인 착지를 보여준 디아 바는 1977년부터 무패를 이어온 에드 모지스와의 차이를 줄였습니다. 

그리고 디아 바는 결승선 직전에 속도를 높였고, 마지막 순간에 결승선을 향해 몸을 내밀며 올림픽 영광을 차지하는 듯했지만, 필립스가 0.04초 차이로 먼저 들어오며 그 뒤를 이은 디아 바가 은메달, 그리고 무패의 모지스는 동메달을 차지하게 됩니다.

Amadou Dia Ba at the ANOC Athlete's Commission Meeting during the 21st ANOC General Assembly on November 13, 2016 in Doha, Qatar (Photo by Steve Welsh Getty Images for ANOC)
Amadou Dia Ba at the ANOC Athlete's Commission Meeting during the 21st ANOC General Assembly on November 13, 2016 in Doha, Qatar (Photo by Steve Welsh Getty Images for ANOC)
2016 Getty Images

인생을 바꾸다

디아 바는 개인 최고기록인 47초 23으로 세네갈 최초이자 유일한 올림픽 메달을 따냈습니다. 그리고 이 기록은 세네갈 신기록이기도 했습니다.

이날 4위를 기록한 케빈 영은 다음 올림픽인 1992 바르셀로나에서 46초 78로 금메달을 따냈고, 이 기록은 지금까지도 세계 기록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디아 바는 1988 올림픽 결선이 400m 허들의 황금기였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황금 세대 같았습니다. 당시 모지스는 세계 최고의 러너였지만 필립스, 슈미트, 저, 그리고 영도 있었어요.”

올림픽 메달 획득은 디아 바의 커리어에서 최고의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올림픽 시상대에 올라간다는 것은 1위든 2위든 3위든 축하받을 권리를 얻은 것과도 같습니다. 메달은 정상에 닿았다는 의미이자 우리가 올림픽에서 목표로 삼는 것이니까요."

1988 서울 올림픽에서의 놀라운 질주 이후 디아 바는 아킬레스건 부상으로 인해 더 이상 그와 같은 모습을 보여 주지 못했고,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을 끝으로 육상에서 은퇴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