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0m 우승으로 세상을 놀라게 한 앤 패커

1964 도쿄 올림픽 육상 800m에서 세계 신기록과 함께 금메달을 따낸 영국의 앤 패커(55번). (Photo by Keystone/Hulton Archive/Getty Images)
1964 도쿄 올림픽 육상 800m에서 세계 신기록과 함께 금메달을 따낸 영국의 앤 패커(55번). (Photo by Keystone/Hulton Archive/Getty Images)

1964년 10월에 열렸던 도쿄에서의 첫 올림픽을 기념하기 위해 도쿄 2020은 56년 전 도쿄 올림픽에서 나왔던 역사적인 순간들을 되돌아보는 시리즈를 준비했습니다. 이번 시간에는 세계기록을 수립하며 우승을 차지하는 돌풍을 일으킨 영국 육상 선수의 이야기를 살펴봅니다.

배경

앤 패커는 앞으로도 언제까지나 영국 육상의 선구자로 기억되어, 차세대 선수들이 패커의 업적을 본보기로 삼을 것입니다.

올림픽 육상 트랙 종목에서 우승한 최초의 영국 여성으로서, 패커가 비교적 짧은 기간 동안 현역 생활을 하며 이룩한 성과는 스포츠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성취 중 하나로 항상 손꼽힐 것입니다.

도쿄 1964를 2년 앞두고 패커는 유럽선수권대회 200m 결선, 커먼웰스게임 80m 허들 결선에 진출하며 이름을 알렸습니다. 1년 뒤, 1963년에는 400m로 관심을 돌려 불과 네 번째 경기만에 53초06을 기록했습니다.

공식적으로는 400m 선수로서 도쿄 1964 대표팀에 선발됐지만, 패커는 800m 종목에도 출전할 예정이었습니다. 80m는 패커가 거의 경험이 없었던 종목으로 올림픽 이전에는 국내에서만 겨우 5차례의 대회에 참가했던 데 불과했습니다.

국제 무대에서는 800m와 전혀 관련이 없던 패커지만 – 잉글랜드 레딩에서 체육 교사로서의 일을 병행하며 체력을 키우기 위해 800m를 뛰기 시작했을 뿐이었습니다 – 도쿄 1964에서는 모두를 놀라게 했습니다.

앤 패커의 도쿄 1964

영광의 순간

바로 전 해에 가장 빠른 기록을 냈던 만큼, 패커는 도쿄에 도착했을 때부터 400m 종목 왕좌에 오를 유력한 후보로 꼽혔습니다. 그러나 올림픽 결선에서는 호주의 베티 커스버트가 마지막 순간에 간신히 패커를 꺾고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52초20으로 유럽기록을 경신하며 은메달을 획득했지만 – 패커의 첫 올림픽 메달이기도 했습니다 – 패커는 엄청난 충격을 받고 다음 종목인 800m를 아예 포기할 마음까지 먹었습니다. 하지만 패커의 피앙세이자 함께 도쿄 1964에 참가한 로비 브라이트웰이 패커가 800m에 출전할 수 있도록 설득했습니다. 당시 브라이트웰은 남자 400m에서 메달을 따는 데 실패한 뒤였습니다.

패커는 <올림픽 채널 비디오>와의 인터뷰를 통해 “400m 경기 이후 둘 다 심란한 상태였다”고 밝혔습니다. “그렇지만 우리에게는 서로가 있었습니다.”

올림픽에서의 영광을 향한 마지막 시도로서 여자 800m에 두 사람의 희망이 걸린 가운데 패커도 도전에 나설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패커는 예선 1조에서 2분12초6의 가장 느린 기록으로 준결선에 진출했습니다. 이는 예선 1위였던 프랑스의 마리본느 뒤퓌뢰르에 비해 한참 뒤처지는 기록이었습니다.

이어진 준결선에서 패커는 2분06초0으로 뒤퓌뢰르보다 2초 느린 기록을 남겼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패커가 결선에서 뒤퓌뢰르를 상대하게 됐을 때 패커의 승리 가능성은 희박해 보였습니다.

또한 뒤퓌뢰르뿐만 아니라 패커와 함께 출발선에 선 다른 선수들도 800m에서 패커보다 풍부한 경험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출발을 알리는 총성이 울리자 모든 선수들이 각자의 속도를 찾았습니다. 패커는 출발에서 뒤쳐지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경기가 절반 지점에 이르렀을 때, 뒤퓌뢰르가 다른 모든 선수들보다 앞서있었던 반면 패커는 한참 뒤처지면서 카메라에도 거의 비춰지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불현듯 패커가 다시 경기의 흐름을 되찾았습니다.

