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헤이즈, 지금도 깨지지 않는 기록

미국의 로버트 헤이즈, 1964 도쿄 올림픽 남자 100m 예선에서. Allsport Hulton/Archive
미국의 로버트 헤이즈, 1964 도쿄 올림픽 남자 100m 예선에서. Allsport Hulton/Archive

1964년 10월에 열렸던 도쿄에서의 첫 올림픽을 기념하기 위해 도쿄 2020은 56년 전 도쿄 올림픽에서 나왔던 역사적인 순간들을 되돌아보는 시리즈를 준비했습니다. 이번 시간에는 미국 육상의 전설, 밥 헤이즈의 이야기로 그가 도쿄에서 세운 스프린트 기록은 아직까지 아무도 넘어서지 못하고 있습니다.

배경

1964 도쿄 올림픽을 앞둔 밥 헤이즈는 이미 세계 기록 보유자였습니다. 올림픽 1년 전에 100야드 9.1초라는 역대 최고 기록을 달성했고, 이 기록은 이후 11년동안이나 깨어지지 않았습니다.

주니어 선수 시절에도 헤이즈는 커리어의 시작과 동시에 엄청난 재능을 보였습니다. 고교 육상대회에서는 첫 대회 참가에서 7개 종목에 출전(100, 220, 440, 880야드, 계주, 높이뛰기, 멀리뛰기) 모두 우승을 차지했던 것입니다. 원래는 미식 축구를 사랑했고 스프린터가 될 생각은 전혀 없었지만, 올림픽에 나가고 미국에 금메달을 안긴다는 것에 대한 큰 열망은 품고 있었습니다.

헤이즈: “목표를 정하진 않았습니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것이 올림픽 챔피언이란 것은 알고 있었습니다. 올림픽에서 뛰고 싶었어요.”

헤이즈의 스프린팅 스타일은 전통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마이클 존슨 같은 스프린트 전설들처럼 헤이즈 역시 러닝 기술에 대한 통설을 깨뜨리는 스타일이었고, 스타팅 블록에서 뛰쳐나가는 동작은 느렸지만 일단 최고 속도에 다다르면 언제나 다른 선수들을 모두 따라잡고 승리를 거머쥐었습니다.

헤이즈의 특이한 스프린트 스타일이 인생 최대의 레이스, 1964 도쿄 올림픽의 무대에서는 어떤 결과를 만들어 냈을까요?

1964 도쿄 올림픽, 육상 남자 100m 결선. 로버트 리 헤이즈(미국) 1위, 엔리케 피게로아(쿠바) 2위, 헨리 제롬(캐나다) 3위.
1964 도쿄 올림픽, 육상 남자 100m 결선. 로버트 리 헤이즈(미국) 1위, 엔리케 피게로아(쿠바) 2위, 헨리 제롬(캐나다) 3위.
© 1964 / Comité International Olympique (CIO)

영광의 순간

1964 도쿄 올림픽에서 헤이즈가 100m 결선에 참가하는 과정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복싱 헤비급 메달리스트 조 프레이저의 방에서 쉬다가 경기를 위해 올림픽 스타디움으로 간 헤이즈는 프레이저가 자신의 장비 가방을 살펴보다가 스파이크 한 짝을 잘못 넣어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당황한 헤이즈는 미국 대표팀 동료 선수들에게 신발 사이즈가 몇인지 묻고 다니기 시작했고, 결국800m 경주를 준비하던 톰 패럴에게 스파이크를 빌릴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헤이즈의 고난은 끝이 아니었습니다. 경주를 앞두고 헤이즈는 1번 레인을 배정받았지만, 결선이 치러지는 트랙은 석탄재를 깐 신더 트랙이었고 – 1964 올림픽은 신더 트랙이 사용된 마지막 올림픽 – 1번 레인은 하루 전에 열렸던 20km 경보 때문에 끔찍한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헤이즈는 어떤 고난을 마주치더라도 밀고 나가겠다는 결의가 서 있었습니다.

“경쟁자들의 눈을 똑바로 봤습니다. 내가 이길수 있느냐 없느냐를 예상하면서요. 머릿속으로 모든 것들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그리고 ‘이 경주는 이겨야만 한다.’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출발 신호가 울리자 헤이즈는 놀라울 정도로 빠른 스타트를 보여줬습니다. 30m 지점에서 이미 선두로 달리고 있었고, 결승선까지 그대로 쭉 달려나가는 동안 근처까지 따라온 선수조차 없었습니다. 결국 헤이즈는 10초06으로 세계 타이 기록을 세우는 동시에 금메달을 목에 걸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헤이즈에게 1964 도쿄 올림픽 최고의 순간은 아직이었습니다.

6일 후, 4x100m 계주 결선에 참가한 미국 대표팀은 혼란에 빠진 상태였습니다. 계주 대표팀의 멤버 중 멜 펜더와 트렌트 잭슨 두 명이 부상으로 빠졌고, 결선을 앞두고 그 자리가 예비 선수들로 채워진 것입니다.

마지막 주자, 헤이즈가 배턴을 받아 든 시점에서 미국은 선두와 경기장 반 바퀴 차이가 나는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순간 스프린트 역사에서 최고의 장면이라 할 수 있는 일이 일어납니다.

헤이즈가 경쟁자들을 모두 앞지르며 금메달을 차지했고, 계주 마지막 구간의 역대 최고 기록을 달성한 것입니다.

8초6으로 추산되는 기록

이 기록은 우사인 볼트보다 빠르고 칼 루이스보다 빠르며 4x100m 계주의 긴 역사를 다 살펴봐도 그 누구보다 빠른 기록이었습니다.

도쿄 1964: 밥 헤이즈

그 이후

헤이즈가 금메달을 딴 이후 처음으로 한 일은 친구 프레이저를 찾아간 것이었습니다. 헤비급 세계 챔피언이 되는 그 프레이저이자 그 날 헤이즈의 스파이크 한 짝을 어디다 잘못 놔뒀던 그 프레이저.

“조금 자만해 있었습니다. 프레이저에게 돌아가서 이렇게 말했어요. 프레이저, 아무리 월드 클래스 복서라도 내 신발에 또 손대면 날려줄 줄 알아.”

금메달 두 개를 따낸 헤이즈는 미국으로 돌아와 NFL의 댈러스 카우보이스에 입단하게 됩니다. 이후 11시즌동안 카우보이스에서 뛴 헤이즈는 슈퍼볼 우승을 거둔 처음이자 유일한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로도 역사에 이름을 남겼습니다.

은퇴한 후 헤이즈는 감옥에 들어가는 등 고달픈 삶을 살았고, 전립선암 투병 끝에 2002년, 5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