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톤 헤싱크: 네덜란드의 유도 마스터, 일본의 독주를 막다

1964 도쿄 올림픽 유도 남자 무제한급 시상식. 왼쪽부터 일본의 아키오 카미나가(은메달), 네덜란드의 안톤 헤싱크(금메달), 테오도어 보로놉스키스와 클라우스 글란(동메달). (Photo by Keystone/Hulton Archive/Getty Images)
1964 도쿄 올림픽 유도 남자 무제한급 시상식. 왼쪽부터 일본의 아키오 카미나가(은메달), 네덜란드의 안톤 헤싱크(금메달), 테오도어 보로놉스키스와 클라우스 글란(동메달). (Photo by Keystone/Hulton Archive/Getty Images)

1964년 10월에 열렸던 도쿄에서의 첫 올림픽을 기념하기 위해 도쿄 2020은 56년 전 도쿄 올림픽에서 나왔던 역사적인 순간들을 되돌아보는 시리즈를 준비했습니다. 오늘 살펴볼 이야기는 유도가 세계적인 인기 스포츠로 자리잡는 계기가 되었던 안톤 헤싱크의 잊을 수 없는 승리입니다.

배경

전 세계 유도가들에게 안톤 헤싱크는 영원히 빛나는 존재로 남아 있습니다. 1964 도쿄 올림픽에서 헤싱크가 거둔 승리 덕분에 유도가 전 세계 2천만명 이상이 즐기는 스포츠로 발전할 수 있었으니까요.

헤싱크는 14살 때 유도에 처음으로 흥미를 가지게 되었지만, 그 당시만 해도 유도는 일본 선수들만의 무대였고 메이저 대회에서 일본의 거인들을 무너뜨린 외국인 선수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헤싱크는 그런 유도의 역사를 영원히 바꿔놓았습니다.

유도를 시작한지 3년만인 17살 때(1951년) 헤싱크는 자신의 첫 유럽 선수권에 출전해 은메달을 획득합니다.

그리고 10년 후, 파리에서 열린 1961 유도 세계 선수권에서는 디펜딩 챔피언인 일본의 소네 코지를 꺾고 일본 출신이 아닌 선수로는 최초로 세계 챔피언 자리에 올라갔습니다.

3년 후인 1964 도쿄 올림픽에서 헤싱크는 올림픽 유도 석권이라는 일본의 목표에 위협이 되는 존재로 평가받았고, 유도의 올림픽 정식 종목 데뷔 무대에서 헤싱크는 유도 전체를 바꿔놓는 결과를 만들어냅니다.

도쿄 올림픽 무제한급에서 금메달을 따고 고향인 위트레흐트로 돌아온 네덜란드의 유도 챔피언, 안톤 헤싱크. 1964년 11월 6일. (Photo by Keystone/Hulton Archive/Getty Images)
도쿄 올림픽 무제한급에서 금메달을 따고 고향인 위트레흐트로 돌아온 네덜란드의 유도 챔피언, 안톤 헤싱크. 1964년 11월 6일. (Photo by Keystone/Hulton Archive/Getty Images)
2004 Getty Images

영광의 순간

남자 유도 경기는 올림픽을 위해 특별히 지어진 경기장인 일본 무도관에서 펼쳐졌습니다. 1964 도쿄 올림픽 유도에는 라이트급, 미들급, 헤비급, 무제한급의 네 가지 체급이 있었고, 무제한급은 체중과 상관 없이 모든 선수들이 참가할 수 있었습니다.

세계 선수권 타이틀로 무장한 헤싱크는 유도의 본고장, 일본에서 무제한급 우승을 목표로 결승전에 나섰지만, 그의 상대인 일본의 카미나가 아키오는 당연히 홈 팬들의 열광적인 응원을 등에 업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경기를 지켜본 것은 일본의 팬들만이 아니었습니다. 올림픽 최초의 위성 생중계와 컬러 TV 송출을 통해 북미와 유럽의 팬들도 올림픽을 생생하게 지켜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시작된 남자 무제한급 결승전. 헤싱크는 예선에서 이미 카미나가를 이겨본 경험이 있었지만, 결승에서는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었습니다.

헤싱크가 가진 195.5cm의 큰 신장과 체격이 179.8cm의 카미나가를 상대로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을까요?

카미나가가 헤싱크를 잡아서 던지려 하는 순간 헤싱크는 재빠른 동작으로 카미나가를 제압했고, 바닥으로 쓰러뜨린 뒤 팔을 움직이지 못하게 잡고 머리를 바닥에 눌렀습니다.

카미나가를 계속 누르고만 있으면 헤싱크가 승리할 수 있는 상황.

카미나가는 헤싱크에게서 빠져나오기 위해 필사적으로 움직였고, 다리를 휘저으며 일어설 곳을 찾았습니다. 하지만 헤싱크의 힘은 엄청났고, 시간이 지날수록 상대를 더욱 세게 조르며 결국 경기는 그대로 끝이 나게 됩니다.

헤싱크가 비일본인 선수 최초로 올림픽 유도 금메달을 목에 걸며 일본의 독주를 막은 순간이었습니다.

도쿄 1964: 유도

그 이후

헤싱크에게 올림픽 금메달은 시작일 뿐이었습니다.

헤싱크는 1968 멕시코 올림픽을 앞두고 은퇴할 때까지 세계 선수권 2회 우승에 더해 유럽 선수권 21회 우승이라는 놀라운 기록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유도를 그만 둔 이후에는 한 때 배우로 활동하기도 했고, 다시 일본으로 돌아가 프로 레슬링에 몸담은 시기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헤싱크의 열정은 언제나 유도를 향해 있었고, 이후 행정가로도 이름을 날리게 된 헤싱크는 국제유도연맹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리며 유도에서 가장 높은 단수인 10단에 올라가게 됩니다.

헤싱크가 거뒀던 도쿄 1964의 승리에 대해 네덜란드 유도 협회 회장, 요스 헬은 이렇게 말합니다.

“네덜란드 스포츠계 뿐만 아니라 유도라는 종목 자체에도 중요한 순간이었습니다. 안톤의 승리가 없었다면 유도가 세계적인 스포츠로 큰 인기를 끌지 못했을 수도 있으니까요.”

헤싱크는 2010년에 세상을 떠났지만, 도쿄 1964에서 그가 거둔 승리는 유도를 영원히 바꿔놓았습니다.

1964년 10월 12일: 1964 도쿄 올림픽 유도 무제한급 결승에서 일본의 아키오 카미나가를 꺾은 네덜란드의 안톤 헤싱크. (Photo by Keystone/Getty Images)
1964년 10월 12일: 1964 도쿄 올림픽 유도 무제한급 결승에서 일본의 아키오 카미나가를 꺾은 네덜란드의 안톤 헤싱크. (Photo by Keystone/Getty Imag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