패커는 마지막 코너 구간에서 기어를 바꿔 넣고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속력을 내며 뒤퓌뢰르를 앞질렀고, 2분01초1로 결승선을 통과하며 세계기록도 새로 썼습니다. 그리고 패커는 곧장 트랙 옆쪽에 있던 피앙세의 품에 안겼습니다.

한편 예선과 준결선에서 패커보다 빠른 기록을 냈던 뒤퓌뢰르는 2위로 결승 지점에 도착한 뒤 현실을 믿을 수 없는 상태에 빠져 있었습니다.

패커는 “전술적으로는 어떻게 해야 할지 전혀 몰랐다”고 밝혔습니다. “단거리 선수인 만큼 피니쉬에 강점이 있다는 것만 알고 있었을 뿐입니다.”

그렇게 영국은 여자 800m에서 사상 최초로 금메달을 차지했고, 세계기록까지 경신했습니다.

1964 도쿄 올림픽 육상 800m 금메달리스트, 영국의 앤 패커와 약혼자이자 영국 대표팀 주장인 로비 브라이트웰. (Photo by Keystone/Getty Images)
1964 도쿄 올림픽 육상 800m 금메달리스트, 영국의 앤 패커와 약혼자이자 영국 대표팀 주장인 로비 브라이트웰. (Photo by Keystone/Getty Images)

그 이후

패커는 도쿄를 떠난 이후로 단 한 번도 국제 무대에 나서지 않았고, 다시 스포트라이트 바깥쪽으로 벗어났습니다. 그렇지만 앞으로도 패커는 올림픽 800m 종목에서 지워지지 않는 기록을 남긴 최초의 영국 여성으로 남을 것입니다. 무려 40년 뒤 아테네 2004에서 켈리 홈즈가 얻은 성과만이 패커의 업적에 견줄 수 있을 정도입니다.

패커로서는 800m에 경험이 없었던 것이 오히려 유리하게 작용했습니다.

<가디언>지와의 인터뷰에서 패커는 “800m에 대해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었지만 아마도 그렇게 순진했던 것이 이점이 됐던 듯하다”고 밝혔습니다. “머릿속에서 제가 해야 하는, 혹은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아무런 한계가 없었다는 뜻입니다. 모르는 게 약이었죠.”

1964 도쿄 올림픽 육상 여자 800m 시상식. 은메달에 마리본느 뒤퓌뢰르(프랑스), 금메달에 앤 패커(영국), 동메달에 앤 머리스 챔벌레인(뉴질랜드)
1964 도쿄 올림픽 육상 여자 800m 시상식. 은메달에 마리본느 뒤퓌뢰르(프랑스), 금메달에 앤 패커(영국), 동메달에 앤 머리스 챔벌레인(뉴질랜드)
© 1964 / Comité International Olympique (CIO) / United Archives

패커의 역사적인 승리는 – 단지 금메달이었기 때문만이 아니라 – 중장거리 종목에서 여성들이 오늘날과는 달리 받아들여지던 시대에 이룩한 성과라는 점에서 특히 기념할 만한 업적입니다.

“당시만 해도 중거리 종목에서 여성부는 걸음마 단계에 있었습니다. 800m는 겨우 4년 전 로마 대회에서 처음 치러졌죠.”

한편 패커는 피앙세 브라이트웰에게 금메달의 공을 돌렸습니다. 두 사람은 올림픽 직후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경기 중에 긴장하지 않았던 것도 제 자신이 아니라 그를 생각하고 있었던 덕분입니다.”

도쿄 1964는 패커에게 처음이자 유일한 올림픽이었습니다. 브라이트웰과 결혼한 뒤로는 가정에서 3명의 아이들을 키우기로 결정하고 영국 육상의 아이콘으로서 은퇴했기 때문입니다.

1964 도쿄 올림픽 육상 여자 800m, 결승선을 통과하는 영국의 앤 패커. (Photo by Central Press/Hulton Archive/Getty Images)
1964 도쿄 올림픽 육상 여자 800m, 결승선을 통과하는 영국의 앤 패커. (Photo by Central Press/Hulton Archive/Getty Images)
2004 Getty Imag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