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파이널: 가장 치열했던 1996 애틀랜타 올림픽 마라톤

애틀랜타, 조지아 - 1996년 8월 4일: 1996 애틀랜타 올림픽 남자 마라톤에서. 대한민국의 이봉주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조시아 투과니. Gary M Prior/Allsport
애틀랜타, 조지아 - 1996년 8월 4일: 1996 애틀랜타 올림픽 남자 마라톤에서. 대한민국의 이봉주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조시아 투과니. Gary M Prior/Allsport

감동과 드라마, 그리고 아름다운 순간들로 가득 차 있는 올림픽 결승전의 역사. 여러분들의 기억에 가장 인상깊었던 그 결승전 경기들을 이제 매주 영상으로 만나 보실 수 있습니다. 이번 주의 영상은 1996 애틀랜타 올림픽 마라톤입니다.

경기 정보

  • 올림픽 남자 마라톤
  • 조지아 주 애틀랜타
  • 1996년 8월 4일 오전 7시 5분. 센테니얼 올림픽 스타디움

배경

1996 애틀랜타 올림픽 남자 마라톤의 우승 경쟁은 아무도 예측할 수 없었습니다. 누가 유력한 금메달 후보라고 꼽기 힘들 정도로 많은 실력자들이 올림픽의 마지막 경기, 42.195km 레이스의 시작과 끝이 되는 센테니얼 올림픽 스타디움에 섰죠.

이 중에서도 1995 세계 챔피언인 스페인의 마르틴 피스는 올림픽에 앞서 이어왔던 상승세를 유지해 올림픽 꿈을 이룬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한 해 전, 서울에서 열린 동아 국제 마라톤에서 우승을 거둔 대한민국의 이봉주도 금메달 후보 명단에 함께 올라 있었죠.

남아메리카 공화국에서는 세 명의 러너가 출발선에 섰습니다. 이 중 조지아 투과니는 1년 전인 1995년에 자신의 커리어 첫 마라톤 우승을 거둔 것 말고도 올림픽을 단 5개월 남긴 시점에서 차량 강도를 당해 총알이 턱을 스치고 지나가고 등 부상까지 입는 드라마틱한 경험을 한 선수였습니다.

결정적인 순간

레이스의 전반부는 비교적 느린 페이스로 진행되었고, 25명의 선두 그룹은 21.1km 지점을 1시간 7분 36초에 통과했습니다. 하지만 25km 지점을 통과하기 전, 세 명의 남아프리카 공화국 선수들이 선두로 치고 나오며 레이스에 첫 번째 변화가 만들어졌습니다. 단 5년 전에 인종차별 정책을 폐기했고 이후 1995년에는 “하나의 팀, 하나의 나라”라는 슬로건과 함께 럭비 월드컵 우승을 거뒀던 남아프리카 공화국이었기에, 이 세 선수가 함께 달리는 모습은 아주 상징적인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처음에 이 세 명의 남아프리카 공화국 선수들을 추격한 선수는 태극마크가 새겨진 머리띠를 두른 이봉주 한 명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곧 20명의 선수들이 이 새로운 선두 그룹을 따라잡았죠. 이후 투과니는 여러 번 거리를 벌려 놓으려는 시도를 했지만 그때마다 이봉주에게 먼저 따라 잡혔고 그 다음에는 선두그룹 전체가 다시 따라붙는 양상이 계속 이어졌습니다.

결정적인 공격은 35km 지점에서 투과니가 다시 리드를 잡았을 때 나왔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투과니를 따라잡은 선수는 이봉주와 케냐의 에릭 와이나이나 뿐이었죠. 세 사람은 남은 레이스를 함께 달렸고, 올림픽 스타디움이 거의 눈에 보이는 지점까지도 거리가 벌어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 날은 조시아 투과니의 날이었습니다. 투과니는 마지막 힘을 짜내 와이나이나도 이봉주도 따라갈 수 없었던 스퍼트를 보여주며 2시간 12분 36초의 기록으로 금메달을 차지했습니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이봉주가 3초 후에, 그리고 케냐의 와이나이나가 8초 후에 결승선을 통과했습니다. 올림픽 역사상 가장 치열했던 마라톤 피니시였죠.

결과

조시아 투과니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올림픽 금메달을 딴 최초의 흑인 선수가 되었습니다. 5개월 전 거의 목숨을 잃을 뻔 했던 선수. 올림픽에 대한 희망을 모두 잃었고, 회복에 대한 희망도 잃었던 그 선수가요. 투과니는 경기 후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스타디움의 함성 소리를 들었을 때 정말 행복했습니다. 하지만 경쟁자들이 내 뒤를 바짝 추격하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어요.”

4년 후, 투과니는 2000 시드니 올림픽 마라톤에서 20위를 기록했고, 함께 뛰었던 이봉주는 24위를 기록했습니다. 이봉주는 그 후에도 계속해서 올림픽 도전을 이어갔고, 2004년 아테네와 2008년 베이징 올림픽까지 달린 후 2009년, 전국체전 마라톤에서의 우승을 끝으로 현역에서 은퇴했습니다.

남자 마라톤, 애틀랜타 1996
52: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