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리 밀스: 언더독, 10,000m 레이스에서 승리하다

1964 도쿄 올림픽, 남자 10,000m 결승선 - 윌리엄 밀스(미국) 1위, 무함마드 가무디(튀니지), 2위.
1964 도쿄 올림픽, 남자 10,000m 결승선 - 윌리엄 밀스(미국) 1위, 무함마드 가무디(튀니지), 2위.

1964년 10월에 열렸던 도쿄에서의 첫 올림픽을 기념하기 위해 도쿄 2020은 56년 전 도쿄 올림픽에서 나왔던 역사적인 순간들을 되돌아보는 시리즈를 준비했습니다. 오늘의 이야기는 미국의 유일한 10,000m 금메달을 따냈던 네이티브 아메리칸, 빌리 밀스입니다.

배경

빌리 밀스가 올림픽 금메달을 딸 것이라고 예상했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1964 도쿄 올림픽이 끝난 시점에서 밀스는 최고의 스타중 한 명으로 떠올랐고, 인종과 사회 정의를 위한 캠페인을 통해 인도주의자로도 전 세계에 이름을 알렸습니다.

밀스는 오글라라 라코타(수 족)의 일원으로 아주 어린 나이에 고아가 되었고, 가난 속에서 자랐습니다. 스포츠에서 위안을 찾던 밀스는 뛰어난 러너로 성장했고, 육상 장학생으로 캔자스 대학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리고 대학 시절에는 NCAA 전미 크로스컨트리 주자에 세 번 뽑혔고, 빅 에잇 크로스컨트리 챔피언십에서 개인 우승도 차지했습니다.

선수로서는 뛰어났지만 밀스는 선수 생활 초기에 자살을 생각했을 정도로 심한 인종적 편견과 차별을 경험했습니다. 결국, 밀스는 올림픽 10,000m 금메달이라는 최고의 목표를 달성하는 것으로 모두가 틀렸다는 것을 증명하겠다고 다짐하게 됩니다.

졸업 후 미 해병대 장교가 된 밀스는 10,000m와 마라톤종목 올림픽 출전 자격을 따냅니다.

영광의 순간

대회가 다가오는 가운데 밀스에게 수많은 난관이 닥칩니다. 그 중에서도 제2형 당뇨병의 경계에 와 있는 몸 상태는 저혈당증으로 경기력에도 영향을 주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밀스는 올림픽 꿈을 위한 도전을 이어갔습니다. 몸 상태에 맞는 훈련을 찾아갔고, 훈련 방식을 변화시키는 것으로 레이스에서 더 오래 버틸 수 있는 힘을 길렀습니다.

그 결과, 1964 도쿄 올림픽에 도착한 밀스는 올림픽을 정복할 준비를 마친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밀스는 전혀 알려지지 않은 선수였습니다. 모두의 관심은 1963년에 세계 신기록을 세웠던 론 클라크와 1963 지중해게임에서 5,000m, 10,000m 금메달을 따냈던 무함마드 가무디에게 쏠려 있었습니다.

10,000m의 결선 무대. 예상대로 클라크가 초반부터 앞서나갔고, 밀스를 포함한 나머지 선수들은 클라크의 페이스를 힘겹게 따라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5,000m 지점부터 밀스는 자신의 템포를 찾았고, 잠시지만 선두에 나서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클라크가 곧바로 선두 자리를 되찾았고, 40명의 선수가 뒤를 따르는 가운데 경주의 페이스를 만들어갔습니다.

두 바퀴를 남긴 상황에서 네 명의 선수가 선두 그룹으로 치고 나옵니다. 클라크, 밀스, 가무디, 그리고 에티오피아의 마모 월데. 월데는 결국 다시 뒤쳐졌지만 밀스와 클라크는 선두 자리를 놓고 치열한 다툼을 벌였고, 가무디가 그 뒤를 따라가는 양상이 이어졌습니다.

마지막 바퀴의 종이 울리자 밀스는 클라크를 앞지릅니다. 하지만 밀스가 앞으로 나서는 순간 클라크의 오른팔에 밀리며 주춤했고, 그 사이에 가무디가 빈틈을 찾아 질주하며 밀스는 3위까지 떨어집니다.

그러나, 밀스는 싸울 준비가 되어 있었고, 상승세를 내어 줄 생각이 절대 없었습니다.

50m 지점을 남기고 밀스는 “이길 수 있다, 이길 수 있다.”를 되뇌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길 수 있다.”

마지막 순간에 밀스는 클라크와 가무디를 앞질렀고, 28:24.4의 올림픽 신기록이자 개인 최고기록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은메달은 가무디, 그리고 모두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던 클라크는 동메달을 차지했습니다.

바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러닝 스트롱 포 아메리칸 인디언 유스’ 설립자이자 올림피언, 빌리 밀스. 밀스는 민간인이 받을 수 있는 두 번째로 높은 상인 2012 대통령 표창을 수상했다. (Photo by Chip Somodevilla/Getty Images)
바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러닝 스트롱 포 아메리칸 인디언 유스’ 설립자이자 올림피언, 빌리 밀스. 밀스는 민간인이 받을 수 있는 두 번째로 높은 상인 2012 대통령 표창을 수상했다. (Photo by Chip Somodevilla/Getty Images)
2013 Getty Images

그 이후

밀스는 올림픽에서 두 개의 레이스를 뛰었다고 말합니다.

World Athletics.org와의 인터뷰에서 밀스는 “레이스 도중 나 자신에게 이야기했습니다. ‘나는 이긴다. 하지만 결승선을 제일 먼저 통과하지 못할 수도 있다.”

“두 개의 레이스를 뛰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첫 번째는 상처받은 영혼을 치료하기 위한 레이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저는 올림픽 금메달을 땄습니다.” 라는 말로 네이티브 아메리칸 선수로서 겪었던 어려움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은퇴 후 밀스는 자신의 진정한 목표를 찾게 됩니다. 바로 네이티브 아메리칸 사회에 희망을 심어 주는 일.

1986년, 밀스와 유진 크리잭은 네이티브 아메리칸 사회를 돕기 위해 ‘러닝 스트롱 포 아메리칸 인디언 유스’라는 단체를 설립합니다.

“연장자들의 지혜를 전하고, 젊은이들이 꿈을 꿀 수 있도록 하고 싶었습니다.”

이런 활동으로 밀스는 2012년 바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으로부터 대통령 표창을 받았고, 2014년에는 반명예훼손연맹의 표창도 받게 됩니다.

현재, 밀스는 도쿄 2020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1964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지 56년. 이제는 가족, 손자들과 함께 도쿄를 방문할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도쿄 1964에서 세계가 하나되는 모습을 봤습니다. 많은 측면에서 일본이 전쟁의 폐허에서 벗어나 세계의 중요한 한 요소가 된 순간이었어요. 이제 팬데믹이 충분히 통제된다면, 2021년에 세계가 다시 함께하는 자리를 도쿄가 또다시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육상 최고의 선수들 중 일부는 후원자를 찾아 밀스가 도쿄에서 금메달을 따는 순간을 동상으로 만들고 싶어 합니다.

밀스: “그 동상이 전 세계의 화합과 존엄, 특색을 나타내고, 전 세계적 다양성과 세계의 젊음에 대한 주제를 담았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