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인도의 탄생을 알린 올림픽 금메달

1948 런던 올림픽 필드하키 조별 리그. 스페인 골문을 공격하는 인도 대표팀. 1948년 8월 6일. (Photo by Central Press/Hulton Archive/Getty Images)
1948 런던 올림픽 필드하키 조별 리그. 스페인 골문을 공격하는 인도 대표팀. 1948년 8월 6일. (Photo by Central Press/Hulton Archive/Getty Images)

올림픽 역사는 수많은 챔피언과 신기록, 그리고 멋진 이야기로 가득 차 있습니다. 하지만, 기묘한 일이나 재미있는 일화, 감동적인 이야기와 슬픈 기억도 놀라울 정도로 많이 존재하지요. 저희는 매주 과거의 올림픽 이야기를 발굴해 내는 시간을 통해 여러분들에게 재미와 감동을 선사해 드리려 합니다. 이번 주에 살펴볼 이야기는 1948 런던 올림픽에서 나온 인도 남자 하키의 역사적인 금메달입니다.

배경

인도의 올림픽 여정은 1900년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참가 초기부터 올림픽 무대를 완전히 지배했던 인도의 남자 하키 대표팀은 암스테르담 1928, 로스앤젤레스 1932, 베를린 1936에서 3회 연속 금메달을 차지하는 업적을 달성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1948 런던 올림픽은 인도가 독립 국가로 참가하는 첫 올림픽이었습니다.

더하여 인도의 1948 올림픽 참가는 1년도 채 되기 전에 일어났던 인도와 파키스탄의 분리로 큰 영향을 받았습니다. 두 나라로 쪼개지며 니아즈 칸, 무하마드 샤 루흐, AS 다라 같은 기존의 인도 대표팀 선수들이 새로운 국경 너머의 팀으로 합류하게 된 것입니다.

인도-파키스탄의 분리로 인해 인도는 금메달 스쿼드의 상당수를 잃게 되었고, 인도 하키 연맹은 대표팀의 재건이라는 쉽지 않을 일을 해내야 했습니다. 새로운 세대의 하키 선수들이 처음 경험하는 국제 무대에서 빛을 발하고, 인도 하키를 인도 스포츠 역사상 가장 영광스러운 시대로 이끌어갈 것이란 사실은 그 당시만 해도 아무도 짐작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주장으로 임명된 키샨 랄에 더해 KD 싱 바부, 패트릭 잰슨, 레슬리 클라우디우스, 발비르 싱 처럼 국내에서는 좋은 활약을 펼쳐왔지만 국제 무대에서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선수들이 1948 런던 올림픽에 참가한 인도 하키 대표팀의 20인 스쿼드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특히 발비르 싱의 대표팀 합류에 대해서는 많은 논쟁들이 오갔지만, 결과적으로는 싱의 합류는 인도의 승리에 결정적인 한 수로 작용했습니다.

올림픽 본선

신인과 올림픽 경험이 전무한 선수들로 가득한 20인의 스쿼드는 독립한 인도를 대표해 1948 런던 올림픽에 출전했습니다. 인도 하키 대표팀은 아르헨티나, 오스트리아, 스페인과 A조에 속하게 되었고, 파키스탄은 네덜란드, 벨기에, 프랑스, 덴마크와 한 조였습니다.

인도 대표팀은 시작부터 맹렬한 기세를 올렸고, 첫 경기에서 바부가 두 골, 패트릭 잰슨이 헤트트릭을 기록하며 오스트리아를 8-0으로 대파했습니다. 아르헨티나와의 두 번째 경기에서 인도는 첫 번째보다 더 나은 경기력으로 분명한 격차를 보여주며 9-1 승리를 거머쥐었고, 이 경기에서 싱은 네 골을 집어넣으며 자신의 실력을 전 세계에 뽐냈습니다.

조별 리그의 마지막 경기, 인도는 스페인을 상대로 2-0의 편안한 승리를 거뒀고, 싱은 이 경기에서도 또다시 득점을 올렸습니다. 그리고 이어진 네덜란드와의 준결승에서는 인도가 조금 고전했지만 2-1 승리를 거두며 다른 준결승에서 파키스탄을 꺾고 올라온 영국과의 결승전을 예약하게 됩니다.

개최국을 상대로 하는 결승전. 홈에서 세 번째 금메달을 목표로 하는 영국을 상대해야 하는 쉽지 않은 경기. 인도 하키의 미래가 결정되는 이 결승전이 열린 웸블리 스타디움은 관중으로 가득 찼습니다.

2018년 8월, 힌두스탄 타임스를 통해 싱은 결승전에 대해 이렇게 회고했습니다. “결승전이 열리는 경기장으로 들어섰을 때, 경기장을 가득 메운 관중들은 모두 영국 대표팀을 응원했습니다. 하지만 경기가 진행되자, 우리의 플레이에 감명받은 관중들이 우리를 응원하기 시작했어요.”

웸블리의 피치는 인도 대표팀이 익숙한 경기장보다는 느린 속도의 경기를 만들어냈지만, 인도 선수들은 이를 보완할 스파이크를 장비하고 있었습니다. 팀의 페이스와 템포를 경기장에 맞춰 조금 수정한 인도 대표팀은 경기 시작과 함게 싱의 선제골로 앞서가기 시작했고, 잰슨이 추가골을 넣으며 전반에 두 골 차 리드를 잡습니다.

영국은 역전을 위해 후반에 빠른 만회골이 필요했지만 경기는 그와는 정반대로 흘러갔고, 싱이 자신의 경기 두 번째 골을 성공시키며 영국의 희망을 꺾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탈로찬 싱이 인도의 네 번째 골을 넣으며 아무도 상상하지 못한 일이 현실로 이뤄집니다. 인도가 독립 국가로서 처음 따낸 금메달.

발비르 싱은 힌두스탄 타임스와의 2018년 인터뷰에서 그 순간을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70년 전에 일어난 일이지만 런던 올림픽의 기억은 어제처럼 생생합니다. 그 날, 웸블리 스타디움에 모인 수 천명의 영국인이 보는 가운데 우리의 깃발이 걸렸고, 저는 독립의 의미를 실감했습니다. 저와 인도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정말 자랑스러운 순간이었어요. 국가가 연주되고 국기가 올라갈 때, 저는 하늘을 나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 영광의 순간은 말로 묘사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독립한지 1년, 그리고 분리까지 겪었던 인도는 그 고통과 고난을 딛고 일어나 수백만의 국민들에게 영광과 기쁨을 전해줄 수 있었습니다.

그 이후

인도 남자 하키 팀의 1948 런던 올림픽 승리는 인도에 정말 큰 영향을 미쳤고, 그 때문에 지금까지도 인도 스포츠 역사에서 가장 많이 이야기되는 순간 중 하나로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런던 1948의 금메달을 시작으로 인도 남자 하키는 다음 네 번의 올림픽 중 세 번에서 금메달을 차지하게 됩니다. (1952, 1956, 1964)

런던에서 금메달을 땄던 선수들의 상당수는 인도 하키의 전설로 남게 됩니다. 특히 발비르 싱 시니어는 영광스런 인도 하키의 역사에서도 가장 위대한 선수 중 한 명으로 여겨지고 있으며, KD 싱 바부와 레슬리 클라우디우스를 포함한 다른 멤버들도 수십년간 많은 어린 하키 선수들의 영감이 되어줬습니다.

1980 모스크바 올림픽 이후 인도는 올림픽 하키 메달을 따내지 못하고 있지만, 도쿄 2020에서 그런 상황이 바뀌게 될 것이라는 기대는 높습니다.