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금메달과 NFL 슈퍼볼의 영광 - 로버트 헤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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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로버트 헤이즈는 1964 도쿄 올림픽에서 두 개의 금메달을 따내며 ‘세상에서 가장 빠른 사나이’가 되었고, 이후 NFL의 델러스 카우보이스에서 슈퍼볼 우승반지도 차지했습니다.

로버트 헤이즈는 올림픽 금메달과 NFL 슈퍼볼 우승을 모두 경험한 역사상 유일한 인물입니다.

이야기는 1964년 10월 15일에 시작됩니다.

먼저, 헤이즈는 도쿄 올림픽 육상 100m에서 금메달을 차지했습니다. 빌린 스파이크를 신고, 전날의 남자 20km 경보 경기로 인해 표면이 상당히 손상된 1번 레인에서 뛰었지만요

그리고 그 과정에서 세계 신기록인 10초 06과 타이 기록까지 냈습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전설적이었던 장면은, 몇 시간 후에 바로 4x100m 계주의 마지막 주자로 출전해 금메달을 만들어낸 순간이었습니다.

헤이즈에게 바통이 넘어갔을 때, 미국 대표팀은 5위에 처져 있었고, 남은 100m에서 최소한 2m를 더 따라가야만 하는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헤이즈는 계주에서 3미터 이상 앞선채로 결승선을 통과했고, 당시 수동으로 측정한 헤이즈의 100m 구간 기록은 8초 5와 8초 9 사이의 기록으로, 지금까지도 육상 역사에 가장 빠른 계주 구간 기록으로 남아 있습니다.

또한, 헤이즈의 미국 계주 대표팀이 세운 39초06의 기록은 세계 신기록이었습니다.

2002년, 헤이즈의 사망 이후 뉴욕 타임즈는 그 계주에 대해 “어쩌면 육상 역사에서 가장 기억에 남을 100m”라 부르기도 했습니다.

한편, 당시 프랑스 계주팀의 마지막 주자, 조셀린 델레쿠르가 미국 계주팀의 첫 번째 주자 폴 드래이튼에게 이런 말을 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너희는 못 이겨. 밥 헤이스 뿐이잖아.”

경기가 끝나고, 드레이튼은 이렇게 답할 수 있었다고 하네요.“이봐, 우린 그거면 충분해”

국립경기장, 카스미가오카, 신주쿠, 도쿄 - 1964 년 10 월 21일:  남자 4 × 100m 릴레이에서 우승 한 미국의 오티스 폴 드레이턴, 제랄드 애쉬워스, 리차드 스테빈스, 로버트 헤이즈에게 금메달을 수여하는 모습
국립경기장, 카스미가오카, 신주쿠, 도쿄 - 1964 년 10 월 21일: 남자 4 × 100m 릴레이에서 우승 한 미국의 오티스 폴 드레이턴, 제랄드 애쉬워스, 리차드 스테빈스, 로버트 헤이즈에게 금메달을 수여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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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FL의 ‘불릿 밥’ 헤이즈: “믿기 힘든 빠르기”

육상 팬들에게는 안타깝게도, 그 계주 경기는 헤이즈의 마지막 올림픽 무대가 되었고, 헤이즈는 21살에 미식축구로 완전히 종목을 바꿨습니다.

잭슨빌 출신의 헤이즈는 플로리다 A&M 대학에 다니는 동안에는 두 스포츠를 동시에 해낼 수 있었지만, 1963년 12월에 열렸던 1964 NFL 드래프트에서 7라운드 픽으로 댈러스 카우보이스의 선택을 받게 되었습니다.

헤이즈는 1965 정규 시즌을 앞두고 카우보이스에 합류했고, 훈련장에서부터 동료들이 입을 다물지 못할 정도의 놀라운 속도를 보여줬습니다.

동료 리시버 프랭크 클락, 2002년 ESPN과의 인터뷰: “사람이 녹는 것 같았습니다. 정말 빨랐어요”

당시 카우보이스 선수 디렉터 길 브랜트: “무서웠습니다.스피드는 정말…솔직히 믿기 힘든 수준이었습니다.”

올림픽의 손실은 NFL의 이득이었습니다. 코너백들은 헤이즈를 따라잡을 수가 없었죠.

와이드 리시버와 킥 리터너로는 거의 멈출 수 가 없는 수준이었고, 첫 세 시즌동안 올스타에 뽑혔습니다. 결국 그 이후 상대팀들은 헤이즈를 잡기 위해 맨투맨에서 지역 방어로 전술을 바꿨습니다.

댈러스 카우보이스 공식 홈페이지는 헤이즈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오늘날까지 헤이즈는 10개의 정규 시즌 리시빙 기록, 4개의 펀트 리턴 기록, 22개의 구단 기록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런 기록들은 그가 댈러스 카우보이스 역사상 최고의 리시버 중 한 명이란 것을 보여줍니다.”

헤이즈는 1971년 시즌에서 댈러스 카우보이스 최초의 NFL 우승을 거둔 팀의 일원이었고, 마이애미를 24-3으로 꺾었던 슈퍼볼 VI에서 두 개의 리셉션을 기록했습니다.

게임 체인저

스피드 하나만으로 이런 활약을 하기는 어렵습니다. 헤이즈는 자신의 스피드를 최대한의 효과로 활용하는 스포츠적인 영리함도 갖추고 있었습니다.

슈퍼볼 VI에서 마이애미 감독이었던 돈 슐라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냥 세계에서 가장 빠른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대단한 운동 선수이자 풋볼 선수였어요. 그 두 가지를 합쳐 놓은 존재였고, 카우보이스와 경기할 때는 그 한 명 때문에 수비의 모든 것을 바꿔야 했습니다.”

수많은 하이라이트 중에서도, 양키 스타디움에서 나왔던 터치다운 하나는 사람들의 기억에 남아 있을 것입니다. 쿼터백 로저 스타백이 20야드(18m) 패스를 헤이즈에게 던졌고, 헤이즈는 그것을 85야드 터치다운으로 연결했습니다.

헤이즈가 공을 잡는 순간에 뉴욕 자이언츠의 디펜시브백 스파이더 락하트가 바로 옆에 있었지만, 65야드 후 두 사람 사이의 거리는 10야드까지 벌어져버렸습니다.

스타백: “공격에 그 친구가 있으면 정말 흥분되었습니다. 엄청난 스피드를 가졌고, 그걸로 뭘 해야 하는지를 알고 있는 선수였어요.”

전 카우보이스 팀 동료이자 NFL 코치였던 마이크 디카: “그 포지션이 어떤 역할인지를 재정립했습니다.”

1975년, 헤이즈는 카우보이스를 떠나 샌프란시스코 49ers로 가지만, 예전 같은 활약을 보여주지 못하고 몇 달 만에 방출됩니다. 

그리고 스포츠계를 떠난 이후에는 순탄한 삶을 살지 못했고, 1979년에는 코카인 판매로 감옥에 가기도 했습니다.

‘불릿’ 밥 헤이즈는 전립선 암과 간질환으로 긴 투병 생활을 한 끝에 고향 잭슨빌에서 2002년 9월 19일 사망했습니다.

그러나, 올림픽 2관왕이자 슈퍼볼 우승을 거둔 NFL 명예의 전당 헌액자, 헤이즈는 두가지 스포츠에서 잊을 수 없는 흔적을 남긴 사나이로 오랫동안 기억될 것입니다.

by OLYMPIC CHANNE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